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셋째 주 - 프란치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
배터리의 남은 에너지를 겨우 끌어 모아 간신히 빛을 밝힌 듯 화면은 한곳에 집중합니다. 한 사내가 두 팔을 벌리고 있군요. 그는 검은 머리와 어두운 피부를 갖고 있고, 놀란 듯 크게 뜬 눈으로 맞은편의 총을 든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총을 겨눈 병사들의 뒷모습은 마치 스틸로 만든 듯 차갑고 단단하게 느껴지네요.
잠시 보고 있노라면 zoom in 한 것이 아닌데도 손을 든 사내는 점점 환해지고 커집니다. 상대적으로 주위는 더욱 어두워집니다. 사내의 주위에는 이제 곧 자신의 차례가 되어 죽음을 맞이해야 할 사람들의 굽은 등과 두려워 두 손을 가린 무리들이 보입니다. 손가락 사이로, 무서움에 덜덜 떠는 심장의 미친 고동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사내의 발치에는 엎어져 흥건한 피를 쏟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통으로 터질 듯이 부은 눈, 이제 더는 저항할 수 없이 풀린 두 팔과 다리, 포개진 몸뚱이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장전하는 총소리만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키고 캔버스 밖으로 새어 나옵니다. 캔버스에는 삶이 세상에 던지는 어떠한 표현도 허용하지 않는 폭력과 야만이 가득하네요.
이제 주의 깊게 다시 한번 볼까요? 일반적으로 총을 겨누고 “손들어.” 했을 때, 양팔의 위치와는 다르지 않나요? 누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래요. 예수님 이예요. 마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두 팔처럼 그는 팔을 벌리고 있어요.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양 손바닥에 움푹 파인 상처 자국이 보인답니다.
이 <1808년 5월 3일>은 스페인의 궁정화가 프란치스코 고야 (Francisco Goya 1746~1828)의 작품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는 자신의 형을 스페인의 왕으로 앉힙니다. 1808년 5월 2일, 민중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다음날 시위를 일으킨 민중들에 대한 총살 처형을 집행했습니다. 고야는 이 참혹한 현장을 그림으로써 권력에 대한 부패한 욕망과 도덕의 상실, 인간의 잔인함, 나라를 위해 싸운 민중들의 인간애를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귀가 어두웠던 그는 종이가 인간보다 참을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붓이 총보다 강하다고 생각했을까요?
고야는 낭만주의 화가로 분류합니다. 현대의 낭만주의자는 집 안을 전쟁터로 만들어놓고 여행을 간다고 하더군요. 이 말에는 ‘낭만’에 대한 비아냥이 담겨 있지만 원래 낭만, romanticism은 현실과 이상에 균형적이었습니다. 18세기 말, 이성을 인식의 유일한 수단으로 삼은 계몽주의로 인해 인간의 사고(思考)가 엄격한 규칙에 얽매이게 되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이론이 아닌 현실과의 조화, 자기 내부로의 깊은 침잠과 성찰, 우아하며 균형 있는 감정을 중시한 낭만주의가 태동했습니다.
고야는 낭만주의자로서 현실을 그렸습니다. 궁정화가였음에도 <카를로스 4세의 가족들>에서는 어리석고 속되며 권력욕에 집착하는 왕가의 가족을 왕족이라는 지위와 혈통의 덧칠 없이 그려냅니다. 그는 <마야의 누드>에서 신화의 포장을 벗긴, 인간 그대로의 몸을 그립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의 악명 높은 종교 재판소에 불려 가기도 하지요. 요즘 시대 ‘낭만’과는 결이 달라 보입니다. 상대방에게 이념의 프레임을 씌우며 연일 인터넷이 뜨거운 5월, 표피를 스치는 값싼 서정적 말과 글로 본질을 외면하는 건 낭만주의자로서의 책무 유기입니다.
술 한 잔이나 밥 한 공기로 역사적 사실과 고통을 덮어두라는 ‘침묵하는 낭만’ 앞에 고야의 작품을 걸어 놓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