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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Oct 26. 2022

매미는 지폐 속에

8월 둘째 주 - 정선 <송림한선도>

  이번 주는 조선 사대부가 흠모하고 본받고자 했던 곤충을 죽비 삼아 삶의 부끄러움을 가르쳐 주는 그림을 소개합니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송림한선도 松林寒蟬圖>입니다.



정선 <송림한선도>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아는 것이 독이 될 때도 있습니다. '아는 것'에 한정되어 보게 되거든요. 저건 구도가 안정적이고, 색의 대비가 강렬하고, 또는 전통 기법이 아니고, 균형이 무너졌고 등등...  하지만 진정 탁월한 그림은 보는 순간, 이성이 작동하기 전에 먼저 가슴에 안겨옵니다. 옷고름이 풀립니다.



  이 그림은 어떻습니까? 딱 보자마자 생기가 넘치지요. 우리가 옛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해도 소나무의 솔가지 하나하나가 하늘을 향해 차고 오르는 박진감을 느끼게 됩니다. 활달한 약동이 뿜어져 나옵니다. 휘고 구부러진 가지의 자연스러운 농담이 주는 미적 세련이 눈 맛을 풍부하게 합니다. 



  그리고 떡 하니 화면 중앙에 '나 주인공이에요.' 하며 자리 잡은 매미가 있습니다. 정선은 매미의 눈, 더듬이, 다리, 두 겹의 날개까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샅샅이 그렸습니다. 게다가 대각선으로 뻗은 양 솔가지 한가운데 늠름히 앉아 있는 품새는 누가 보아도 연출된 구도와 자세입니다. 그런데도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해일이 밀려오는 영화의 장면이 CG인 줄 알면서도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세종대왕님이 보셨어도 만원 권 지폐에 그려져 있는 그 흐뭇한 미소를 띠셨을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돈입니다. 무척 좋아하지만 외사랑입니다. 돈이 절 그닥 가까이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안달복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가끔씩 튕겨 주어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연구하는 건 필요하겠지요? 어떻게 해야 마음을 살 수 있나 하고 말입니다.



  이제 세종대왕님이 쓰시고 있는 모자, 저 '익선관'을 자세히 봅니다. 모자 위로 솟은 두 날개가 있습니다. 저게 매미의 날개입니다. 익선관(翼蟬冠)은 '매미 날개 갓'이란 뜻이니까요. 임금을 상징하는 모자에 매미의 날개를 단 건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갖는 정체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의 사대부, 즉 사회를 이끄는 선비들은 '군자(君子)'를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군자란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뜻했지요. 그들은 어진 덕(德)과 높은 지성(知性)을 흠모했습니다. 



  매미는 군자를 은유하는 곤충입니다. 오덕(五德)을 갖고 있다고 하지요. 이는 중국 서진(西晉) 시대, 육운(陸雲,262~303)이라는 시인이 지은 <한선부 寒禪賦, 늦가을의 매미를 노래하다>라는 시에 근거합니다. 육운은 매미의 머리가 선비의 갓 끈 늘어진 모양이라 하여 선비를 상징하는 글(문덕, 文德)이 있고, 이슬(나무 수액)만 먹고살기에 맑으며(청덕, 淸德), 사람이 먹는 곡식을 탐하지 않으니 청렴하며(렴덕, 廉德),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 사니 검소하며(검덕, 儉德), 시기에 맞추어 울고 사라지니 믿을 수 있다(신덕, 信德)고 했습니다. 이를 선충오덕(蟬蟲五德)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정선은 조선 오백 년이 갈고닦아 낳은 진경산수화의 대가입니다. 탁월했던 그가 소재와 주제로 택한 소나무와 매미는 곧 군자의 길(君子之道)이었습니다. 자고로 선비란 소나무의 절개와 매미의 오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거지요.   



  옛 것은 다 곰팡내 나는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버려서 인지, 지폐를 쓰지 않고 카드로 결제하는 시대가 되어서인지, 소나무와 매미는 그저 나무와 곤충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제 사물의 이면을 보려고 하지 않지요. 어찌 사물뿐이겠습니까? 사람도 그 내면을 보일 수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절개'라든가, '의리'라든가, '신의'라는 단어는 사전에만 남아있는 '멸종어'입니다. 외롭네요. 그저 정선의 <송림한선도>를 쓰다듬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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