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셋째 주 - 존 컨스터블 <건초 마차>
갖은 행사로 바빴던 5월이 지나 6월입니다. 살짝 지친 마음에 오래도록 혼자 걷고 싶고, 바람이 거칠게 웅웅 거리며 어두워지는 숲을 보고 싶고,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리면 온 몸으로 비를 맞는 야생의 나무를 보고 싶네요. 그 아래에서 함빡 비를 맞아도 좋겠구나 하고 꿈꿉니다.
20여 년 전, 직장에서 피곤한 몸을 가누고 집에 돌아오면 소박한 밥상의 반찬이 되어주던 <전원일기>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농촌의 하루하루를 수채화로 그린 듯 담담하면서도 맑고 깊었지요. 책으로 치자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배우 최불암 씨와 김혜자 씨가 부부로 나왔습니다. 이 드라마는 1,088부작, 20여 년의 장대한 시간 동안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식된 수많은 삶을 쓰다듬고 다독였지요.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동무들과 누가 더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지 내기하던 개울가가 그립고, 이른 새벽이슬을 헤치고 소꼴을 베어 지게로 나르던 아부지의 안부가 궁금해졌으며, 밭에 쭈그리고 앉아 종일 호미질을 하던 어무니 생각에 코가 시큰했지요. 구멍 난 풀의 한쪽을 개구리 똥구멍에 꽂고 바람을 불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개구리 배를 보며 까르르 거렸던 고향의 웃음소리, 해가 산 고개를 넘으면 외양간에 소가 큰 소리로 울며 무서워했던 유년의 어스름이 내 몸 어딘가에 숨 쉬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지요. 그건 아름다움이었을까요? 그리움이었을까요? 아니면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연의 숭고함이었을까요?
이번 주는 산업의 발달로 자신의 땅에서 스스로를 추방한 인간들이 못내 그리워했던 자연이 주인공입니다.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의 <건초 마차>입니다.
더운 여름 오후입니다. 푸른 초원 아득히 뭉실한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었습니다. 화면 앞 구름은 해의 그림자를 얹었는지 약간 검게 그늘져 있습니다. 왼쪽 모퉁이에 물레방아가 돌고 있군요. 시냇물의 번짐이나 물기둥이 없는 걸로 봐서 물레방아는 게으름 피우며 천천히 돌고 있습니다. 굽이진 시냇물 가운데로 바퀴가 잠긴 건초 마차가 농부의 발걸음에 맞춰 건너가고 있습니다.
말들은 잠시 쉬고 싶은 모양입니다. 말의 등은 유순하고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깨를 비비는 나뭇잎들은 보드랍고, 햇빛은 물 위에 반짝이고 바람이 귓가를 속삭이는 여름날, 시원한 이곳에 머무르고 싶겠지요. 물가엔 어리고 눈빛이 맑은 소녀가 아버지를 기다리며 작은 손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을 것 같은 오두막집이 있습니다. 고요한 저녁이 오면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나겠지요? 별들이 시내에 내려와 세수도 하겠지요? 자갈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시냇물처럼 건초 마차는 시냇물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지나갑니다. 마차를 이끄는 농부가 주인이었을까요? 걱정이 되는지 개 한 마리가 시냇가를 서성입니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 풍경이네요.
이 그림을 그린 존 컨스터블은 평생을 영국 서퍽(suffolk) 지방에서 살았습니다. 옥수수와 목초지,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고 실개천이나 수풀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지만 자연이 주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밝았습니다. 그 당시 풍경화는 그림의 여러 장르 중 특히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금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연이 주는 색과 느낌과 구도에 매혹당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었고 매끄럽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 대형 캔버스 위에 자연의 진솔함을 담았습니다. 조미료나 양념 없이 재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풍미를 살렸다고 해야 하나요? 프랑스 자연주의 화풍인 바르비종 파는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조심성 없던 어린 시절” 로 인해 화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조심성 없음으로, 그런 천진함으로, 그는 자연 그대로를 담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의 그림은 <윌든 Walden>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더불어 번거로운 삶의 소란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21세기, 영혼의 필터입니다.
"사람들 무리 속에 있을 때, 또는 이른바 '성공'이라는 것의 한 복판에 있을 때, 나는 내 인생이 하찮으며 정신이 빠르게 약해지는 걸 느껴요. 하지만 떡갈나무 잎이 바스락대는 소리나 참새가 들릴락 말락 짹짹거리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겨울 산책이 다채로워지고, 내 인생은 만족스러워지며, 견과류 알맹이처럼 고소해진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