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77. 펠릭스 발로통 (2)
느루야, '옥수수'는 참 예쁜 이름 같아. 옥수수를 삶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어. 노랗게 익은 알갱이가 얼마나 탱글 거리고 투명한지 마치 옥으로 빚은 것 같다니까. 엄마가 옥수수 삶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왔어. 맛있게 먹으렴. 엄만 지금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 카페에 앉아 있거든.
"엥? 파자마 파티?"
친구네에서 밤에 함께 노는 거라고? 우와~ 그거 재미있겠다. 엄마도 하고 싶다. 친구네가 일산인데 넘 멀지 않아? 하긴 거리가 다 무슨 상관이야. 친구랑 밤을 새우며 함께 있다는 게 설레는 거지. 그럼 뭐하고 놀건대? 영화도 보고 가져간 와인도 마신다고. 아이고, 느루 네가 와인 가져갔구나. 왠지 엄마가 좋아하는 와인이 없더라. 그래, 밤에 친구들이랑 함께 먹고 마시며 사진도 찍고 재미난 얘기도 나누고 추억도 만들고 오렴.
엄마도 중, 고등학교 시절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내는 하룻밤을 꿈꿨었지. 왠지 '집이 아닌 낯선 곳'에 대한 낭만적 동경이 있잖아. 하지만 그 시절, 어린 여자가 집 밖에서 밤을 난다는 건 생각도 못했단다. 아주 큰 일 나는 줄 알았어. 워낙 보수적인 사회였고 안전에 대한 불안이 컸으니까. 그래서 기껏 꾀를 낸다는 게 시험공부를 함께 한다는 핑계로 가까운 친구 집 나들이를 허락받는 거였어. 물론 시험공부는 말뿐이고 이런저런 얘기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 뒷날 판다가 친구 하자고 할 만큼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으로 꾸벅꾸벅 졸며 학교 가야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친구랑 밤을 새운다는 그 설렘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어느 날 갑자기 부풀어 오르는 제 가슴에 놀라 아무도 몰래 거울을 보며 두 손으로 가슴을 만져보던 공통 화제가 있었구나. 또 교회 오빠를 짝사랑한다는 친구의 고백을 들으며 연애경험은 단 한 번도 없으면서 나름 이리저리 훈수를 두고는 둘 만의 비밀이 생긴 듯했어.
누구에게나 성장기가 그렇듯, 지금의 너희들처럼 십 대였던 우리가 꿈꾸는 성적 판타지가 있었단다. 동시 상영 영화관의 비 내리는 낡은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이 허리가 개미 앞다리만 한 비비안 리에게 키스를 하면 우리 교복 앞가슴 단추는 팝콘이 냄비에서 튀어나가려고 하는 것 마냥 터질 듯했어. 키스신을 보며 한편으론 부끄럽고 한편으론 그런 키스를 꿈꾸는 자신에게 놀라 얼굴이 빨개졌구나. 아~ 이 그림 같았을까?
느루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왠지 어설프고 서투른데도 떨림과 흥분이 있지. 펠릭스 발로통(Fellix Vallotton, 1865~1925)의 <키스, 1898>란다. 서너 가지의 덤덤한 색과 극히 평범한 구도만을 가지고 흡인력 있는 감정의 공감대를 선물하지. 남자의 무너져내리는 뒷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의 어깨에 얹은 여인의 간절한 손가락 때문일까? 먼 길을 돌아 이제 다시 만난 연인처럼 둘의 키스는 깊고 격렬하구나. 배경도 인물도 세월에 바랬는데 둘의 그림자만이 지나간 시간을 안쓰러이 붙잡고 있네.
펠릭스 발로통의 작품엔 분명한 그만의 사인이 있어. 오만할 정도의 내면적 구도, 명랑함이라곤 찾을 수 없는 색, 무수한 자기 검열도 걸러내지 못한 어두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지. 같은 '키스'를 다룬다 해도 발로통의 그림은 젊은 너희들의 파자마 파티 소재가 되진 못할 거야. 캔디 사탕처럼 더 달달하고 더 알록달록한 이야기에 흥미를 가질 거야. 느루가 좋아하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키스>나 바람 속을 떠돌며 영원히 안식에 이르지 못하는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작품 같은 거 말이야. 서정적이면서도 정열적이고 비극적이면서도 운명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키스!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릴 폭풍 같은 입맞춤이 밤을 건너는 와인 안주론 제격이지.
하지만 언젠가 느루와 친구들도 함박 웃고 있는 얼굴에서 눈물이 보이고, 고음의 화려한 멜로디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들리고, 무덤덤한 표정에서 고독이 주는 통렬함을 눈치채게 되는 날이 오겠지. 몰랐으면 좋았을지도 모를 삶의 비의(悲意)! 그런 날 아침에 떠올려도 좋은 화가라면 펠릭스 발로통이 아닐까?
쯧쯧... 달콤한 시간을 꿈꾸고 있는 느루에게 적절한 화가는 아닌 것 같구나. 그나저나 엄마가 조금 일찍 왔나 봐. 카페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네. 오늘은 엄마 A4 친구들 만나. 얼굴이 A4 용지만 한 여자 넷이 모였기에 모임 이름을 A4(아줌마 넷)로 지었다고 했더니 네가 막 웃었잖아. 그 친구 넷이 코로나만 잠잠해진다면 내년에 해외여행 가려고 하거든. 그래서 대학가에 있는 카페에서 모이기로 했단다. 늦은 오후이긴 하지만 카페 앞이 대학교 교정이니 가벼운 산책도 가능하겠지. 네 파자마 파티만큼 재미있을 거야.
이렇게 복층으로 되어있는 카페는 은밀해서 좋아. 우리끼리 뭔가 비밀스럽게 속삭일 수 있거든. 한산한 2층에 앉아 누가 먼저 오나 1층 현관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엄마 왼쪽 테이블에 있던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어서 나갔어. 술을 먹기엔 이른 시간인데 벌써 취해 보이네. 무심히 고개를 돌리는데 엄마 귀에 나지막이 소리가 들리는 거야.
"저 친구는 자기가 담당 교수랑 연구원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스스로 모르는 것 같아. 저이가 돌린 랩 공동 설문 데이터가 오염돼서 논문 자료 신뢰도를 산정할 수 없대. 하는 수 없이 다른 연구원들은 어찌저찌 그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는 논문으로 제출했고 완성도가 다소 떨어져 학술지에는 못 올리게 됐다고 하더라고. 게다가 연구랩에서 사사건건 본인이 옳다고 주장하며 굽히질 않는대. 본인은 열심히 했는데 박사 떨어뜨렸다고 억울해 하지만 저 상태로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아."
곧 앞서 나간 남자가 돌아왔고 테이블에선 이런 소리가 들려왔어.
"그래, 그래. 그 속상한 기분 우리가 다 알아. 자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술 한 잔 마시고 풀라고. 내가 교수님께도 잘 말씀드려 볼게. 다음엔 꼭 될 거야."
엄만 남의 비밀이라도 들은 양, 얼굴이 후끈했어. 하나 둘 도시의 불빛이 켜지는 창 밖을 바라보는데 이 그림이 유리창을 서서히 붉게 물들이더구나.
느루야, 펠릭스 발로통의 <순결한 수잔나, 1922>를 보렴. 교회 제단석에 사용함직한 벨벳 커튼이 드리운 어두운 실내, 연한 장밋빛 소파, 장밋빛 소파보다 더 발그레한 두 남자의 귓바퀴. 그녀의 붉은 옷과 유혹을 머금은 입술,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는 가늘고 긴 눈, 불나방이 날개를 퍼덕이는 듯 반짝이는 모자, 그 반짝이는 욕망을 향해 은밀히 기울이는 세상의 몸짓.
그림의 주인공은 구약 외경 다니엘서에 나오는 수잔나야.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바빌론 힐키야의 딸이자 큰 부자인 요하힘의 아내지. 그녀는 넘치게 빼어난 용모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이었어.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는 원로이자 지혜로운 재판관으로 유명한 두 노인이 아름다운 수잔나를 몰래 지켜보며 음심(陰心)을 품었구나. 그들은 목욕 중인 수잔나에게 다가가 "네가 우리와 잠자리를 하지 않으면 '네가 젊은 남자와 통정(通情)하고 있는 걸 보았다'라고 하겠다."는 말로 위협했지. 그녀는 끝까지 거절했어.
수잔나는 재판에 회부되었고 사형을 받았단다. 그런데 다니엘이란 소년이 한 노인에게 물었구나.
"당신은 수잔나의 부정한 장면을 어디에서 보았나요?"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서."
소년은 또 다른 노인에게 물었구나.
"당신은 수잔나의 부정한 장면을 어디에서 보았나요?"
"떡갈나무 아래에서."
다니엘의 지혜로 수잔나는 누명을 벗었어.
이 이야기는 경건한 성경 속 여성의 누드를 캔버스에서 다룰 수 있는 드문 소재였어. 당시 화가의 팔레트는 신화나 성서에서 허락한 소재만을 드러내거나 섞을 수 있었으니까.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더 많은 화가들이 다양한 얼굴의 수잔나를 그렸지. 화가로서의 걸출한 실력보다 성추행을 통해 화단에 이름을 알린 17세기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피렌체 매너리즘의 명맥을 이은 알렉산드로 알로리,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에 이르기까지 수잔나는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단다.
그런데 발로통은 냉소적인 위트로 그 공간을 비틀었어. 옛 그림의 수잔나가 순결함의 아이콘이자 관음증을 대리 만족시키는 모델이었다면 발로통의 수잔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서 그려지고 있어. 보이는 자가 아니라 보려는 자, 세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욕망을 드러내고 그 욕망을 부추기는 교활한 유혹자의 모습이지. 발로통의 캔버스에서 미소 짓는 수잔나는 부유한 남편을 얻고자 화려한 파티를 여는 선정적인 미망인 같아.
발로통은 '순결'이라는 전통의 무게가 두터운 사건을 왜 이렇게 비틀었을까?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인정하는 고귀한 가치가 그럴만한 것이냐고 묻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가치를 모티브로 한 음흉한 거래, 예를 들면 남성지배적인 사회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여성의 누드를 관음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비겁한 행태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일까?
엄마가 발로통의 의도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귀로 스쳐가는 남의 일에 대해 무얼 알고 판단하겠니! 그저 들을 뿐이지. 하지만 일어섰던 남자나 평가를 했던 두 남자의 관계가 진실하지 않은 건 알 수 있었어. 그들은 서로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일어섰던 남자가 자신의 잘못은 덮고 억울함에 대해서만 토로했던 것처럼 그를 평가했던 두 남자도 그 남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내심 판단하고 있었으면서도 눈앞에선 값싼 위로와 동정, 헛된 약속을 남발했으니까. 공감의 말 뒤편에 뿌려지는 불신의 씨앗을 보며 엄마 맘이 씁쓸하구나.
씁쓸한 마음도 다독일 겸, 이왕에 발로통의 그림을 보았으니 친구들이 오기 전, 조금 더 보여줘도 되겠니? 너도 아직 일산 도착 전이지? 느루야, 작품이 곧 그 예술가라고 전제한다면 펠릭스 발로통은 극히 개인적이고 분석적이며 현실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아. 그는 빨강 노랑 파랑 검정인 세상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어 별들이 형형한 밤하늘을 보여주었던 고흐처럼 안타깝고 사랑스럽지 않아. 그가 존경했다는 알브레히트 뒤러나 도미니크 앵그르처럼 탐미적이고 꼼꼼하며 지나치게 사실적이지도 않아. 그는 단지 붓이라는 거대한 프레스로 세상과 감정을 눌렀어. 압화 시킨 캔버스에 세상이 감춘 감정의 내장이 터져 나왔지.
펠릭스 발로통이 20대였던 1880년대 후반은 프랑스의 살롱전이라는 배가 인상주의의 거센 파도에 뒤집혀 표류할 때였어. 근대라는 태풍은 프랑스가 가꾸고 키운 전통 미술의 산실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가 250여 년을 실어 나르던 고전들을 바다 밑에 수장시켰구나. 낡은 것들은 가라앉고 그 사이로 새로움의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단다.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상징주의, 전. 후기 인상주의 등 새로운 가치를 표방하는 시대의 영감(令監)이 폭발했어.
느루야, 이 시기 그의 예술 역시 스위스 로잔에서 파리로 입양되었단다. 그는 1865년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1882년 로잔대학에서 고전연구로 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보수적인 태생이었어. 프랑스 파리의 가장 유명한 사립학교 쥘리앙(Académie Julian) 아카데미로 유학한 후에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전통기법을 익혔고, 예술비평을 쓰기도 했으며, 1886년 자신의 자화상으로 살롱전에 입상하기도 했지. <자화상, 1885>에서 보푸라기 하나 없이 말끔한 정장과 사나운 세상에 맞서는 그의 눈빛을 봐. 청교도적이고 치밀한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잖아. 그의 초기 작품에 사실적인 초상화와 정물화가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니지.
1880년대 후반, 아버지의 재정 악화 때문이었는지, 장티푸스로 인한 건강악화 때문이었는지 그는 목판화에 관심을 기울였어. 회화보다 낮은 예술매체로서 취급받던 목판화는 대량생산이 가능해 상업적 유통에 적합한 장점이 있었거든. 곧 그는 '고급 예술로서의 목판화의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단다. 단순한 형태, 깊이 잠겨있던 감정 덩어리인 검정과 그 상황을 배반하는 흰색 현실의 극적인 대조, 패턴이 강조된 독특한 배경, 실로그래피(Xulographie)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목판화의 르네상스'를 열지. 이는 나중 그래픽 아트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해.
또 그는 쥘리앙(Académie Julian) 아카데미에서 실험적인 전위예술을 수혈받는단다. 교수이자 초상화가였던 쥘 조제프 르페브르(Jules Joseph Lefebvre)와 귀스타브 블랑제(Gustave Boulianger)의 영향 아래 미술이 종교의 기능을 대신하려는 혁명적인 시도를 하게 돼. 그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라는 뜻을 지닌 '나비(Les Navis) 파'의 일원이 되었구나.
나비 파는 1892년 피에르 보나르, 모리스 드니, 에두아르 뷔야르 등의 젊은 예술가로 이루어진 신비주의적 상징주의 예술가 그룹이야. 자연의 빛과 인상을 묘사하는 인상주의의 흐름을 거부하고 화가의 내면을 분석하려 했기에 현실적인 색채나 형태는 무시했어. 우습게도 그는 이 그룹에서 '외국 나비'라는 별명으로 불렸단다.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그의 성향 때문이었지.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에밀 졸라의 사설 "나는 고발한다"의 주인공인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 사건'으로 1900년, 나비 파는 뿔뿔이 흩어지게 돼. 다른 이들과는 달리 발로통은 드레퓌스를 열렬히 변호했거든.
발로통은 1899년, 10여 년을 사귀었던 헌신적인 여인을 두고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젊은 미망인 가브리엘 로드리게스 앤리케(Gabrielle Rodrigues-Henriques)와 결혼했어. 그녀는 유럽의 성공적인 미술상 베른하임 죈(Bernheim Jeune)의 딸이었지. 이후로 발로통은 경제적 불안정에서 벗어나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1900년, 프랑스 시민권도 획득하게 된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아파트 꼭대기에 다다른 나비처럼 누구보다 높이 날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그가 앉을 꽃잎이 있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어. 엄만 모르는 것 투성이야. 대신 그가 그린 <포커게임, 1892>을 보면 엄만 그의 외로움이 보여.
느루야, 작품을 같이 읽어 보자. 높이 솟아오른 테이블 한가운데 램프가 서 있네. 소실점이 높아 화면이 쏟아질 듯 위태로워. 게다가 카드놀이를 하는 다섯 명은 램프 왼쪽으로 치우쳐 이를 관찰하는 화가를 배경으로 몰아내며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고 있지. 결혼한 가브리엘의 가족들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분법적 화면의 왜곡된 구도는 몹시 부자연스러워서 발로통과의 단절된 모습을 강조하는 것 같아. 그림 속의 그는 필시 외로웠을 거야. 세상을 기죽이는 눈빛을 가진 그가 이리도 외진 곳에 자신의 좌표를 찍었으니까.
그의 대부분 작품에서 고성(高聲)이나 희열이나 절망이나 분노 같은 부피가 큰 감정은 없어. 그는 효율적인 이삿짐센터 직원처럼 부유하는 감정들 중 자신이 나를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박스에 담아 놓았어. 이삿짐 중 높은 건 낮게 누르고, 화사한 건 담백하게 거르고, 장식은 떼어 내고, 큰 건 작게 짜부라뜨렸어. 그는 자신이 가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무조건 얇고 가볍게 만들었지. 또 자신에게 일을 맡긴 위탁자에게 그가 보낸 이삿짐 박스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여느냐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어. 누군가는 홀로 있을 때 살그머니 박스를 열어보곤 펑펑 울기도 하고, 누군가는 많은 이들 앞에서 '음~ 별 것 아니군.'하고 치워 놓게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중으로 미뤄 놓거나 아예 잊을 수도 있게 말이야.
느루야, 네가 삶의 비의를 알게 된다면 그땐 발로통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될 거라는 말을 했지? 앞에 소개한 목판화 <돈, 1897>도 친구에게 가는 동안 다시 한번 감상해 보렴. 하얀 드레스가 상징하는 순수함이 화면의 2/3를 덮고 있는 검은돈과 권력에 의해 포획되는 것인지, 돈이 고픈 여인이 보이지 않는 순진함의 그물을 신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인지. 세상은 알 수 없고 결말은 너의 것이야.
옆 좌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전히 술이 오가고, 발로통의 그림자는 유리창에 물들고, 그 유리창을 열고 엄마의 친구들이 이제 막 도착하는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평범하고 익숙한 아줌마들이지. 삶의 무게를 견디어 낸 든든한 허리와 야박하지 않게 인정을 나눠줄 줄 아는 짧고 두툼한 손을 가졌지. 나의 하소연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고 나서 내가 진정되면 나의 잘못을 넌지시 얘기해 줄 수 있는 의리 있는 입술을 가졌지. 사실을 알려주고 진실은 나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무거운 엉덩이를 가졌지.
우린 여행 계획을 세울 거야. 설레는 마음으로 파자마 파티에 모여 속삭일 너희들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여행을 준비할 거야. 아주 오래전, 방 밖으로 소리가 나갈세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 엽서를 쓰던 흥분과 말린 꽃잎을 끼운 시집을 교환하며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던 그 마음을 엄만 앞으로도 쭈욱 냉동 보관할 거야. 친구랑 함께 보낸 밤 덕분에 풋내 나는 소녀가 어엿한 숙녀로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그건 밤을 새우며 시험공부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만큼 명백하지.
커피가 도착하기 전, 소중한 느루의 친구들에게 발로통의 <일몰, 1913>을 선물한다. 아마도 발로통은 일몰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일 거야. 그 많은 일몰 중에서 엄만 이 그림을 최고로 애정해. 금가루를 뿌린 듯 황금빛 윤슬로 물드는 바다! 가녀린 추억의 잔물결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고루 빛나게 하는 부드럽고 찬란한 석양!
해 뜨는 너희들과 해 지는 우리들이 빛이 부서지는 저 바다에서 함께 돛을 올리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