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판 레인 <화가의 작업실> 외
느루야, 햇볕은 아파트 축대 위에서 졸고, 바람은 마른 나뭇가지 위에서 자더라. 나와보니 겨울의 맵고 칼칼했던 공기가 싹 빠져서 세상이 말랑말랑한 인절미 같더구나. 경칩이 멀지 않았으니 뭉쳐있던 흙들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개구리가 눈뜨고, 양지쪽 언덕엔 쑥이 돋겠지. 엄만 수변공원 산책길에 나섰어. 마침 손바닥만 한 물오리들이 물 위에서 갈팡질팡, 움찔옴찔하는 꼴이란! 어린것들은 동물이든 사람이든 어찌 그리 귀여운지...
모자에 패딩점퍼에 바람막이까지 입고 나간 엄마는 금세 땀이 나 겉 옷을 벗어 한 팔에 걸치고는 천천히 걸었단다. 갑자기 풀린 날씨를 예상치 못한 탓에 대부분 옷을 두텁게 입었는지 윗옷 지퍼를 여는 사람, 허리에 둘러 묶는 사람, 모자를 벗어 챙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가득했지. 그때 맞은편에서 아가씨가 걸어왔어. 가벼운 발걸음에 맞춰 단발머리가 찰랑거렸어.
너무나 가볍고 얇은 운동복 차림이었지. 아직은 이른 봄, 아니 겨울 끝자락인데 벌써 저렇게 밝고 가벼운 옷차림이라니 너무 앞선 것 아니야 싶다가 깨달았단다. 그녀는 설렜었구나! 매섭고 긴 겨울 동안 여리고 순한 계절을 그리워했었구나. 햇빛이 얼어있던 시내를 깨우자마자 물오리들이 떼 지어 공처럼 둥글둥글 물 위를 굴러다니듯 그녀도 봄볕 속을 솜털처럼 굴러다니고 싶었구나! 아직 남은 겨울의 추위를 두려워하기보다 연약한 햇빛에 인사를 하고 싶었구나!
봄이 오고 있는 요즘, 홀로 겨울 한복판을 걷고 있는 느루야.
그림은 보이지 않고 이젤의 뒷모습만 있는 이 그림 본 적 있니?
느루야, 챙 넓은 모자를 들고 멀찌감치 캔버스를 바라보는 화가가 있는 이 그림을 골랐어. 불안하고 복닥이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엄마랑 같이 그림 보자. 이리 가까이 오렴. 이 그림은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in, 1606~1669)의 <작업실의 화가, 1629>라는 작품이야. 언뜻 보기엔 너무나 재미없는 그림이지? 뭔가 극적인 이야기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화려한 색이나 육중한 부피감이 느껴지지도 않아.
그저 벽엔 팔레트가 걸려있고 안료를 갈 때 쓰는 돌덩이가 있어. 금가고 회칠이 벗겨진 벽 앞, 화면의 정중앙엔 커다란 이젤이 세워져 있어. 이젤 위엔 어둡고 검은 패널의 뒷모습이 보여. 맞은편 어둠 속에 작업용 타바드를 입은 자그마한 화가가 서있네. 세밀 묘사를 할 때 필요한 몰스틱을 잡고 한 손엔 붓을 들고서 그는 고요히 생각에 잠겼어. 생각에 잠긴 화가의 동그란 눈은 우물보다 깊구나. 이 화면에 무엇을 그려야 할까, 어떤 세상을 담아낼까 고민하는 것일까? 아님 화가란 누구인가를 성찰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절대적 대상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신을 응시하는 것일까? 화가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닿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대상 앞에 움츠리 듯 거대한 화면 앞에 정물같이 서 있구나.
아마도 우린 화가가 무엇을 그리는지 끝내 알 수 없겠지. 그가 저 패널을 돌려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을 테니까. 그는 우리가 모르는 언어와 가보지 않은 세상이 있다고만 말하는 걸 거야. 어쩌면 육중하게 압도하는 화면 앞에 그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걸지도 몰라..
엄마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할머니 댁 뒷산에 올랐을 때가 떠올라. 그때 처음 본 광경을 잊지 못하거든. 엄마가 여덟 살쯤이었을 거야. 할머니 댁 가파른 뒷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았지. 그리곤 왠지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단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승선이 보이지 않던 학교 운동장이 공책만 한 거야. 쉭쉭 소리와 함께 뿌연 김을 내뿜어 날 자지러지게 했던 방앗간 굴뚝 연기도 바느질 함에 담긴 흰 무명실 같기만 한 거야. 집도 우체국도 동네 한쪽에 어마어마하게 쌓아놓았던 통나무들도 모두 성냥갑만 한데 그 너머로, 아... 그 너머로 멀고 넓게 펼쳐진 바다! 하늘을 가득 담아 짙푸른 바다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구나!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려왔지. "넌 그저 작은 꼬마에 불과해. 세상은 네가 양팔을 힘껏 벌린 것보다 훨씬 크다구." 엄만 저 무한한 바다를 생각할 때마다 발에 뿌리가 내려 땅 밑으로 뻗거나 등에 날개가 달려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어. 그때의 어린 내가 아는 단어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 아마도 자유나 아름다움이나 무한 같은 것을 동경하게 된 시작이었는지도 몰라. 뒷산을 내려오면서부터 였을 거야. 일찍 철이 들게 하는 질문들, 스스로가 대답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 질문들, 예를 들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머무는 곳에서 무얼 할 수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가 때때로 이마에서 내 발등 위로 툭 떨어져 날 자빠뜨리곤 했지.
느루야, 그가 스물여덟에 그린 <깃털 달린 벨벳 모자를 쓴 자화상, 1635>이야. 귀공자 같은 모습이지. 깃털 달린 모자는 그를 화가라기보다 사회 저명인사로 보이게 해. 그의 자존심도 저 깃털처럼 우뚝 솟았겠지. 화려하면서 보드라운 벨벳의 질감과 비싸 보이지만 무심한 듯 걸친 장식들, 꼼꼼하고 숙련된 솜씨로 수놓은 무늬들, 사방으로 빛을 산란시키는 겉옷 위로 자긍심에 넘치는 얼굴이 있어. 도제들의 땀 내와 열기로 분주한 작업실과 진귀한 물건들로이 가득 찬 수집실과 신이 내린 재능을 가졌던 렘브란트의 절정기였지.
모든 것이 넘치는 시기의 자화상임에도 "빛의 연금술사"라는 평가를 받는 그가 제조한 빛은 폭발적이거나 번들거리지 않아. 마치 빛을 물레에서 자아내듯 내부에서 솔솔 풀려 나와. 빛은 얼굴에 머물러 있는데 얼굴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야. 부드럽게 곱실거리는 머리카락, 벨벳과 비단의 광택,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은은히 캔버스를 감싸안아 그의 내면에 있는 다정함, 호기심, 흥은 넘치지만 결코 경박하지는 않은 성정을 보여주지.
렘브란트에 대한 연구로 저명한 쿠루트 바우흐에 의하면 그는 유화로만 56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해. 특히 1630년대에 15점을 그렸다지. 문학가가 자신의 성찰을 담아 자서전을 집필하듯 자화상은 화가의 고해성사라고 해야겠지. 그는 인생 최고의 시기에도 쉬지 않고 자신을 돌아 보았어. 그것이 성공에 대한 자기 확인이었는지, 내밀한 자의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주로 고통이 있을 때 일기를 쓰는 엄마는 축복의 시기에 자화상을 그린 렘브란트가 놀랍구나.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레이던의 부유한 제분업자 아들로 태어났어. 열네 살이 되어 레이던 대학의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는 화가의 도제로 들어가 미술 수업을 받았어. 당시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에서 독립했고 근면 성실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던 칼뱅의 교리를 에너지 삼아 청어와 곡물을 싣고 세계를 누볐단다. 근면한 노동으로 부(富)를 이룬 그들의 자긍심은 유럽 귀족들의 과시적이고 현세적인 사치와 향락을 저급하게 여기고 보다 더 고급스럽고 우아한 예술을 원했어. 그중 운하를 따라 늘어선 정돈되고 검박한 저택을 장식할 그림도 필요로 했지.
느루야, 렘브란트는 17세기, 세계의 중심이었던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였단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부(副)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과 그 부가 신이 주신 은총이라고 여기는 '검소함에 대한 의무' 사이에 '겸손'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낼 줄 알만큼 탁월했어. 그의 손이 닿은 초상화는 주름 속에서 인물의 기품과 지위가 드러났고, 역사화는 사건의 줄거리가 힘줄처럼 불거져 나왔어. 그의 그림은 현란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었고 덕분에 주문은 쉬지 않았지.
모든 것이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던 스물아홉의 그는 아내 사스키아와 자신을 모델로 <탕아와 창부, 1635>라는 그림을 그렸어. 사스키아 반 오이렌 부르흐는 명문가의 후손이자 레이우바르던 시장의 딸이었어. 권력과 재물이 함께 들어왔지. 사스키아 또한 렘브란트를 사랑했고 그는 많은 작품에서 아내를 그렸어. 그녀는 밝고 활기차고 자유분방했던 것 같아. 다양한 그림에서 얌전히 순종하는 태도보다는 도발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된 것을 보면.
느루야, 위 그림을 봐. 렘브란트는 자신을 모델로 한 방탕하고 자유스러운 탕아의 무릎에 사스키아를 올려놓고 희롱하고 있어.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화려한 보석, 넘치는 술잔이 흥겨워. 하지만 무엇일까? 그의 작품엔 그가 흘려놓았던 빛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울림이 있어. 사스키아 옆에 그린 공작이나 눈금을 그려놓은 유리잔 같은 것. 마치 바니타스 정물화처럼 "이런 사치와 향락, 모든 것들도 다 지나가는 헛된 거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느루야, 암스테르담에서 거래하는 어떤 품목보다 시세가 높았던 그도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든단다. 직접적인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림인 <야간 순찰대, 1642>의 주문을 받고 나서야. 원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의 중대>라고 하지. 네덜란드는 왕조를 거부하고 시민들이 흘린 피와 투쟁을 통해 이룩한 공화국의 나라였어. 공화국 건국에는 화승총을 든 시민들이 있었지. 그들은 자신의 애국심과 무용(武勇)을 기념할 그림이 필요했고 당시 최고의 화가였던 렘브란트에게 의뢰했어. 단체 초상화는 그가 뛰어난 화가인지 평범한 화가인지를 가르는 시금석이기도 했구나.
느루야, 생각해 볼래? 모두 동일한 금액을 지불한 스무 명 정도의 인물을 한 화면 안에 담는다면 어떻게 그리겠니? 가장 쉽고 흔하고 리콜 없는 방법이 일렬로 나란히 줄을 세우는 걸 거야. 이렇게 말이야. 당시 대부분의 단체 초상화는 이런 방식으로 그려졌단다. 마치 너희들 졸업사진 같지. 렘브란트의 제자였던 사무엘 판 호흐스트라턴이 "칼 하나로 죽 목을 벨 수 있는 구도"라고 빈정댔다는 글도 있구나.
많은 수와 한정된 공간은 각자의 개성을 빛나게 하기엔 너무 큰 제약이지. 게다가 개개인의 모습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단체가 갖는 고유한 정체성도 표현해야 했을 거야. 민병대라면 긴 창과 멋진 제복으로 용감함을 상징해야 했을 테고, 길드 조직이라면 거대한 함선을 배경으로 근면함과 부를 상징하는 소박한 장식이 필요했을거야. 아무래도 화가가 갖는 상상력은 최소한도로 제한되었겠지.
하지만 렘브란트는 위대한 화가였고 관습을 경멸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보는 화가였어. 그는 에스파냐를 상대로 자유와 독립을 쟁취한 시민들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싶었지. 그는 심혈을 기울여 서사(書史)와 상상(想像)이 결합한 역동적인 단체 초상화를 구상했단다. 뒤편의 깃발과 구조물을 통해 후면은 좁고 전면은 넓게 보이는 시각적 착각을 일으키는 놀라운 선택을 했구나. 이러한 구도는 화면 한가운데 반닝 코크 대위를 축으로 사람들이 앞으로 막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이들은 북의 신호를 따라 구호를 지르며, 곧 앞으로 행진할 것 같아. 또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양쪽에 붉고 노란색을 배치해 포인트를 두면서도 주변으로 시선을 분산시켰어. 인물 하나하나의 표정이 살아있고 어둡고 밝은 키아로스쿠로적 명암은 화면에 역사화 같은 깊이감을 부여했지.
어떤 학자는 1642년, 안드리스 데 흐래프라는 후원자가 자신의 초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불을 거절한 후부터 렘브란트가 추락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이 <야간 순찰대>의 수취가 거부되어 서서히 주변부로 밀려났다고도 해. 어떤 게 정확한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이 그림에 대해 모든 주문자가 만족했던 것은 아닌 게 분명해. 아마 같은 금액을 지불했음에도 자신은 뒤편에 있다거나 조그맣게 묘사되었다거나 늠름해 보이지 않다거나 하는 이유들이었겠지.
느루야, 아까 렘브란트는 늘 자신을 돌아봤다고 했었지. 1643년의 <자화상>이야. 쇠락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해(年)지. 느루가 1635년의 자화상과 비교해 보겠니? 염색이 빠지듯 미사여구가 빠졌구나. 지난번 자화상에 형용사와 부사가 많았다면 지금은 주어와 목적어와 술어만 있는 기분이야. 뭉툭한 코는 여전하지만 콧날에 실금 같은 빛줄기가 떨어져 코가 우뚝해 보이네. 앙다물었던 입술은 살짝 미소가 어렸어. 깃털과 보석으로 화려했던 옷은 단순하고 고급스러운 장식 두 줄로 인해 소박해 보여. 양 미간에 잡힌 주름은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본 총기 있는 눈을 강조해 주는구나. 그는 왜 달라졌을까?
1642년, 사랑했던 아내 사스키아는 결혼 8년 만에 사망하고 말았어. 세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죽었고 네 번째 아이 티투스만을 남겨둔 상태였지. <야간 순찰대>의 나쁜 평가와 몇 건의 분쟁으로 인해 작품 주문은 급감했고 그동안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그에게 빚을 남겼어. 그는 암스테르담의 번화가에서 밀려나 황량한 벌판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지. 하지만 아직은 다시금 화려하게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마음만 먹으면 그러기에 충분한 능력도 있었어.
재기에 필요한 그 '마음'이란 사람들의 취향을 존중해 그들을 기품 있고 우아하게 표현하는 것, 추한 것을 들여다보지 않고 일그러진 것을 매끈하게 만드는 것이었어.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능력은 있었지만 그럴 마음을 갖지 못했지. 그는 추한 것 자체도 인간이 갖는 아름다움 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든. 옹이도 나무의 일부라고 말이야. 고통과 주름도 삶의 질료라고 말했지. 갈수록 그가 그린 그림은 비극을 품고 있었고 쭈글쭈글했고 어떨 땐 불쾌했어.
느루야, 그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단다. 사회의 명성이 추락할수록 렘브란트는 '작업실의 화가'로 돌아갔어. 그리고 다시금 무한하고 절대적인 캔버스 앞에 섰구나. 화면에 무엇을 그려야 할까, 어떤 세상을 담아낼까, 화가란 누구인가를 성찰하듯 그는 홀로 섰지. 자신을 응시하면서.
느루야, 생각하기에 따라 렘브란트는 위대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술적 철학 때문에 소외되고 가난하고 남루하게 스러진 사람일지도 모르겠어. 그는 살아생전에 지금과 같은 인정을 받지는 못했으니까. 그럼 "가뜩이나 세상에 주눅 들고, 진로 때문에 힘든 나에게 엄마는 이 불행한 화가를 왜 소개하는 거야? 잘 나가는 모델을 보여줘도 시원찮은 판국에" 하는 마음이 들겠지?
음... 렘브란트가 캔버스 앞에 섰듯, 지금이 다시 거울 앞에 설 때라고 말하고 싶어. 엄마가 뒷산에 오른 것처럼 지금이 다시 주위를 둘러볼 때라고 말이야. 내 능력은 하잘 것 없고, 그동안 쏟아부었던 노력이 다 무의미하고,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모든 일에 무기력해지고, 날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이때, 스물여섯이라는 시간에서 잠시 떨어져 자신을 봐. 너도 어쩌면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중일테니까.
느루야, 넌 하던 연구를 중단했고, 다른 어떤 것도 시작하지 못했어. 하지만 엄마가 보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청춘의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이야. 매일매일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 바로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길을 걸을지 고민하는 것 말이야. 작업실의 확가가 우리에게 패널을 돌려 무엇을 그릴 것인지 알려주지 않듯 신은 우리에게 네가 무엇이 될 것인지 알려주지 않으실거야. 다만 넌 먼저 이젤 앞에 서야해.
우린 대부분 무얼 잘하는지 모르지. 시도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재기에 대한 안전망 없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도전은 회복 불가능한 실패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야. 하지만 당장 돈을 벌고 능력을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자연과 대화하는 것. 그게 앞으로 나아가는 첫 발자국이란다.
"책을 살 돈도, 좋은 사람과 만나 커피를 마실 염치도, 느긋하게 자연을 바라보러 여행할 여유도 없는데 이 무슨 소리예요" 하겠지?
앞으로도 돈은 일생 벌어야 하지만 나침반을 갖지 않으면 평생 헤매게 된단다. 대학원을 졸업한 지금, 번아웃이 된 것처럼! 그러니 젊음의 무기라는 '당당함'을 끌어안고 버텨보렴.
그리고 강철로 만든 얼음세상에 패딩 점퍼와 바람막이로 무장하지 않고 여린 피부와 얇은 운동복을 입고 나섰다고 겁내지 마. 겁 많은 이들은 꽃피는 5월이 되어도 잠깐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내내 겨울 속에 있을 거야. 감기를 두려워 않고 봄이 오는 걸 설레 하는 마음이 곧 봄을 누리는 마음이란다. 느루의 어깨를 안아줄게.
느루야, 햇빛 찬란한 지금, 운동화 신고 가볍게 걸어보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