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둘째 주 - 장 프랑수아 밀레 <씨 뿌리는 사람>
한 사내가 있습니다. 기우는 몸을 우뚝 세우려는 듯 그의 앞 발은 단단히 대지를 딛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오른손에는 힘이 넘치네요. 그의 어깨는 완강하고 굳세 보입니다. 눈은 보이지 않으나 아마도 피할 수 없는 노동의 삶을 마주하고 있는 듯 정면을 향해 있군요. 막 동이 트나요? 오른쪽 화면에 희미한 여명이 비칩니다. 물감을 두텁게 바른 붓질과 어두운 색조는 경사진 언덕을 갈지자로 걷는 농부의 걸음이 마치 땅 속에 뿌리를 두고 솟아난, 거친 풍상을 견딘 나무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육중하고 숭고한 노동의 모습입니다.
이 작품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1875)가 태어난 1814년은 프랑스 귀족들이 코르시카 원숭이라고 조롱했던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유배되던 해였지요.
프랑스는 역사의 지층에 쌓인 오랜 모순과 역설로 인해 1789년 대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혁명은 프랑스라는 거대한 유럽의 중심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강도 높은 '시대의 지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지진의 한 복판에서 나폴레옹은 혼돈을 담아내는 새로운 공간이었지요. 그는 귀족들이 우아한 바로크식 서랍 속에 정리해 두었던 유럽의 관습과 문화와 가치를 '근대'라는 용광로 속에 마구잡이로 쏟아 넣었습니다. 펄펄 끓는 '자유, 평등, 박애'가 녹아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쇳물로는 농기구도 무기도 심지어는 장식물도 만들 수 없었지요. 그 뜨거움을 근대의 사상과 정치형태로 변환시킬 거푸집이 필요했거든요. 섣불리 미래를 견인했던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의 깊고 망망한 바다에서 후대가 발견할 화석이 되고 맙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1846년, 극심한 흉작으로 파리 시민은 심하게 굶주립니다. 소수 부유한 지주층이 권력을 잡은 당시의 입헌 군주정은 굶주림과 비참한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을 무시했습니다. 1948년 2월 22일, 파리에서 격렬한 시가전과 폭동이 일어납니다. 드디어 2월 24일, 왕 루이 필리프 1세가 퇴위합니다. 격동의 시기에 품게 된 급진적인 상상력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립니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며 나폴레옹 3세가 집권했습니다. 근대의 개인들은 프랑스의 내일을 낳기 위한 거친 산통을 거듭하였습니다.
뒷걸음치던 1850년, 밀레는 살롱전에 이 작품을 출품합니다. 그는 마치 바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을 꺼내 듯, 인물의 세부 묘사를 생략하고 큰 덩어리만을 남겨 화면 정 중앙에 놓았습니다. 위험한 비탈에 서서 두 다리로 운명을 버티며 씨를 뿌리는 한 농부의 모습!
그의 섬세하고 예민한 시선이 포착한 농부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고 일하는, 노동하는, 그러면서 삶의 무게를 짊어진 숙명적 인간으로서의 농부입니다. 마른 두 손으로 씨를 뿌려 하루 일용한 양식을 구할 수밖에 없는, 낙원에서 추방당해 갈 곳 없는 인간으로서의 농부입니다. 그래서 그의 농부는 끊임없이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시간의 순환, 한복판에 있습니다.
평생을 노동하는 사람들을 즐겨 그렸던 밀레에게 있어 근대 이념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을 죽이고, 왕도 죽였지만 아직은 평등한 인간의 땅을 개간하지 못한 근대의 개인으로서, 나폴레옹이 씨를 뿌린 '자유, 평등, 박애'를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이념과는 상관없이 하루하루의 정직한 노동으로 먹고사는 농부의 삶이 세상의 중심이며 변하지 않는 가치라고 말하려 했을까요?
6월 6일은 현충일과 동시에 망종(芒種)입니다. 망종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벼, 보리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는 시기입니다.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알맞은 때지요. 보리 베고 난 후, 모내기를 하며 풍성한 가을걷이를 상상하듯 다가오는 날들이 낡은 것들을 베어버리고 주체 하나하나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시기이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