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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Sep 19. 2023

너와 나의 추억

 나는 ‘중독’에 매우 취약한 인간이다. 뭔가에 한 번 빠지면 신체와 정신에 무리가 갈 만큼 몰두하느라 일상이 위태로워지는 순간이 왕왕 있을 정도로. 한때는 ‘혼술’에 빠져 알코올 의존증에 가까운 생활을 했고, 떡볶이, 젤리와 같은 특정 음식에 중독되어 그것만 먹다가 체중이 10kg 이상 불어난 적도 있으며, 알람이 울리자마자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스마트폰 게임에 접속부터 하던 광기의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게임으로 시작해서 게임으로 마무리하는 생활패턴을 약 8년간 유지했다.)

 이런 나를 잘 알아서 흡연은 시도조차 않는다. 담배에 손을 대는 순간, 내가 그토록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부친의 모습처럼 살게 될까 봐.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이 간접흡연에 고통받는 걸 알면서도 20년 넘게 집안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던 그처럼 살고 싶진 않다. 정말이지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어서 지금도 담배를 멀리한다.


 시간을 오래 들여 나를 망치는 몇 가지 중독에서 겨우 헤어 나올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많은 것에 중독되어 있다. 대표적인 건 활자 중독, 기록 중독, 그리고 카페인 중독. 지금의 내가 중독 수준으로 향유하는 것들은 대체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고 자부할 수 있지만, 카페인 중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방탕한 마음은 분명 커피가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우겨대지만 성실한 몸은 알고 있다. 하루에 벤티 사이즈 커피 2잔(1.2L)이상을 기본으로 마시는, 그것도 부족하다고 느끼면 같은 사이즈로 한 잔 더 마시는 나의 행태를. 혹사당하는 장기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가 이렇게 중독에 취약한 사람이 된 건 결핍을 채우고 망각하기 위해 애써온 흔적이 굳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지나간 나의 현재는 늘 결핍 상태였고,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가혹했으므로.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이 공허함을 나는 중독에 기대서 잠시나마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커피에 대한 나의 집착도 그렇다. 카페인으로 하루치의 피로를 잊고, 결여된 에너지를 채운다는 점에서. 매일 커피를, 정확히 말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커피. 고소하고 기름진 커피향, 짙은 갈색 액체 사이를 덜걱덜걱 채운 얼음. 첫 모금에 혈관을 타고 쫙 올라오는 카페인의 느낌. 각성되는 기분. 여름이면 두드러지는 커피잔 표면의 결로 현상, 손가락과 탁자가 축축해지는 그 불편함까지도 껴안을 만큼 나는 커피 마시는 행위를 즐긴다. 그 행위에서 파생되는 모든 순간이 좋다.


 ‘커피 중독’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카페인의 금단 현상인 ‘두통’ 때문에 오후가 되기도 전부터 나는 앓아눕는다. 적어도 오전에는 꼭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하는 이유다. 오늘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눈을 뜨고, 내일 마실 커피를 생각하며 잠든다. 살기 위해 마신다. 매일 마셔야 하므로 좋아할 수밖에 없다. 커피, 너룰 좋아하는 일이 내겐 의지 밖의 영역이다.


 커피를 좋아하게 된 근원을 떠올린다. 커피와 관련된 추억이랄지.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 그 장소는 카페인 경우가 많다. 특히 돈도, 자기만의 방도 없던 청소년기에는 더더욱. 그때는 밖에서 시간을 보낼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는데, 카페는 나와 친구들에게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중학생 때 주말마다 친구들과 자주 가는 카페에 모여 가장 싼 커피 몇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떠들던 날들, 고등학생 때 친구와 야간자율학습을 내빼고 간 카페에서 우리들의 빼앗긴 자유에 대해서 성토했던 시간들. 그렇게 쌓아온 우정을 떠올리면 어디선가 달콤한 커피향이 나는 것도 같다.


 그리고 4년의 대학 시절. 2년에 걸쳐 두 개의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출석 도장을 찍곤 했던 도서관 생활은 각별하다. 두 번째 국가고시를 준비했던 4학년 때는 수업이 없는 날에도 굳이 40분을 운전해서 학교엘 갔다.(4학년 때는 자차로 통학을 했다.) 도서관 건물 안에 딸린 카페에서 동기와 마시는 커피 한 잔의 기쁨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커피를 사서 곧장 학습실로 돌아가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카페에 앉아서 찰나의 자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유난히 공부할 의욕이 나지 않는 날에, 시험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와 마음이 바작바작 타들어갈 때, 합격과 불합격을 생각하느라 불안에 잠식되어 갈 때 등.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던 카페에서 같은 처지에 놓인 동기와 마주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시간이 내게 준 위안이란. 그곳에서 마시던 커피는 쓰고 또 달았다. 괴로웠지만 외롭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집에 있는 게 숨 막혀 카페로 도피하던 날들도 떠오른다. 졸업하고 독립하기 전의 일이다. 하고 있는 일에도, 주변 관계에도 지칠 대로 지쳐 몸과 마음이 망가져 있던 나를 이끌고 자주 카페를 찾았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조용히 일기를 쓰던 시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참 좋았다. 그 힘으로 버티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카페에 가는 일이 드물지만 그럼에도 커피는 거르는 법이 없다. 책상 앞에 앉아 직접 내리거나 사 온 커피를 여유롭게 마시며 매일 생각한다. 결코 여유 부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 어제 쌓아둔 설거지거리와 오늘 먹을 음식, 거실장에 내려앉은 먼지와 산처럼 쌓인 빨래, 반려견 오복이의 산책 같은, 밀려있는 할 일에 대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미루고픈 나의 글쓰기에 대해서.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이 글도 커피의 힘으로 쓰고 있다. 커피를 내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뇌의 강력한 저항을 도저히 꺾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나의 나약함을 인정해야겠다. 벤티 사이즈의 커피 두 잔을 연달아 마셔야만 글을 마무리할 수 있는 인간. 지금도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이제 막 두 번째 커피를 끝장내던 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마지막 문장을, 이 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커피를 위한, 커피에 의한, 커피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커피를, 커피값을 줄이라는 그대들에게 고한다.

“커피값을 줄이라니, 정말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 <커피와 담배>, 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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