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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Oct 26. 2022

나비들의 여름 나기

8월 첫째 주 - 펠릭스 발로통 <에트레타에서 해수욕>

  어때요? 시원해 보이시나요? 여름에 지친 나뭇잎이 '우리도 놀고 싶어요'하고 막 뛰어든 것 같지 않으세요?  

  음~ 그렇지는 않다고요? 왜요?

  화면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옷과 물빛이 검고 어두운 초록빛을 뗘서 인 듯하다고요? 



펠릭스 발로통 <에트레타에서 해수욕, 1899>



  그럴지도 몰라요. <에트레타에서 해수욕, 1899>이란 작품으로 펠릭스 발로통(Felix Vallotton 1865~1925)의 그림이니까요. 발로통은 강렬하고 환한 색채를 사용했던 반 고흐와 왜곡된 형태로 인물을 묘사해 깊은 내면에 감춰진 언어들을 화폭에 형상화하려 했던 툴루즈 로트렉의 화풍에 강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회화란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색과 감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화면이란 또 다른 창조이며 형태나 색채 모두 작가의 해석에 따라 결정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인 묘사와 굵은 윤곽선, 상징적이고 장식적인 기법으로 자신의 사색을 나타냈습니다. 회화의 사실성보다 형식에서 발견되는 조형미와 장식성을 추구했고 무척 감각적이었지요.



  또 그는 목판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일본 우키요에 영향을 받은 그의 목판화를 '그림자의 음모'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그림자가 넓고 평평한 흑백의 공간으로 감상자를 데리고 가면 그 심연에 갇힌다고 말입니다. 그의 작품은 현대의 에드워드 호퍼나 스릴러의 대가인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 비유되곤 합니다. 그의 낮고 시각적인 목소리는 너무도 독창적이어서 평범한 예술가들에겐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지요. 


   

  이제 다시 한번 그림을 찬찬히 뜯어볼까요? 더운 여름인가 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가에 나왔네요. 화면 왼쪽엔 노를 잡은 작은 보트가 있지만 수심이 깊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로 줄무늬 옷을 입은 아이가 보트 난간을 잡고 뭔가 얘기를 합니다. 어쩌면 자신을 태우고 더 멀리 나가자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모험심이 강하니까요. 무엇보다 자신의 팔다리를 믿으니까요. 



  화면 앞 가운데에는 여러 명의 어른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짙은 초록 바다에 하반신이 잠겼네요. 검은 옷, 초록 바다, 붉은 티셔츠와 숄 등이 보입니다. 색들에게 서열을 매긴다면 난동이 벌어질 것 같지요?. 어느 색도 엑스트라가 없이 모두 주인공입니다. 화면은 강한 보색 대비로 물놀이를 하고 있는 한 명 한 명의 무게 중심을 고르게 분산시킵니다. 저마다의 충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광경이지요.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누구도 집중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대담하고 획기적인 화면 구성과 색채는 이후 나비파에 흡수되고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나비(Nabis)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뜻합니다. ‘나비’는 과거 종교가 담당했던 역할을 미술이 대신한다는 뜻으로 프랑스의 시인 앙리 카자리스(Henri Cazalis)가 붙인 이름입니다. 우리의 모국어는 ‘나비’를 소리 내는 순간, 창가에 기웃대는 봄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만 19세기 중반의 유럽은 작가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여 현실과 상관없이 화가의 마음대로 형태나 색채를 완성하는 예술형태를 ‘나비’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난한 언어로는 매일 수은주를 갈아치우고 있는 이 더위를 대신할 다른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폭염(暴炎), 폭서(暴暑), 열일(烈日) 등 열기 가득한 언어 대신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동료와 충만한 자연을 누리는 자신만의 감각적인 여름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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