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명화 11월 첫째 주 - 김기창 <군마도>
손가락이 가볍습니다. 종일 달려도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말의 다리처럼 자판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아마도 짐을 내려놓았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가로막는 벽을 향해 앞다리를 들고 몸을 크게 한번 흔들자 부족한 재능과 상한 자존심들이 맥없이 등에서 떨어져 땅에 나뒹굴었습니다. 바람을 맞는 갈기와 땅을 박차고 나갈 무릎만 남은 몸은 맑은 기운으로 충만합니다. 진즉 벽을 향해 소리를 질러볼 걸 그랬습니다.
꼭 이와 같은 심정을 그린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일곱 살이 되던 초등학교 입학식 다음 날, 장티푸스를 앓았습니다. 생명은 구했으나 소리는 잃었습니다. 그가 이불을 걷고 일어났을 때 세상은 더없이 고요했습니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았지요. 그는 소리 없는 세상을 눈으로 디디며 열두 살의 나이에 다시 초등학생이 됩니다. 선생님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긴 수업 시간은 너무나 지루했습니다. 그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지도인 교과서에 위에 자신의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소리를 잃은 일곱 살과 무리에 끼지 못하는 열두 살을 그렸고, 종이를 잇대어 알 수 없는 미래의 길을 그렸습니다. 그 끝은 '화가'라는 북극성을 향하고 있다는 걸 그때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교과서에 그려진 그의 지도를 읽고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이당(以堂) 김은호 화백의 집을 찾아 열일곱 살의 그를 맡겼습니다. 그는 6개월 후인 1931년 제10회 조선 미술전람회에서 <판상도무>라는 작품으로 입선합니다. 이를 크게 기뻐한 어머니는 그에게 운포(雲圃)라는 호(號)를 지어 주었습니다. 그가 바로 <군마도>를 그린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입니다.
김기창은 그의 깊고 고요한 눈으로 소리가 제거된 대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대상의 추상적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대상 자체의 실체적 본질을 확보했습니다. 그의 대표 작품인 1955년 작 <군마도>입니다. 김기창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말'들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들의 본질적 특성인 '움직임'을 그렸습니다.
그는 먼저 초록 풀밭 대신 옅은 먹으로 말이 뛰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 먹과 물을 듬뿍 먹인 붓으로 말의 긴 목울대에서 나는 울음을, 말발굽이 박차고 튀는 대지의 두드림을, 근육의 당기고 펼치는 생명의 약동을 표현했습니다. 자유롭고 역동적인 말들의 움직임이 5m에 달하는 화폭 위에서 춤춥니다. 탄력 있는 근육과 깃발처럼 펄럭이는 꼬리와 심장이 내뿜은 생명의 열기가 종이를 찢고 터져 나옵니다. 동그랗게 무리지어 원을 그리는 말들에게서 고독을 뛰어 넘는 그를 봅니다. 꿈을 가로막는 장애와 시대의 그물에서 벗어나고픈 그의 내면의 소리가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그의 그림은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친일 작품,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풍속도, 비판과 추앙이 엇갈렸던 한국의 예수, 추상과 문자도, 민화의 해학과 멋을 재해석한 바보산수 등 쉼 없이 도전했고 다양한 양식을 실험했습니다. 때로 부족했지만 그것을 딛고 넘어설 만큼 옹골차게 완성했습니다. 이로서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의 근현대 미술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나는 의미로 어머니가 주신 운포(雲圃)라는 호 중, 포(圃) 자의 에워쌀 위(囗)를 벗겨 보(甫)로 바꾸었습니다. 이제 그는 운보(雲甫)입니다. 그는 저 군마도의 말처럼 자유롭기를 갈망했고 끝내 자유로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