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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고 어리석었던 나에게

새벽녘 무거운 안개와 풀 피 냄새가 나는 그곳

by 학교도서관

너 아니잖아

그때 너

최선을 다하지 않았잖아


"내 꿈엔 돈이 많이 들어"라며 그만둔다고 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누리는 안락해 보이는 삶

네가 방탕하게 소비 할 수 없는, 짧은 유희의 시간이 부러운 ..

그런 얄팍한 마음이었잖아


너 최선을 다하지 않았잖아

대회에 나가기 전에

충분히 몸을 풀지 않았고 그래서 부상도 왔고

그 핑계로 다음 대회도 포기하고

회복훈련에서도 도망쳤잖아


세상이 너를 속인 적도 없었는데

너는 늘 불안해하고

실체가 아닌 그림자를 보며 겁먹고 두려워만 했잖아

눈앞에 작은 장애물 때문에

그 뒤에 수확할 탐스러운 열매도

선택받은 사람들의 얘기일 뿐이라며

찡얼거렸잖아


나의 어린 시절아

그때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니?

정말 남들에게 이야기했듯

죽을 만큼 아팠던 게 맞니?


매일 새벽부터 시작되는 처절한 경쟁의 압박보다

너를 움직이는 동력을 상실했다는 걸 들키기 창피해서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기위해

거짓말 했던 거잖아


악을 쓰고 밤새도록 울며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연습했어도

그깟 떨어져나간 피와 살점이 뭐가 그리 아까웠고 상처가 두려웠니?

그럴 마음이 없었던거잖아


너는 이 길이 전망이 없다며 돌아섰지만

사실은

까발려진 성적이 비참하고 창피했던 거잖아

이 길이 러프라서 그랬던게 아니잖아

비열한 어린것아




사람들이 그러더라

어리고 어리숙했던 과거의 나를 용서해야

현재의 나를 인정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로 한 발

내 디딜 수 있다고 말이야


그치만,

나는

어리고 어리석었던 나를 용서할 수가 없어

그래서 현재의 내가 진흙탕 속에 사나 봐


기계적으로 새벽 4시 알람에 일어나

필드에 들어설 때 맡았던

갓 깎은 잔디의 풀 피 비린내와

무겁고 빽빽하게 내려와 나를 기다리던

그린의 안개를 왜 두려워했니?

이제와 그 서늘한 새벽을 그리워하면 어떻하니?

어리고 어리석은 나의 젊음아


너는 아름다웠는데

왜 눈 앞에 기회를 못보고 그리 허둥대다 끝내버렸니?

왜 한 발만 더 침착하게 내딛지 못했니



오늘밤에도 난

그 이유를 찾지 못하겠어

그래서

파도가 회오리 치는

깊은 바다속

산호의 무덤지기가 되어

진흙과 먹물을 뒤집어 쓰고 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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