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넷째 주 - 루카스 크라나흐 <아담과 이브>
서양의 3대 사과가 있지요. 첫째는 아담과 하와의 사과, 둘째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셋째는 새로운 미래를 연 애플의 사과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사과는 서양 역사의 곳곳에서 출몰합니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복수의 여신 에리스의 황금사과, “나는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던 폴 세잔의 사과, 그리고 왕자님의 키스로만 해독이 되는 백설공주의 사과도 있습니다. 서양의 그림에서 ‘사과’란 형이상학적 존재입니다. 이번 주는 사과를 들고 있는 두 남녀를 살펴볼까요?
이 그림은 루카스 크리나흐(Lucas Cranach elder 1472~1553)의 <아담과 하와>입니다. 루카스 크리나흐는 알프레드 뒤러, 한스 홀바인과 함께 독일 르네상스를 이끈 거장이지요. 자신의 출생지였던 크로나흐를 기리기 위해 ‘루카스 뮐러’라는 이름을 두고 ‘크리나흐’로 바꾸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은 희미하며, 1501년 빈으로 옮겼다가 1505년 비텐베르크에 정착했다고 알려집니다.
초기에는 북구(北歐)의 서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독일 삼림(森林) 풍경을 시적(詩的)으로 그려냈으며 중세의 경직을 벗어나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적인 작품으로 주의를 끌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인간과 자연이 어느 한쪽 치우침 없이 화면에 고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지울 수 없는 색으로 나를 그렸다”는 말로, 또 울트라 마린 30g을 얻기 위해 황금 41g을 지불했다는 에피소드로 유명한 동시대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영향을 받아 날로 색조가 깊어지고 회화적 세련미가 더해집니다. 성장과 도전을 견인할 동료가 있었다는 사실은 재능 있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그림을 들여다봅시다. 동산에 둥그런 과실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 둥치를 단단히 감고 있는 뱀은 여인의 귀에 무언가 속삭이는 듯싶습니다. 어둡고 뾰족한 숲을 뒤에 두고 벌거벗은 여인이 남자에게 과실을 권하고 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여자의 자세가 적극적인 데 반해 남자는 약간 미심쩍은 몸짓입니다. 오른 다리를 살며시 뒤로 무른 상태로 여인이 권한 선악과를 잡고 있습니다. 눈빛에는 망설임이 엿보입니다. 신의 첫아들, 아담과 하와의 거주지였던 에덴동산에는 선택이 있었습니다. 금단의 열매를 권한 하와의 선택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치 못한 것이었겠지요?
작센의 선제후 프레드릭의 궁정화가였던 크리나흐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사신부였던 마틴 루터와 비텐베르크에서 만납니다. 루터는 에덴을 떠나 지상으로 추방된 인간들이 임시거처에서 일으키는 타락과 부패에서 참을 수 없는 악취를 맡습니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시궁창이 된 교황청에 ‘95개 조 반박문’이라는 염소(鹽素 chlorine)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Let God be God!(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크리나흐는 루터의 열렬한 지지자가 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글은 크리나흐의 팸플릿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제자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과 교황의 발에 입 맞추는 장면을 대조한 목판화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질을 일깨웠으며, 묻어 두었던 아담과 이브의 죄를 각자 자신의 예배소에서 고백하게 했습니다. 1522년,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서에는 크리나흐가 그린 목판화 21점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세상의 낮은 자들에게 절대자에 대한 은밀하고 순수한 믿음과 세상의 높은 자들에게 인간의 노력으로서가 아닌 신의 은총으로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