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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Nov 07. 2022

만추(滿秋)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을 다녀와서

  '가을'이라는 단어는 '추(秋)'라는 단어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늦가을'이라는 단어는 '만추(滿秋)'보단 왠지 가볍습니다. 늦가을이 연인들의 손에 들린 군밤이라면 만추란 중년 남자의 어깨에 떨어진 낙엽 같습니다. 늦가을이 카페에 앉아 로맨스 소설을 읽는 오후라면 만추란 바바리 깃을 세운 여인이 가로등 밑을 걸어가는 저녁 같습니다. 늦가을이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라면 만추는 이어폰에서 들리는 피아졸라의 망각(oblivion)을 연상시킵니다.



  가을이 와서 과천 서울대공원엘 다녀왔습니다. 서울대공원은 만추였습니다. 안개 가득한 해변을 띄운 듯 하늘은 불투명하게 출렁거렸습니다. 약한 바람에도 잎들이 바르르 떨었습니다. 전 대공원 호수의 다리를 건너며 주머니를 연신 확인했습니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생각이 호수에 빠지면 다신 건질 수 없을 것 같이 깊고 검고 푸르고 창백했기 때문입니다. 쉼 없이 국립 현대미술관까지 걸었습니다. 이건희 컬렉션의 몇 작품을 다시 전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전시장 안은 한적하고 조용했습니다. 저도 그림이 깰까 봐 살금살금 걸었습니다. 저 노란 눈동자가 절 보고 "어서 들어와. 같이 놀자."라고 하면 그림 속으로 훅 들어가고 싶어 질지도 모르니까요. 깃발을 흔들며 춤출지도 모르니까요.



호안 미로 <구성, 1953>


  

  어른 속 아이를 깨우는 호안 미로의 작품입니다. 전 <구성, 1953>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 안내에는 <회화>라고 되어 있습니다. 흠흠...  어쨌건 '그림을 하나도 몰라요' 하시는 분도 작품 왼쪽 위에 있는 기호가 별 모양이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것 만으로도 이미 이 캔버스는 경계를 넘어선 미지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풍깁니다. 어슴푸레한 새벽에 하늘을 나는 새와 사람이 있습니다. 아래엔 집들이 보이고 별들의 소란에 깜짝 놀란 표정이 우릴 쳐다봅니다. 오른쪽엔 펄럭이는 깃발, 아니면 하늘을 나는 가오리 인지도 모르지요. 그는 현실을 그리지 않았으니까요.


  

  호안 미로는 자꾸자꾸 자라고 점점 더 익고 싶다고 했습니다. 늙은 얼간이보다 젊은것에 관심이 있으며 그림은 시나 여인처럼 아름다워야 한다고 했지요. 보육원의 아이들을 위해서 그림을 그렸고 땅 위에 벌어지는 전쟁과 굶주림에 노여워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현실 너머 더 고귀한 것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그렸고, 아이들만이 알아볼 수 있도록 밝고 다양한 색과 추상적인 도형을 통해 아이들의 세상을 그렸습니다.



  제가 아는 이 동시는 호안 미로의 그림과 잘 어울립니다.




  우주 시험지를 만들어 준 준형이의 선생님께 호안 미로의 작품을 선물하고 싶네요. 제가 즐겨 이모콘티로 사용하는 그림도 호안 미로의 <종달새를 쫒는 붉은 원반, 1953>입니다.




  두번째로 소개할 그림은 마르크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7~78>입니다. 여기에선 <결혼 꽃다발>이라는 화제로 전시되어 있었어요.



마르크 샤갈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7~78>



  제가 이십 대 때, 고대 앞에 '사걀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우린 그 카페에 앉아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마셨습니다. 젊음의 무분별한 충동과 우수와 고독이 한 잔의 커피를 타고 전신에 퍼져 나갔습니다. 마치 <생의 한가운데> 속 니나처럼 우리의 도전과 성숙의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 줄 나만의 슈타인 박사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곤 어디엔가 있을 눈 내리는 마을을 상상했지요.



  샤갈의 그림 중 <눈 내리는 마을>은 없지만 왠지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눈 내리는 마을에 파묻혀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그가 노년에 그렸습니다. 그는 첫사랑이었던 벨라의 죽음 이후 한동안 우울에 빠졌습니다. 그림도 그릴 수 없었지요.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발렌티나 브로드스키, '바바'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여인입니다. 그녀는 그의 기도가 되기도 하고, 푸근한 무릎담요가 되기도 했지요. 사랑꾼인 그는 바바와 함께 다시 환상의 세상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샤갈은 나이가 들수록 선과 면의 경계가 흐릿해지며 그 경계에 부드러운 색이 넘쳐흐릅니다.



  화면 왼쪽 아래엔 푸른빛을 띤 연인이 보입니다. 둘은 서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아련하군요. 중앙엔 꽃병에 담긴 한 다발의 꽃이 있습니다. 초록만이 아닌 진하고 연한 올리브, 파랑, 연두 등으로 색의 변화가 풍부합니다. 그리고 붉은 꽃을 보세요. 마치 연인의 사랑을 주걱으로 떠 툭툭 두드린 것 같아요. "우리의 사랑은 이 꽃잎처럼 충만하고 강렬하답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부드러우나 연약하지 않은 감정들을 한 다발의 꽃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저만의 감상일까요? 전 이 작품을 직접 보고 나서 샤갈의 그림이 몽환적인 이유를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비현실적으로 맑고 순수하게 만드는 주인공은, 찬란한 색들의 개성을 조화롭게 만드는 순정한 흰색이었습니다. 모든 색들 위에 흰 눈가루가 뿌려져 있었어요. 삶의 쓰디쓴 고통을 닮은 에스프레소가 아닌 보드라운 위로가 있는 카푸치노 커피처럼.  




끌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1917~20>

 



 세 번째 그림은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입니다. '모네'하면 '수련'이 바로 떠오르는데 이 작품도 모네가 지베르니에 있었던 후기 작품입니다. 이 작품과 유사한 그림이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다고 합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시면 오랑주리 미술관이 나옵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이 전시관을 빙 둘러 있지요. 문화의 힘이 얼마나 센지,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가 얼마나 흥분되고 낭만적이었는지 알 수 있으실 거예요.



  인간은 영원한 것을 꿈꿉니다. 변하지 않고 빈틈없는 것들, 위대하고 육중한 것을 가지려 합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이고 공정한 결핍이 있어서 일까요? 모르겠습니다만 전 변하고 사라지고 가벼운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불면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그 단절과 소멸이 애틋합니다.


 

  인상주의가 미술사에 준 가장 큰 덕목이 '스러지는 것, 찰나의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일 겁니다. '빛'이라는 무형을 기록했지요. 어떤 사물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습기 가득했던 어제의 우울한 성당은 황금빛이 내리쬐는 오늘, 육감적이고 고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새벽 이슬이 또르르 구르던 연꽃의 촉촉함은 한 낮이 되면 어느새 사라져 버립니다. 배를 뒤집고 드러누운 물고기처럼 마르고 창백해집니다.



  인상주의의 시작인 모네는 수련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기(大氣)의 표정, 빛의 움직임, 물에 빠진 하늘, 바람이 몰고 가는 구름을 집요하고 꼼꼼하게 관찰했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빛의 속도보다 빨리 붓을 움직이려 했으니까요. 그가 고정된 생각을 갖지 않았기에 그의 붓은 순간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입견을 붙들고 있을 때, 그는 자유롭게 상상했습니다. 그의 상상은 빛을 화폭에 담는 마법이 됩니다. 우리가 가끔 정신줄을 놓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손으로 꼭 움켜 쥔 건 네 것이 아니다. 손바닥을 폈을 때 남아 있는 것이 진정한 네 것이다."


  제 엄마의 말씀입니다. 전 '자유'라고 해석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움켜 잡고 있지 말라고, 자유롭게 놓아주었는데도 널 사랑한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자유가 없이는 진정한 행복은 없는 것이라고. 어쩌면 모네는 모든 사물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사물의 형태나 빛깔도 그에겐 고정된 것이 아니었지요. 대상을 가장 자유롭게 해서 그 대상이 자신을 자신답게 드러내도록 했습니다. 사랑의 완벽한 형태입니다.




아스트로 피아졸라 <망각>  양인모 연주



  머뭇거리며 대공원을 나서는데 노을이 막 숲에 엎어져 붉고 붉게 나뭇잎을 물들였습니다. 가을이 숲에 있습니다.



  피카소의 도기와 그 외 그림 몇 점이 더 있었지만 이번엔 여기까지 소개하겠습니다. 밤이 늦었고 제 곁엔 와인이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다시 한번 그림을 찬찬히 보겠습니다. 미로의 별이, 샤갈의 눈이, 모네의 빛이 쏟아집니다. 곁에 계시다면 제가 시를 낭송해 드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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