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물리적 거리
나 "여름방학이라 아주 살판이 나셨군요 학교 방학숙제 없니?"
아들 (행복한 얼굴로) "있어도 없어"
나 "아 뭐래니"
아들 "엄마 오늘까지만 놀게"
그렇게 오늘까지만 논다던 아들은 3주 반의 여름방학 중 2주를 주야장천 놀았다
의사 선생님들에 따르면
식사 후 바로 눕지 말라고 한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의심이 많은 나는 늘 궁금하다
"위가 싫어하는 거 맞아? 밥 먹자마자 몸이 이렇게 원하는데?"
나도 이렇게 눕고 노는게 혹은 누워서 노는게 좋은데.. 너도 좋겠지하고 푹 쉬도록 내버려두었다
휴직도 마찬가지다
몇 년 동안 늦은 나이의 공부며 아이 돌봄 + 사서교사로서 직장맘을 하는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오다가
올해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 첫째의 중학교 입학 그리고 나의 대학원 입학으로
우리 집 구성원 4명 중 3명이 1학년이 된 사유로 휴직을 했다
휴직을 하자마자 내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선천적으로 놀기 위해 태어난 슈퍼히어로처럼 빈둥빈둥 알차게 잘 쉬었다
물론 곧 대학원이 개강을 해버렸지만 (틈틈이 잘 놀았다)
아시는 분은 아실 거다
노는 관성은 있어도 일하는 관성은 없다는 뉴턴할아버지도 울고 가실 직장인 노는관성 제1 법칙을
나 "방학해서 여친 안 만나시나요? "
아들 "어 지난주에는 우리가 가족 여행 갔고, 이번주는 여자 친구가 가족여행이라 담주에 보등가봉가"
학기 중에는 반 친구들이 하도 놀려 대는 통에 교실에서 여친과의 대화는 조심스럽다고 했다
둘이 말만 하려고 하면 반 아이들이 엄청나게 짓꿋게 놀린다고 했다
얼마나 놀리기 좋겠는가 ㅋ 나 같아도 놀리고 싶겠....
그래서 주말에 따로 만나서 놀았는데
드디어 국어시간에 여차저차 한 모둠이 되어서 그때는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국어시간 외에는 급식도 정해진 순번이 있기 때문에 같이 먹을 수 없어서 찾아낸 방법이
함께 등교하기이다
등교시간을 맞춰 둘의 동선이 겹치는 빵집 앞에서 만나
학교까지 같이 걸어가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간다고 했다
나 "그럼 손도 잡나?
아들 (정색하며) "등굣길에 손잡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난 그게 쫌 그렇더라"
나 "어 그래 미안~"
한 번은 둘째 등교시키다가 공교롭게도(진짜다 일부러 구경하러 간 거 아니다 껌 팔러 간 거도 아니다 ㅋ)
둘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는데
세상에나 마상에나
여자 친구가 아들보다 10센티나 족히 커보였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지갑을 들고 약국으로 가 (키 크는) 영양제를 샀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나 "연락 자주 하고 그래~ 맨날 같이 등교하다가 방학 동안 3주나 못 보면 나중에 어색할 수 있다 ㅋ"
아들 "어제도 카톡 했어 여행 사진 보내줬어"
나의 주적이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이라고 지난번 말씀드린 바 있다
아마 게임이 문제가 확실하다
게임을 시작한 아들은 친구의 권유로 시공간이 뒤틀려 멈춘 곳 = 피시방 맛을 알게 됐다
3주 반의 짧은 방학 동안 게임 맛을 알게 된 아들은 그렇게 여친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나 "내일이 개학인데 숙제는 다 했니?"
아들 "독후감 하나 써가는 거 있는데 지금 할게 (하겠다는 시점이 개학 전날 밤 10시다.. 이런 식이다)
나 "얼른 숙제해라 내일아침에 여친이랑 만나서 등교하려면 일찍 자야지?"
아들 "여친 답장이 없어"
나 "에?? 너 차였나 보다"
아들 "아니거든"
나 "맞거든 게임만 하다가 여자 친구에게 차인 게 확실하다"
농담으로 말했는데
아들은 문을 닫고 그의 동굴로 사라졌다
나는 조금은 예상이 된 바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학기 개학 후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들 "엄마 여친이 내 톡에 답을 계속 안 해"
나 "헐~ 진짜? 학교에서는?"
아들 "여자애들하고 모여 있어서 내가 다가가기가 쫌 그래... 뭔가 철벽느낌?"
나 "헐..."
그때 아들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들 "여보세요? 어 왜? (상대방의 말소리를 듣는다) 어? 어.. 어 알았어 툭...
나 "여자 친구야?"
아들 "아니 같은 반 *B인데.. 여자 친구가 나랑 이제 등교 안 하고 앞으로 B랑 하기로 했데..."
*B는 같은 반 여자아이로 아들과 여친사이에서 오작교를 해주던 아이다
나 "아...."
아들 "그리고 내일 3교시 쉬는 시간에 만나서 얘기 좀 하자는데?"
올 것이 왔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