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 주 - 조지 케일럽 빙엄 <시골 선거일>
투표소 앞의 긴 줄을 보았습니다. 전 오미크론만 전염되는 줄 알았는데 '비장함'도 옮아가나 봐요. 다들 결기에 찬 얼굴입니다. 지금 각자의 입장과 견해에 따라 분투(奮鬪)하고 몰입하는 것이겠지요. 어느 쪽이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로 상대방의 논리와 비전을 분석하고 비교해 소중한 의사를 표시하는 것일 겁니다.
그 엄정한 얼굴에 다정한 공기로 다가오던 봄이 절름거리는 걸 느낍니다. 제가 봄이라면 살랑거리는 바람으로 다가가 얼굴을 어루만져 주고 싶더군요. 우린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굳세고, 더 명예롭고, 더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라고요. 차악의 선택이니, 뽑을 사람이 없느니 하지만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대부분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려고 애쓰며, 과거를 기억하되 결국은 미래를 선택한다고 말입니다.
행복한 투표를 위해 그림 한 점 소개합니다. 조지 케일럽 빙엄(Geonges Caleb Bingham, 1811~1879)의 <시골 선거일 The country Election, 1854>입니다.
축제일 같지 않으세요? 청명한 하늘 아래, 한 눈에도 야외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네요. 왼쪽 앞엔 술에 취해 얼굴이 불콰해진 남자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그 뒤로 아예 술에 취해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안고 줄을 서려 애쓰는 남자도 보입니다. 그 옆의 남자는 자신의 왼쪽 손바닥 위에 뭔가를 암시하는 손짓을 하고 있어요. 초록 코트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은 제법 의미심장합니다.
건물 오른쪽을 볼까요. 평생 가족을 위해 농장을 일구고 거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걸 바래고 기운 바지가 말해주고 있군요. 그들은 고개를 빼고 어깨를 구부려 신중하게 토론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보고 정보를 확인하는 실크 햍을 쓴 두 남자도 보이네요. 그 위론 두 명의 서기가 뭔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들뜨고 소란스럽네요. 무슨 일이죠?
그림의 장소는 카운티 법원 앞입니다. 선거일이지요. 오늘날 선거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의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푸르고 맑은 하늘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관중들 앞에서 지지하는 후보를 부르는 공개 선거라는 걸 의미합니다. 성서에 손을 얹고 자신의 선택을 밝혔지요. 성서에 손을 얹은 남자 위 파란 깃발엔 "최고의 법은 인민의 의지"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 아주 색다른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여자가 없습니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맨발의 아이들조차 남자입니다. 당시 여자에겐 참정권이 없었습니다. 여자는 투표할 수 없었죠. 1920년이 되어서야 미국은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합니다. 불과 100여 년 전인가요?
우리나라는 1948년 남녀 모두 투표에 참가했습니다. 2022년인 지금, 우리는 저울에 '여권'이나 '페미니즘', '성별 역차별'의 추를 매달고 눈금을 재고 있습니다. 어떠한 논의든 화두이든 갈등을 유발해 편을 가르는 건 공동체에 유익하지 못합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옹졸한 자세는 공동체의 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다양성'을 잃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예', '의리', '품격', '신뢰', '기품' 등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도덕의 항목들을 값싸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도덕적인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이 그림을 그린 빙엄은 화가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자신이 휘그 당원으로 미주리 주 공직(지금의 시의원이라고 해야 할까요)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니까요.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그는 이제 한 돌도 되지 않은 미국이 민주주의를 만들려는 응집된 에너지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선거를 축제로 만들었고, 그 축제가 지금의 미국을 미국답게 성장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축제처럼 투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