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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Sep 29. 2022

텅 빈 여백, 꽉 찬 독백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78. 신사임당

  새벽시장을 가로지르는 경쾌한 뜀박질 소리, 갓 잡은 생선이 펄떡거리는 부두의 경매 소리, 잠든 도로를 씻기는 청소부 아저씨들의 고른 비질 소리, 녹즙을 배달하는 엘리베이터의 문 열리는 소리, 그 소란하고 분주한 소리들은 오늘을 깨우는 자명종이지.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새로운 시작입니다."라고. 


  엄마의 오늘을 깨우는 자명종은 시흥에서 의뢰한 여성 리더들의 아침 강의였어. 강의장에 도착하니 뭐랄까, 비 온 뒤의 죽순처럼 생기가 넘치고 활달한 모임이라는 인상이었어. 밝은 얼굴, 명랑한 말투가 테이블 위에서 통통거리니 나까지 기운이 나더라. 반백의 여성 리더들도 꽤 있었는데 왠지 자랑스럽더라고. 엄마가 한창 일하던 30~40대엔 직장 관리자의 대부분이 남자였는데 이제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여성 분들을 보면 참 든든해. 


  가뿐한 마음으로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모임 간사님이 기가 막힌 맛이라며 지역 특산물인 포도 한 상자를 주셨단다. 정신을 단단히 차리지 않았다면 자칫 사고 날 뻔했어. 배 고픈데 차 안이 온통 달콤한 포도향으로 그득해 손이 저절로 핸들을 놓고 포도 상자로 가더라니까. 몽롱히 취할 정도였는데 꾹 참고 느루와 함께 먹으려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어. 


  엥, 느루가 없네. 아, 깜박 잊었구나. 얼마 전 결혼한 친구를 오늘 만난다고 했지? 언제 들어오니? 오면 엄마랑 쇼핑 가자. 엄마, 추석 때 오빠한테서 봉투 받았어. 화장대 위에 <행복 추석>하고 적힌 봉투를 올려놓았더라. "엄마, 내가 엄마 사랑하는 거 알지! 마음을 드릴게요."라는 말로 퉁치면서 생일 선물도 건너뛰던 녀석이 어쩐 일이라니! 취직이 좋긴 좋구나. 아들에게서 명절 쇠라고 돈 봉투도 받고. 이제야 그 봉투를 열어보누나. 오호~ 빳빳한 오만 원권이네. 누가가 사랑한다는 말을 지폐에 썼나 보다. 손가락에서 하트가 뿅뿅 튀어 오르고 한 장씩 경쾌하게 착착 넘어가는 소리에서 발랄한 사랑 고백이 들리는 걸. 역시 현금이 주는 기분 좋은 만족감이 있어. 추석 카드도 있네. 분명 사랑한다는 말일 거야. 배 고프니 이따 읽어볼게. 


  일단 누가가 준 용돈으로 근사하고 화려한 외식을 하고 네가 바르고 싶어 하던 립스틱도 사고 오는 길에 반찬거리랑 과일도 사자. 추석 뒤 장을 보지 못해서 냉장고가 텅 비었거든. 냉장고 열어봐. 정말 밑반찬이 하나도 없단다. 버섯이랑 시금치, 연근, 멸치, 꽈리고추, 메추리알, 두부, 오이, 양파 등등 살 게 많네. 아, 가지도 사자. 엄만 짭조름하고 달큰한 가지 조림 좋아하는데. 가지는 참 독특해. 그치? 색도 진한 보랏빛이 나고 과육도 스펀지처럼 폭신하단 말이야. 속을 파내 다진 양념 고기를 넣고 쪄도 맛있어. 가지는 굴처럼 호불호가 딱 갈려. 우리 집에서도 나만 좋아하니까. 아빠랑 누가, 느루 모두 가지 반찬 싫어하지.   


  갑자기 '가지' 역성을 들고 싶어 지네. 원래 가지는 한자로 '가자(茄子)'야. 소리만 취하고 뜻을 바꾸면 한문으로 '가자(加子)' 즉 자식을 더한다는 뜻이 되어서 옛 어른들이 화폭에 가지를 그릴 때는 자손이 번창하라는 의미를 담았어. 


  느루야, 가지를 그린 우리 옛 그림도 있단다.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신사임당 <가지와 방아깨비>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가지와 방아깨비>야. 초충도(草蟲圖) 8폭 병풍 중 한 폭이지. 초충도는 풀과 풀벌레를 그린 그림을 말해. 그렇지만 단순히 풀과 벌레만을 정물화처럼 그린 건 아니야. 서양 중세미술이 신의 말씀을 그림으로 나타내려 했던 것처럼 우리 옛 그림은 대상의 재현이 아닌 삶의 소망과 기원, 벽사(辟邪), 철학 등을 표현하려 했거든. 신기방기 하지. 그래서 읽는 법이 있단다. 엄마랑 한번 천천히 읽어볼까?


  화면 중앙에 흰 가지와 자줏빛 가지가 왼쪽과 오른쪽에 매달려 있어. 가지 위엔 무당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네. 무당벌레는 등의 딱딱한 딱지로 둘러 있잖아. 이를 갑옷을 입은 것에 빗대 갑충(甲蟲)이라고 불렀어. 갑충은 곧 갑제(甲第)로 연상되어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라는 뜻을 담게 되었지. 또 흰 가지 위엔 흰나비가 자줏빛 가지 위엔 붉은 나방이 있어. 나비나 나방은 둘 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다시 나비나 나방으로 변하기에 변화와 발전을 의미하지. 다른 뜻은 또 다른 그림에서 설명해 줄게.


  신사임당의 세밀한 관찰력은 여기에서도 돋보이는데 두 날 것의 더듬이를 봐. 흰 건 더듬이가 곤봉 모양이고 자줏빛은 가느다란 실 모양이잖아. 예로부터 곤봉 모양의 더듬이를 가지면 나비고 실, 깃털, 톱니 모양의 더듬이를 가지고 있으면 나방으로 이름 지었어. 둘의 차이를 파악하여 구분하고 흰나비의 날개는 위로, 붉은 나방의 날개는 아래로 향하게 해 구도를 균형 있게 잡았구나. 


  또 오른쪽에 벌 두 마리와 방아깨비 한 마리, 그리고 왼쪽엔 개미 두 마리와 바닥에 산딸기, 쇠뜨기풀이 자라고 있어. 벌은 여왕벌에게 충성하여 일평생 일을 하니 충성을, 개미는 집단생활을 하며 질서를 지키고 협동하니 군신 간의 의리를 뜻 해. 방아깨비, 산딸기, 쇠뜨기는 낳은 알의 수와 덩굴로 인해 번식을 의미하지. 


  그러니 이 그림이 담고 있는 함의(含意)는 자손이 번창하고(가지, 산딸기, 쇠뜨기풀, 방아깨비), 나중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여(무당벌레), 벼슬길에 오르거든 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신하끼리 협력하며(벌, 개미),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유도해 높은 지위를 얻으라는(나비, 나방) 것이지. 한 폭의 작은 그림이지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화면의 짜임새를 구상하는 신사임당의 눈썰미와 일상에서 접하는 단순하고 흔한 생물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를 담았던 선조들의 철학을 느낄 수 있어. 


  설명이 장황했지만 가지 반찬은 조금만 할게. 느루랑 누가가 좋아하는 연근 조림은 많이 해주마.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을 워낙 좋아하잖아. 그러고 보니 연은 버리는 게 하나도 없네. 모양도 고딕 성당의 '장미의 창'을 닮았어. '연', '연밥'하면 생각나는 신사임당의 그림도 있구나.

  

신사임당 <노연도 鷺蓮圖>



  느루야, 이 작품은 신사임당의 <노연도 鷺蓮圖)야. 연밥이 보이니? 위쪽 화면 가운데 벌집처럼 생긴 깔때기 모양이 연밥이란다. 연은 여름에 꽃을 피웠다 가을이 되면 연꽃 진 자리에 연실이 박힌 저런 깔때기 모양의 연밥이 나오지. 잔잔한 가을 연못 위에 연밥과 백로 두 마리가 서 있네. 한 마리는 두 다리를 벌려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는 머리를 앞으로 쭉 빼 뭔가에 집중하고 있어. 아하, 부리 앞에 자그마한 물고기가 있네. 물고기를 노리고 있나 봐. 또 한 마리는 생각에 잠긴 걸까? 아님 너희들 말로 멍 때리는 걸까? 한쪽 다리를 살짝 들고는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누나. 머리 위 상념이 날리는 듯 고운 깃이 외로워 보여. 


  그런데 느루야, 혹시 이상한 부분 없었니? 하긴 도시에서만 자란 느루는 알아채기가 쉽지 않은 지점이지. 신사임당은 세밀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핍진(逼眞:사물을 아주 닮다)한 묘사로 당대가 인정한 빼어난 화가였어. 그런 그녀가 여름 철새인 백로와 가을 연밥을 한 화면에 두었구나.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지. 


  전통적으로는 연밥과 백로를 같이 그릴 때는 백로 한 마리만 그렸단다. 왜냐고? 아까 우리 옛 그림은 읽는 법이 있다고 했잖아. 백로는 그 흰 빛으로 고결한 선비를 상징했는데 한 마리의 백로(일로, 一鷺)는 한 길(일로, 一路)과 소리가 같아. 또 연의 과실, 연밥은 곧 연과(蓮果)인데 조선의 고시였던 소과-대과를 의미하는 연과(連科)와 통했지. 이 둘을 이으면 일로연과(一路連科)가 돼. 즉 연밥과 백로 한 마리는 과거시험인 소과 대과를 연달아 급제하라는 의미를 담았던 거야. 


  느루에게 누군가 이런 그림을 그려준다면 행정고시 1,2차를 단번에 합격하라는 축원을 담아 보낸 거지. 받으면 얼마나 기쁘겠니! 마치 부적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은데? 누가 이런 그림 그려주면 좋겠구나. 어, 그런데 이 그림엔 백로가 둘이야. 물론 꼭 한 마리 여야 한다는 건 아니야. 또 백로 두 마리는 부부의 금슬을 나타내기도 하고. 하지만 어릴 적부터 학문을 익히고 문인화를 그렸던 신사임당이 화법을 몰랐을 리 없는데 무엇 때문일까? 



이종상 작 <신사임당 초상 >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평산 신 씨로 태조 건국공신 신숭겸의 18대 손 신숙권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강릉의 명문 참판 최응현의 외손녀로 신사임당은 휘뚜르르한 명문가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었어. 1504년 강원도 강릉 북평촌에서 태어나 1551년에 돌아가셨지. 


  느루야, 너 연산군 알지? 흥청망청(興淸亡淸)의 주인공이자 사극의 단골 소재인 성종에게 사약을 받아 죽은 폐비 윤 씨의 아들 말이야. 폭군이었던 연산군을 반정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의 재위 기간이 1506년에서 1544년이거든. 그러니까 신사임당의 삶은 조선 전기, 중종 시대의 정치와 문화 속에 있어. 천재든 영웅이든 과학이든 예술이든 시대가 낳고 기르는 법이니 그녀의 그림을 이해한다는 건 그녀가 살았던 당대의 풍경을 읽어야 하는 일이지. 


  그녀는 조선이 점차로 남성 중심의 사회가 되는 16세기, 위태롭게 흔들리는 시대를 산 여성이었어. 중종은 연산군 때 무너져 내린 도덕과 학문을 성리학적 왕도정치로 다시 세우려 했구나. 반동은 원래 가파른 법이지. 성리학적 가부장제의 사회도덕은 남녀 차별을 더욱 심화시켰고, 여성의 사회 예술 활동도 허락하지 않았어. 또한 신진 사림의 재등용은 유교 경전의 해석을 뙤약볕에 말린 고무처럼 딱딱하게 만들고 말았단다. 사회 곳곳에 부황을 뜰 수도 없는 울혈이 들기 시작했지. 


  혼인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어. 흔히들 500여 년에 걸친 조선시대의 결혼제도가 처음부터 가부장적 종법제인 친영제(親迎制) 즉 시가살이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친영제가 사회에 뿌리내린 건 임진왜란 이후야. 고구려 때부터 이어온 우리나라의 전통적 혼례는 남귀여가제(男歸女家制 : 처가에서 혼인생활을 시작하고 아이가 성장하면 남편의 본가로 가는 것) 였단다. 당연히 당대 여성들은 재산분배나 상속, 호주권도 갖고 있었지. 사임당의 외조부 이사온, 아버지 신명화도 처가에서 살았구나. 


  어쨌든 사회 풍습과 집안 내력으로 보아 19세에 이원수와 결혼한 신사임당도 강릉에 있는 걸 당연히 여겼을 거야. 실제로 결혼 몇 달만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사임당은 친정에서 삼 년 상을 치르고 난 뒤 시어머니를 뵈러 파주 율곡리로 갔으니 말이야. 세대 간의 입장이 달라 이런저런 우격다짐 중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요즘의 결혼이 다시 전통 혼례제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 느루의 결혼한 친구들이 주로 친정 가까이 살지 않니? 물론 지금은 육아 문제가 큰 이유이긴 하겠지만.



신사임당 <이곡산수병> 2폭 중 맹호연의 제화 시



  효성 지극한 신사임당의 마음과는 달리 시대 흐름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고 남편 이원수는 홀어머니의 외아들이었어. 사임당은 친정과 시댁을 오가다 1541년 38세 되던 해에 아주 서울로 떠나오게 되지. 교과서에 실린 시,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은 이때 쓰인 것이라고 해.


<대관령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慈親鶴髮在臨瀛(자친학발재림영)
 身向長安獨去情(신향장안독거정)
 回首北坪時一望(회수북평시일망)
 白雲飛下暮山靑(백운비하모산청)


 늙으신 어머니를 강릉에 두고
 외로이 서울길로 떠나는 이 마음
 때때로 고개 돌려 북평 쪽 바라보니
 흰구름 아래로 저녁산이 푸르구나.



  신사임당은 늙으신 어머님을 홀로 두고 떠나는 안타까움과 함께,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선 서울로 가야 하는 자신을 돌아보았을 거야.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 지를 스스로 물어보았을 거야. 이 시를 읽으면 마음속 깊은 문답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저녁산이 푸르구나'하며 애써 신산스러운 마음을 다독인 사임당의 모습이 보여. 


  그래서인지 엄만 지폐에 그려진 반듯한 이마와 반달눈썹, 살짝 다문 입술의 단정한 그녀가 가끔은 무척 쓸쓸해 보여. 전문 화인(畵人)을 능가하는 숙련된 솜씨와 군자의 기품이 서린 그림을 그린 예술인으로서 라기보다 주로 조선 성리학의 대학자, 율곡의 어머니로 알려지고 활용된 그녀의 삶을 엿본 내 안타까운 마음 탓인지도 모르지.



신사임당 <이곡산수병> 산수화 2폭 중 이백의 제화 시 



  느루야, 사임당의 마음을 옮긴 듯한 산수도 <이곡산수병>을 보렴. 이 산수도는 두 폭 병풍 그림으로 맹호연과 이백의 시를 화제로 쓰고 그림을 그렸어. 이런 전통적인 형태를 소동파가 말한 '화중유시(畵中有詩) 시중유화(詩中有畵)'라고 해.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오른다.'라는 말이지. 그래서인지 느루야, 우리 옛 그림은 보여주려는 것보다 저절로 드러난단다. 서양의 팝아트나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보면 눈앞에 종주먹을 들이대 눈 돌릴 곳이 없는 반면 우리의 옛 그림은 가장자리 없이 우려 나오는 여린 잎 같아. 찻잔을 제외하곤 모두 빈 공간이지. 


  그림이 아주 선명하진 않지만 천천히 살펴볼까? 위 그림은 옅은 묵으로 흐릿하게 먼 산을 세우고 가까이 보이는 산은 굵지만 부드러운 중필로 강건한 능선을 살렸구나. 왼쪽 강촌마을을 지키는 굳센 고목이 한껏 가지를 펼쳐 하늘을 걸었네. 적막한 강기슭, 배에 앉아 외로이 근심을 낚는 나그네에게 높이 솟은 달이 성큼성큼 다가오누나. 


  이백의 제화 시가 있는 아래 그림은 더 고즈넉해. 서산으로 지는 해에 햇무리가 어렸어. 비가 오려나. 습기 머금은 바람이 무거운지 물결은 낮고 저마다의 속도로 겹쳐 흐르네. 갈매기 없는 바다엔 돛단배 한 척 외롭고 먹의 농담으로 먼 산에 그늘과 빛을 둘렀구나. 오른쪽 흙으로 쌓은 둔덕 위 고부라진 나무의 줄기나 가지가 짧고 거칠게 표현되어 있는데 그 아래 어디에도 배 닿을 포구가 보이지 않네. 사공은 어디에 배를 댈꼬.  


   사임당은 위엄과 자유분방함, 현명함과 의로움, 엄격함과 자애로움을 가진 군자가 되고자 했어. 그래서 역사적으로 추앙받는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의미로 자신의 호를 사임(師任)으로 지었지. 그녀는 시(詩), 서(書), 화(畵)를 통해 어머니로서, 사대부의 아녀자로서 자식과 남편의 입신양명, 또는 성리학이 중심인 사회문화의 중요한 가치를 존중했고 기원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치유를 판다'고 하던가? 꿈을 펼치고 싶지만 '여자'라는 현실의 무게로 휘청거리는 자신을 혹시 외다리로 서 있는 백로를 통해, 달을 낚는 나그네를 통해, 배를 댈 곳 없는 사공을 통해, 슬쩍 끼워둔 것은 아니었을까? 진정한 군자(君子)의 길이 험난한 것처럼 그녀가 지향했던 바른 사임(師任)의 길도 고되고 외로웠던 건 아닐까? 



신사임당 <어숭이와 개구리>



    아, 느루야, 이제 돌아온다고? 결혼 한 친구 얼굴이 너무 예뻐졌다고? 그러게. 사랑받기 때문인가 보다. 추석 때 신랑이랑 양가(兩家)에서 음식도 같이 만들어 보고, 일가친척에게 인사도 드리고, 서로 다른 제사 예법도 배우다니 요즘도 그런 젊은 친구가 있니? 기특하구나! 듣기만 하는 엄마도 이리 대견한데 양쪽 어른들이 얼마나 귀애했을까? 지금 핸드폰으로 축원하는 그림 보내줄 테니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네가 전해주겠니?  


  엄마가 일부러 나비가 있는 그림으로 보냈어. 나비가 하느적 공기를 딛고 날아오르기만 해도 이미 기쁨과 자유가 꽃밭을 채색하지. 고 사브작 거리는 날개는 어찌나 가녀리고 고운지 날 것들 중 미인대회를 한다면 단연코 미(美)를 수상할 거야. 참새가 성형해서 나비가 될 수 있다면 참새들이 병원 예약하느라 바빠 가을 햇곡식에 허수아비 세워 둘 일 없을 걸. 게다가 아름다운 날갯짓에 행복한 의미도 담겨 있단다. 나비는 한자로 접(蝶)이라고 하고 중국어로 '디에'라고 읽어. 중국에서 80을 뜻하는 늙은이 질(耋)도 '디에'라고 읽는단다. 소리가 같지. 그래서 나비는 '장수'를 의미하기도 하고, 부부 금슬이 좋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혼수나 베갯모에 수놓기도 하지.


  그리고 엄마가 보기에 이 그림의 여우주연이 나비라면 남우주연은 척 보기만 해도 귀여운 개구리인 것 같아. 올챙이가 자라 개구리가 되잖아. 그래서 개구리는 변화와 성장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의미로 왕의 탄생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거든. 그런데 이 그림에서 개구리의 관심은 온통 사뿐히 나는 나비에게 가 있어. 튀어나온 주둥이와 꿈벅대는 눈이 얼마나 순수한지... 바로 눈앞에 있는 메뚜기에는 1도 관심이 없구나. 메뚜기 자존심 좀 상했겠다. 흐흐


  일출의 빛을 담은 어숭이 꽃과 밤하늘에서 떨어진 별 모양의 도라지 꽃, 나비와 잠자리와 개구리까지, 화면 안 어느 배우도 사랑스럽지 않은 이가 없는 신사임당 감독의 <어숭이와 개구리>라는 작품이야. 느루야, 네 친구가 사랑하는 이와 해 뜨고 별 뜨는 하루하루, 더 성장하고 더 아름답게 팔순까지 금슬 좋게 해로하라는 의미로 보낸다. 꼭 전해주렴. 

 


(위) 발문-송시열의 <송자대전> 중 부분 / (아래) 그림-신사임당 <묵란도> 


 

   사임당도 남편과 금슬 좋은 부부로 백년해로하고 싶었을 텐데 탁월했던 그녀에 비해 남편 이원수는 너무나 평범했구나. 그는 아내의 높은 부덕과 깊이 있는 지식, 뛰어난 재능은 인정했지만, 또 때때로 타인에게 내세워 명문가의 아내를 둔 자신을 높이려고는 했지만 정작 사임당의 예술을 이해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그녀를 사랑스러워한 것 같진 않아. 


  분 냄새보다 그윽한 단아한 기품, 달큰하게 속삭이는 말이 무색한 영롱한 총기, 스무 폭 치맛자락도 모자라는 고귀한 그녀의 덕성도 이원수에겐 그저 감당하기 무거운 과제일 뿐이었어. 그는 맏아들 이선보다도 어린 주막집 권 씨라는 여인을 첩으로 삼았고 생전 사임당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나중 재가도 했지. 바다를 보지 못한 피라미나 붕어에게 물이란 고작 시내나 강일 터.


  사회의 처첩 제도가 강고해지고 여자의 지위가 낮아진 만큼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단다. 2005년도에 세상에 알려진 신사임당의 <묵란도>에도 낙관이나 서명은 남아있지 않아. 여즉 신사임당 작품의 진위(眞僞)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 오히려 후대의 우암 송시열이 신사임당의 작품을 보고 "그 손가락 밑에서 표현한 것으로도 능히 혼연히 자연을 이뤄 사람의 힘을 빌려 된 것은 아닌 것 같다"라며 후세에 남긴 글이 사임당 작품의 탁월함에 대한 증거가 되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야. 

 

  오늘 아침 만난 여성 리더들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지는구나. 오랜시간 사회의 편견에 맞서 꿋꿋이 버텼을 그 의기(意氣)를 본받고 싶다. 엄마도 더 성장해야지. 느루야, 어서 오렴. 오면 엄마랑 신사임당에 대해 더 얘기하자꾸나. 아, 참. 누가의 선물 카드를 읽어 봐야지. 


  "할머니, 이번 추석 보름달이 가장 크대요. 동그란 보름달을 할머니랑 함께 보고 싶었는데 제가 못 가요. 대신 작은 선물을 드립니다. 곧 찾아뵐게요. 사랑해요.  -할머니의 멋진 손자 누가가" 


  아이쿠, 이 봉투를 추석 때 할머니에게 전해 달라는 거였구나? 이런... 이런...  



신사임당 <묵포도도>

 


  갑자기 배가 아프고 속이 쓰리네. 어쩌니... 널 기다리지 못하고 신사임당의 <묵포도도> 보며 그냥 포도 먹으련다. 


  아~ 이리 좋을 수가! 번잡하고 속된 기운 하나 없이 단아하고 소박해. 난(蘭)이나 대(竹) 나무는 잔잔한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고결하고 맑은 기운을 드러내게 한다면 이 포도의 탱글탱글한 생명력과 다정한 상냥함은 뜨겁고도 서늘한 공기가 몽실몽실 향을 깨워 코끝에 전해주는 것 같아. 유약하게 휘지도 딱딱하게 곧지도 않은 줄기, 귀엽고 운치 있게 말린 덩굴손, 열매가 맺지 않은 빈 꼭지, 묵의 농담만으로 표현했는데도 실한 질감이 느껴지는 포도알, 게다가 커다란 포도송이를 화면 중앙에 배치해 단정하지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구도를 활짝 편 오엽(五葉)의 뻗친 기운으로 단번에 뒤집은 절제와 파격! 이것이 신사임당의 <묵포도도>가 가진 매력이지.


  느루야, 가만 봐. 야문 손으로 포도 알맹이를 빼먹기엔 포도 한 알 한 알이 너무 싱그럽지 않아? 저 <묵포도도>의 포도는 한 송이를 들고 사과처럼 입으로 베어 물어야 할 것 같지 않아? 톡 터지는 알맹이에서 입 안 가득 즙이 흐르겠지. 손에는 햇빛과 흙과 바람과 향기가 오래도록 머물 거야. 그윽하게 퍼지는 포도향~


  눈이 먼저 맛보는 이 작품을 가만 들여다보면 엄만 저 먼 곳에 있는 신사임당에게 나직이 묻고 싶은 게 있어. 제각각 자기의 때에 맞춰 익어갈 포도 한 알 한 알이 제 스스로 깊어지도록 왜 몰입의 여백을 두지 않으셨냐고. 원래 이 작품 하단에 화가가 붓을 내려놓고 한(一) 숨을 내쉴 공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고. 그 마지막 여백의 사자후(獅子吼)가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 드러내고 싶었던 감정, 펼치고 싶었던 재능이 사회적 한계에 부딪친 것에 대한 침묵과 인내가 아니었냐고. 


  그리고 마지막 내가 드리고 싶은 한마디는... 당신의 그 꽉 찬 독백이 수많은 여성들의 아침을 깨웠다고.


  느루야, 역시 맛난 포도는 겉껍질은 얇고 안쪽이 두툼하면서 즙이 꽉 차 있어. 향기롭지. 마치 이 포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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