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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버지 모두가 필요합니다

6월 넷째 주 - 자끄 루이 다비드 <사비니 여인의 중재>

by 안노라

한 장의 그림 속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합니다. 그림은 공간의 기록이자 공감의 기록이자 고통의 기록입니다. 그림을 과거의 자료로 삼아 미래를 예견할 때, 그림은 통찰력을 지닙니다. 그 순간 역사는 점프하지요. 돛으로 바람을 떠보고 망망한 바다로 나서 듯, 어제의 그림을 해석해 내일을 비추어 보겠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납니다. 부당한 권력과 지나친 착취의 결과입니다. 혁명은 급하고 광범위하게 번져 나갔습니다. 혼돈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관용과 포용이라는 단어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립니다. 온건 개혁파였던 지롱드당과 급진개혁파였던 지코뱅당은 앉은 자리에 따라 우파와 좌파로 나뉘었고 극심히 반목합니다.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한 후 17,000여 명의 피가 파리를 적십니다. 피가 아닌 빵과 자유를 원했던 민중들은 절망했고 공포정치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 로베스피에르 역시 단두대에 오릅니다.



자끄 루이 다비드(Jacoues Louis David, 1748~1825)는 자코뱅파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 로베스피에르의 처형 후 그는 감옥에 갇힙니다. 그에게 감옥은 사색의 공간이었을까요? 그는 사면이 막힌 두터운 감옥에서 이념을 초월한 용서와 화해의 상징을 구상합니다.



jacques-louis-david-the-intervention-of-the-sabine-women-1799-obelisk-art-history.jpg 자끄 루이 다비드 <사비니 여인의 중재, 1799>



자, 이제 그림을 읽어볼까요?


로마인들은 카피톨리노 언덕에 정착했습니다. 잦은 정복과 영토 확대로 나라는 번성해 갔지만 아이를 낳고 생활을 윤기 있게 해 줄 여자가 부족했습니다. 초대 왕 로물루스는 주변국 사비니 사람을 초대하고 축제를 벌입니다. 남자들이 술에 취해 잠들자 사비니 여자들을 납치했습니다. 3년 후 딸을 빼앗긴 사비니 군대가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쳐들어 옵니다. 이제 양 쪽의 창은 분명히 상대를 겨누고 있습니다.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그림 왼쪽의 남자는 사비니의 왕 타티우스 입니다. 오른쪽 방패에는 로마라는 글자와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쌍둥이 아이의 그림이 있군요.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입니다. 살육의 무기를 든 양보 없는 전투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화면 중앙, 시간을 정지시키려는 듯, 온몸으로 이를 막아선 한 여인이 있습니다. 양쪽 팔이 외치고 있군요.


“전투를 멈추세요. 저희에게는 아버지와 남편, 모두가 필요합니다.”



타티우스의 딸이자 로물루스의 아내인 헤르실리아 입니다. 그녀 뒤편에는 갓난아이를 높이 들어 올리는 여인, 아기를 꼭 안고 타티우스의 다리를 붙잡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마치 “이 아이가 당신의 손자이자 아들이에요”하고 외치는 듯싶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뒤엉켜 장난치며 순진무구한 얼굴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눈은 생명, 본연의 것을 향합니다.



다비드는 세상의 뒤편으로 물러난 역사적 사실을 현실로 소환해 이념을 위해 더 이상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웅변하고 있습니다. 로마와 사비니처럼 남과 북은 오랜 기간 멀었습니다. 쇠처럼 단단한 판문점의 시린 냉기를 녹일 생명이 있을까요? 평화는 다음 세대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지금의 우리에게 남편과 아들 모두를 갖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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