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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Oct 26. 2022

천사가 떨어뜨린 더 큰 첨벙

7월 넷째 주 -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그녀 나이 90에 아들 ‘이삭’을 낳습니다. ‘Isaac’이란 ‘웃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삭으로 인해 노령의 부부는 웃음을 되찾습니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는 스페인 군대가 캘리포니아 지역을 정복해 Ciudad de los Angeles(천사들의 도시)라 이름 지었다가 Los Angeles로 굳어졌습니다. LA에는 천사들이 삽니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는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던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천사를 찾아 미국 LA로 왔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청력이 나빴고 40세 즈음엔 거의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글자나 숫자, 냄새에서 색채를 느끼는 공감각(Synesthesia)이 뛰어났습니다.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을 가졌고 빛의 다양한 굴절에도 민감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영국 왕립 예술 대학을 우수하게 마친 후 ‘게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영국 사회의 탄력성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동성애는 영국에서 불법이었거든요.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따사로운 햇살에 매료된 그는 1964년 ‘미국으로 이주’라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 더 큰 첨벙, 1967>



  이제 그림을 보시겠어요? 너무도 유명한 작품 <A Bigger Splash. 더 큰 첨벙, 1967>입니다. 햇살이 스며든 수영장입니다. 화면의 중간이 나뉘어 있네요. 위로는 반듯하고 네모난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의 창에는 맞은편 건물의 그림자가 비칩니다. 유리창 가운데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군요. 벽돌색 건물 옆으로 목이 긴 두 그루의 나무는 서고 잔디는 누웠습니다. 수직과 수평이 만나 미니멀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화면 아래쪽은 훨씬 생동감 있습니다. 누군가 뛰어든 것일까요? 수영장의 파란빛 위에 하얗고 자지러지는 물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오릅니다. 튀어 오르는 순간을 다리미로 꾹 누른 듯 캔버스는 납작하고 조용하며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불쑥 나온 다이빙대만이 모르는 척 시치미를 잡아뗍니다. 



  호크니의 수영장에는 비치볼이나 파라솔이 없습니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도 없습니다. 한데 물 표면의 무늬와 파장은 시선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풍덩’ 물무늬를 따라가, 움직이고 설레고 행동하는 무언가를 찾게 만듭니다. 마치 캔버스 안에 내 안의 무언가가 빠진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목을 내밀어 물속을 들여다보게 하지요.

  “무언가 커다란 게 수영장에 빠졌나 봐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그의 그림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순간, 튀어 오르는 물방울만이 엑스맨의 퀵실버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며 줍니다. 무성영화를 저배속으로 틀어 놓은 듯도 하고 ‘운동 중의 정적’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는 시대가 추상에 환호할 때, 주류에서 벗어나 침착하게 구상에 몰두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 고정된 것과 흐르는 것의 내적 질감을 ‘물’ 울 통해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또 여러 작품에서 시간의 흐름과 다중 시점을 한 화면에 담으려는 실험도 쉬지 않았지요. 폴라로이드 사진을 전 방위로 합성하기도 하고 드로잉, 판화, 사진, 회화 등을 섞은 콜라주 작업에도 매달렸습니다. 천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신의 음성을 전하듯, 사회의 소수자인 그는 규정되지 않는 유연함으로 우리들의 두텁고 견고한 사고의 벽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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