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의자에 앉은 눈앞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색하다. 너무 오랜만에 왔나 보다.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왔는데, 막상 이렇게 앉아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내 머리를 다른 이의 손에 내맡기고서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그간 푸석거리는 머릿 끝이 신경 쓰여 검정 끈으로 질끈 묶고 내팽개쳐두었던 나의 머리털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가만히 앉아 무심한 듯 툭툭 잘려 떨어지는 내 머리칼을 보고 있자니 후련하다. 필링 제품을 얼굴에 충분히 바르고서 조심스레 문질러 마사지하며 묵은 각질을 벗겨낼 때처럼 왠지 개운한 느낌이 좋다. 이렇게 머릿 끝을 간단히 다듬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굳이 시간을 내어야 하는 별일인데, 이번에는 웬일로 힘을 주어 웨이브까지 넣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히 큰일을 치르는 것 같기도 하다.
보통의 여자들을 마음이 울적하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한 순간에 찾는 곳 중 하나가 헤어숍일 텐데, 나에게는 아니다. 한창 멋 부리고 싶었을 소싯적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역시 아니다. 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는 오히려 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딸려오는 은근한 어색함이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오늘은 오랜만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새카만 찰머리 똑단발이었는데, 최근 몇 달 다듬지도 못하고 지냈더니 머리카락이 제법 자라 있었다. 방학 중에는 여름이라 덥기도 하고, 귀찮아서 그냥 묶고 다녔다. 간단하기도 하고, 단정하기도 해서 미용실에 갈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갑자기 미용실에 가서 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전환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변화가 필요했다고나 할까.
펌제를 바르고 기다렸다가 머리를 감고, 롯드를 말기 시작하자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잠시 잠깐 커트만 할 걸 하고 후회를 했다. 원장님은 내가 남들보다 모발이 굵고 많아서 약이 많이 드니 추가 요금이 더 들 것이고, 나의 모발이 강해서 펌은 잘 안 나올 수 있으며, 롯드를 더 많이 말아야 하니 펌을 하는 동안 머리가 무거울 거라고 했다. 돈이 많이 들여 한들 예쁘게 안될 수도 있으며, 하는 동안의 무거움에 대한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지만, 그래도 모발이 얇고 적다는 말보다는 감사하다 느끼며 감수하려고 했다. 오히려 난 내가 한 번도 머리숱이 많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래도 미용실 원장님의 말씀이니 어느 정도는 신뢰해도 되지 싶어서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설마 나 기분 좋으라는 립서비스는 아니었겠지?
3시간 정도가 흐르니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갔다. 마지막 샴푸를 하러 자리를 옮겨 샴푸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몸을 뉘이고서 전문가의 손길로 머리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조근조근 마사지를 해주시고, 서비스로 모발팩을 했다며 더 누워있으라고 하시니 잠이 솔솔 오는 게 낮잠 한판 자고 일어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잠이 든 건 아니다. 그냥 기분만 그럴 듯 나른함이 느껴져서 편안했을 뿐이다.
샴푸가 끝나고 구불거리는 젖은 머리를 보니 괜히 고개라 숙여졌다. 나도 모르게 어색했나 보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나의 웨이브 컬을 그럴듯하게 살려놓으신 전문가의 손길은 역시 남달랐다. 적어도 오늘은 웨이브가 제대로 살고 부드러운 인상이 돋보이는 한나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특별한 약속이 없으니 집에 와서 가족에게만 보여줘야 하는 현실은 늘 덤덤히 받아들인다.
미용실에 한번 다녀오면 하루가 그냥 가는 기분이다. 특히 펌을 하는 날에는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막상 다녀오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나를 가꾸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늘려보자. 어느 날 갑자기 거울을 봤을 때, 허무하게 흘러간 시간이 느껴지는 축 처진 볼과 주름살, 푸석하고 거칠어진 머릿결, 어느새 휑해져 버린 정수리를 바라보며 신세한탄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