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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버나움' 실화로 고발하는 멸망한 도시

자인의 삶과 태어나고 자란 빈민가는 몰락한 가버나움과 같았을 것이다.

by mod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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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조차되어 있지 않은 12살 소년 ‘자인’이 더이상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해 법정에 선 이야기

‘가버나움’은 빈민가의 충격적인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아는 다큐 감독님의 추천으로 뒤늦게 OTT로 보게 되었는데 ‘심적으로 너무 힘든 영화라 두 번은 못 볼 거 같다.’ 라는 그의 말에 정확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며 잘 우는 편이지만 가버나움을 보며 정말 오랜만에 오열을 했고,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시야를 가리고 있다.



영화 줄거리


레바논 빈민가에서 태어나 안타깝게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자인, 어느 날 여동생 사하르가 초경을 하게 된 걸 알고 이를 부모님께 숨기라고 몰래 챙겨준다. 직접 속옷을 손빨래해 주고, 마트에서 몰래 생리대를 훔쳐주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사하르는 11살이라는 나이에 조혼으로 팔려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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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 자인은 집에서 도망쳐 나왔고, 우연히 라힐을 만나게 된다. 잠잘 곳과 먹을 게 필요한 자인, 자신이 일하러 가는 동안 자신의 아이 요나스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라힐은 함께 살아간다. 이들의 각박한 일상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라힐이 불법체류자로 체포되며 자인과 요나스는 단둘이 남게 되었다. 돈도, 집도 사라지며 길거리에 나앉게 돼버린 상황에 자인은 힘겹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라힐의 위조 신분을 도와주고 있던 남성에게 ‘요나스를 더 좋은 집에서 키워줄 수 있데’라는 말에 속아 어쩔 수 없이 이별하게 된다. 12살 밖에 되지 않은 자인의 두번째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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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도 다른 살기 좋은 나라에 보내줄 수 있다는 말에 출생신고서를 가지러 원래의 집으로 찾아가는데(이 또한 거짓말), 자신이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는 사실과 더불어 사하르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사하르는 결혼 후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몸에 이상이 생겼고, 병원으로 갔지만 그녀 또한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터라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었다. 이에 자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하르의 남편을 칼로 찔러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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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자인은 자신의 부모님을 고소하고, 이를 방송국을 통해 공론화 시킨다.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은 그걸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바닥에서 짓밣히길 바라죠. 뱃속의 아이도 나처럼 될 거예요. 애를 그만 낳게 해주세요.’



가버나움 뜻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특히나 치유와 기적을 많이 베푸신 지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러 기적과 가르침을 접하고서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예수님의 책망으로 멸망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인의 삶과 태어나고 자란 빈민가는 몰락한 가버나움과 같았을 것이다.




영화의 영상미는 삭막하면서도 따뜻해 보이는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삭막한 삶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자인의 따스한 마음을 담아내는 것 같다.


제작자는 배우들을 길거리에서 실제 난민, 노숙자, 불법체류자들을 캐스팅했다. 주인공 자인은 난민이며 요나스는 실제 불법체류자 부부의 딸이고, 사하르와 라힐은 노숙자다. 촬영 중간에 배우들이 체포되기도 했으며 전문 배우가 아니라 대사를 다 외우기 보다 상황에 어울리는 대사를 알아서 하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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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랬을까. 스토리와 연기가 과하지 않고 실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영화였다. 가장 슬펐던 부분은 자인이 요나스를 떠나야 할 때였다. 사랑하는 동생 사하르를 보낸 슬픔이 아물어지기도 전, 또다시 요나스를 보내야 할 때 그 심정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떨어지기 싫어서 볼에 뽀뽀해 주는 장면은 여전히 내 감정을 울린다. 영화 속에서는 자인이 딱 한 번 눈물을 흘리는데 그것도 가슴 아픈 부분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교도소에 갇힌 자인을 엄마가 면회 온 장면도 인상 깊었다. 엄마는 신은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돌려주신다면서 자인에게 동생이 생겼다고 말해준다.

“마음이 아프네요. 엄마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그때의 자인의 표정은 내 가슴에 칼을 찌르듯 아팠다. 12살의 어린 소년에게선 절대 나올 수 없는 표정. 더 이상 도려낼 심장이 없는 사람 같았다.

등장인물들의 실제 삶을 고발하는 이 영화를 보며 자인의 고통은 자인 한 사람만 느낀 고통이 아닐 거라는 사실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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