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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Aug 02. 2022

마흔셋,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나를 위한 시간

어느덧, 내 나이가 마흔셋이 되었다. 생일이 12월이고 새해를 2일을 남겨두고 태어났으니 한 살을 빨리 먹는 건 억울하다고 우기고 싶지만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40대의 중턱으로 향하는 인생의 중년에 접어들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라는 식상한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청춘..' 얼마나 좋은 말인지. 젊고, 활기차고, 용기 있고, 그냥 들어도 가슴 뛰고 예쁜 말인데, '마음만은 청춘'이라니... 왠지 이제 나는 청춘과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된 것 같아서 괜스레 속상하고 억울해진다. 


엄마와 나의 나이 차이 30살, 나와 딸아이의 나이 차이 30살. 지금 나의 딸아이는 13살. 나는 내가 지금 딸아이의 나이였을 때,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마흔셋 일 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나의 기억 속에서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하고 있는 우리 엄마는 영락없는 동네 아줌마였다. 음식을 잘하는 평범한 주부였고, 가족에게 늘 다정하고 포근했지만 자신을 위한 일에는 조금 무심했던 여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시절을 잘 버텨온 우리 엄마가 참 대단하면서도 여자로서는 어쩐지 조금은 안쓰러운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싶어서 슬퍼진다. 자신은 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고, 고스란히 고생을 짊어지고 살아왔으니...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나의 초년을 살아왔지만, 나는 엄마와는 조금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결정적으로 나는 엄마가 아니라서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 마음은 엄마의 인생을 닮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롯한 나의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야 더 맞는 거 같다. 


내가 40살이 되던 해, 나는 잠시 일을 쉬고 있었다. 직장에 대한 얽매임 없이 자유로웠던 나는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혼자서 훌쩍 떠날 기회가 있었다. 남편이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해주었고, 나는 아무 계획도 없이 기내용 캐리어에 몇 벌의 옷과 잠옷만으로 간단히 짐을 꾸렸다. 인생 첫 혼자 하는 여행을 시작했는데,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나는 그 출발이 이상하게 뜨뜻미지근했다. 떠나는 날 새벽, 공항으로 가는 그 길이 그냥 좀 귀찮기도 했고, 그래서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괜히 가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마음이 조금 달라졌고, 주변도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나의 여행이 시작됨을 인지한 순간 가슴이 설레고, 어쩌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다. 그리고 여행은 늘 그랬듯 최고였다. 역시 직접 해봐야 아는 거였다. 생각만으로는 감히 알 수가 없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시간 맞춰 출퇴근을 해야 하고, 때맞춰 정해진 일을 끝내야 하는 불편함과 긴장감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고, 홀연히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도 없어져서 내심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도 생겼고, 누구의 아내나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라서 감사하게 다니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드는 새로운 취미도 만난 것 같다. 내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해보려고 하지만 시작하려면 새로 사야 하거나 준비해야 할 것들이 귀찮기도 하고, 정해진 시간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쉽게 중간에 멈추고 포기하곤 했었다. 그런데 새로 만난 나의 즐거움은 크게 준비도 필요 없고, 굳이 시간을 정해놓을 필요도 없고, 조용히 나를 만날 수 있고, 알아갈 수 있는 것이라 나의 홀로서기를 위한 최고의 취미가 되어줄 것 같아서 흥분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취미니까 잘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그저 좋아하고 즐기기만 해도 되니까. 


어쩌면 나를 위한 홀로서기는 내 나이 마흔에 이미 시작된 듯싶지만,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꾸 나와 뭐라도 같이하려고 하는 나의 평생의 베프인 남편에겐 조금 미안해지는 마음이지만, 나는 자꾸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지고, 혼자서 해내고 싶은 일들도 하나 둘 생기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마음껏 즐기면서도 결과적으로 잘 해내고 싶어 진다. 


철없고 순수했던 열세 살.

청춘이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가만히 있어도 예쁘던 스물세 살.

내가 없었고, 가족밖에 모르던 서른세 살.

이제 마흔세 살의 어른이 된 나는, 조금씩 나를 찾아가는 아름답고 소중한 나의 중년을 위한 홀로서기를 이제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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