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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Oct 26. 2022

영국으로 떠난 숭고한 풍경

10월 둘째 주-윌리엄 터너 <마돈나 델라 살루테 현관에서 본 베니스>

  진흙과 모래 위에 오리나무 기둥을 박아 넣고 점토를 부어 단단히 굳힌 다음 석회암 판들을 깔아 건설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입니다. 베네치아는 인간의 이성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위대하고, 인간의 감정이 표현하기에는 너무 거룩한 정신이 담겨있는 곳이지요. 



  예부터 유럽은 수세기에 걸친 종교전쟁으로 나라와 나라 간 여행이 쉽지 않았습니다. 귀족들은 외국에 나가 문물을 익히기보다 개인교사를 두어 정치, 사회, 경제, 예술 등을 공부했지요. 그런데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종교 갈등이 누그러지고 경제적 안정이 더해졌습니다. 특히 1688년 명예혁명으로 다른 나라보다 빨리 정치적 안정과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었던 영국을 중심으로 '그랑 투어'라는 것이 정착했습니다. 그랑 투어는 유럽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귀족의 예법을 익히고, 이탈리아 로마를 돌아보며 유적과 문물을 익히는 고급스러운 여행을 말합니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곳곳을 탐색했습니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갈 때 이탈리아를 방문한 '인증샷'을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베네치아의 카날레토는 그 '인증샷'을 가장 훌륭하고 멋스럽게 그려내는 화가였습니다. 어딘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을 상징하는 그림엽서처럼 카날레토의 그림은 사실적이고 기록적이었습니다. 그의 캔버스는 베네치아의 풍광을 철저하고 치밀하게 재현했습니다. 사람 하나하나의 옷차림도 무심히 넘기지 않았지요. 그런데 전혀 다른 풍경화가 베네치아의 배를 끌고 영국으로 출항했습니다.



윌리엄 터너 <마돈나 델라 살루테 현관에서 본 베네치아, 1835>



  이제 이마를 살짝 찌푸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림의 중앙을 바라보세요.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을 보는 듯 시야는 점점 뒤로 물러나고 눈 맛이 시원해집니다. 어린 동자승이 싸리 빗자루에 구름을 찍어 한바탕 하늘을 쓸었을까요? 푸른 하늘엔 얇게 빗금 친 구름이 가득합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은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물 위에 둥실 떠 있습니다. 제 그림자를 안은 배의 높은 돛대엔 도시를 건설한 강인한 로마 선원들의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하늘과 바다와 선원들의 ‘강철로 만든 노래’를 그린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마돈나 델라 살루테 현관에서 본 베네치아, 1835>입니다. 



  중세 천년 동안, 수도사들은 돌로 만든 고딕 성당 안에서 검은 잉크와 굳건한 신앙으로 땅과 인간의 일들을 꼼꼼히 필사했습니다. 가느다란 펜 끝에 옮겨진 이 세상은 건조하며 죄로 가득 찬 곳이었지요. 중세의 수도사들이 필사한 세계처럼 터너 이전의 화가들은 베네치아의 광활한 하늘과 바다를 딱딱하고 물리적인 사물로 캔버스에 복제했습니다.



  하지만 터너는 달랐습니다. 그의 그림은 몽환적인 연무로 가득합니다. 그는 물을 잔뜩 먹인 캔버스 위에 수채 물감을 뚝뚝 떨어뜨려 캔버스에 자연의 말이 번지게 했습니다. 대기가 빛과 수증기에 의해 섞이고 스며 춤춥니다. 터너의 언어는 스피커를 두지 않아도 모든 사람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 풍경화에서 사람들은 근대가 지향하는 ‘숭고함’을 읽었습니다. 그랑 투어의 인증샷에 불과했던 베네치아의 하늘과 바다는 터너에 의해 비로소 바다 자신의 웅혼하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터너는 일약 ‘숭고한 풍경’을 그릴 줄 아는 풍경화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윌리엄 터너는 베네치아를 구석구석 누빈 뒤, 베네치아의 풍경을 스케치 북에 싣고는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의 캔버스에는 신화와 전설을 품은 베네치아의 배가 먼 미래의 땅으로 항해했지요. 

오스카 와일드는 “터너 이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는 말로 숭고하고 낭만적인 자연을 그릴 줄 알았던 윌리엄 터너를 추앙했습니다. 



  *베네치아의 화가 안토니오 카날레토(Antonio Canaletto)의 <베니스 대 운하 입구, 1730> 작품과 비교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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