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스트 앤 본'과 '디토 페스티벌

살아있다는 건 고통을 느낀다는 것

by 안노라

이태 전, 영화와 공연을 보고 썼던 글, 올립니다. 마음이 몹시 불안하네요. 이런 날도 있겠지요. 저와 같이 마음 편치 않으신 분들, 가볍게 읽어 보시길... 삶의 위로란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믿는 것뿐인 것 같습니다.


<영화 '러스트 앤 본'과 '디토 페스티벌'>


내면과 외면의 간격이 벌어지면 그 사이로 습기가 찬다. 습기가 차면... 녹이 슬지. 녹슬기 시작한 그녀와 오로지 한 줌의 뼈만을 가지고 세상과 마주 선 그의 이야기. 햇빛을 등지고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오는 그녀의 영화 <러스트 앤 본>이다.



스테파니(마리옹 꼬띠아르 분)는 돌고래 조련사입니다. 그녀가 보내는 신호는 돌고래들이 다른 우주와 접속하는 플랫폼이죠.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아쿠아리움에서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바다의 질감을 알고 있는 돌고래들은 그녀가 그리는 포물선과 방향에 따라 거대한 수족관에서 바다를 보여주듯 유영하고 솟구쳐 오릅니다. 전혀 다른 두 대상을 하나이게 하는 것은 그녀와 돌고래 간의 공감된 신호였습니다.

어느 날, 공연이 한참 진행되던 중, 스테파니는 돌고래에게 다리를 잃어버립니다. 이제 세계는 분리되었고 공감은 끊어졌으며 그녀는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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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를 잃고 홀로 지내던 스테파니는 사고 전, 우연히 클럽에서 스테파니를 도와주었던 알리가 떠 올라 그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녀의 신호가 돌고래에게는 다른 우주였듯이 알리(마티에스 쇼에나체츠 분)는 스테파니가 더듬거리며 알아낸 새로운 우주였습니다.


5살 아들과 몸뚱이 하나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알리는 삼류 복서입니다. 거리에서 싸움을 해서 돈을 벌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남의 지갑을 훔쳐 아들에게 맥도널드 햄버거를 사 주기도 합니다.



그는 외롭고 절망적인 스테파니를 바다로 데리고 갑니다.

그가 그녀에게 물었어요.
"당신, 수영하지 않을래?"



깨어진 사금파리 조각처럼 온통 빛을 뿌리는 바다에서 스테파니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알리는 기름기 한 점 없는 얼굴로 이렇게도 묻지요.


"섹스하고 싶어요?"
"아직 모르겠어요. 섹스가 가능한지도 몰라요."
스테파니는 자신의 몸을 만져봅니다. 갑자기 스크린이 긴장합니다. 마치 내가 내 몸을 만져보고 어떠냐고 묻는 것 같습니다.

"모를 때는 해 보는 게 직빵인데."
둘은 배 고파 밥 먹듯 친절하고 간절하게 섹스를 합니다.


알리는 휠체어에 앉은 스테파니의 어깨를 두드리며 "섹스하고 싶을 때 '출장?' 하고 문자 넣어요. 내가 가능하면 '가능'하고 답 할게요."
알리가 떠나고 메탄가스처럼 무거웠던 아파트엔 활력이 넘칩니다. 그녀는 이제 커튼을 열고 음악을 듣고 세수를 하고 때로 휠체어에 앉아 춤춥니다.



음악회로 건너가 볼까요? ㅎㅎ ^^
<디토 테스티 벌>에 다녀왔습니다.
4회에 걸쳐 안산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Ensemble Ditto의 공연입니다.

첫 회였던 지난 금요일,
첼리스트 문태국과 피아니스트 한치호의 합주입니다. 때로 명성과 실력이 따로 가기도 합니다만 이 날 공연은 아시아 최초로 2014 카잘스 콩쿠르 우승자인 문태국의 면모와 ARD 콩쿠르에서 2위를 한 한지호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단 한순간의 오차도 없이, 한 번의 쉼표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화합과 긴장을 끌고 나갔습니다. 놀랍고 화려한 기량과 테크닉은 연주자가 치열한 청춘임을 짐작케 했습니다. 그들은 젊었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 없는 파이터와 같은 연주였습니다. 집중적이고 깊이 있는 연주에 우리들은 환호했습니다.

이 날 연주했던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 A장조 op.69입니다.(디토 연주는 없어 기존 영상입니다)



당대의 예술가는 당대 허용할 수 있는 예술적 표현을 극단까지 실험해 가면서 그 시대의 삶의 문제나 예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한다고 했습니다. 당대의 조건에서 보면 가장 전위적 실험을 지속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그런 맥락에서 젊은 연주가들이 시도하는 새로운 해석은 주류적 문화 관습은 지속하면서 변경이 갖는 신선한 과제를 찾고 예술의 세계를 심화 , 강화하는 것일 겁니다. 전 그들의 자유로움이 음악이라는 경기장에 압도적인 열정과 응원을 울려 퍼지게 하는 치어리더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다시 <러스트 앤 본>입니다.
이제 스테파니는 세상을 향해 닫혀 있던 문을 엽니다. 사고가 있었던 아쿠아리움을 찾아 가지요. 자신의 다리를 앗아갔던 돌고래에게 진정한 화해의 신호를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다리와 함께 깊은 바닷속으로 묻어 두었던 증오와 절망과 패배의식과 화해합니다.
그녀에게는 '알리'라는 새로운 세상이 생겼습니다.




알리는 아들 샘(아만드 버저 분)과 마트 캐셔를 하는 누나 집에 얹혀 삽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불법 이종격투기 경기에 뛰어듭니다. 알리에게 있어 복싱이란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고 상대의 전부를 요구하는 삶의 정직한 룰입니다. 맨 몸이 부딪치며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는 경기는 다른 어떠한 포장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몸, 그 하나로 올인하는 정직한 승부입니다.


그래서 알리가 스테파니에게 물었던 "섹스하고 싶어요?"라는 질문은 인간의 도덕규범이나 인식을 뛰어넘는 자연의 물음입니다.
"너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뭐냐?"

알리는 마트에 직원 감시용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여 종업원들 해고 시 증거를 준비하는 일에 가담하게 됩니다. 그 일이 어떤 목적에서 이루어진 일인지 그는 몰랐지요. 하지만 그 몰래카메라 때문에 누나는 일하던 매장에서 해고를 당합니다. 누나는 분노하지요. 미안함에 알리는 아들 샘을 누나의 집에 놓아두고 홀로 나와 시합을 준비합니다. 혼자의 힘으로 서고 싶습니다. 처음 왔던 그대로 몸뚱이 하나만 남습니다. 그는 외롭습니다.

스테파니는 홀로 남겨졌습니다. "출장?"이라는 문자를 보내도 답문은 없습니다. 그로 인해 열렸던 삶의 가능성과 뜨거운 에너지들, 짧은 쾌락들이 선사하는 오랜 안정감,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정체성들은 침몰합니다.



다시 음악회로 가 볼까요? ^^
<디토 페스티벌> 4회 차입니다.
공연이 끝난 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음표들의 올림픽이었다고 할까요? 신선하고 가벼운 공기들이 공연장 안으로 밀려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대로, 첼로는... 우와~ 정말 첼로는 힘이 들어간 곳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마치 연주자의 부드러운 애무에 오르가즘에 도달한 악기처럼 고른 음역대를 심호흡 한 번 없이 다 소화해 냈습니다. 피아니스트 스티븐 린은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를 오가며 어떨 땐 아우르고 어느 대목은 앞세워 전체의 음폭과 음역을 지휘했어요. 오랜만에 바이올린과 첼로와 피아노와 비올라가 각자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소리를 내는 걸 들었습니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는 피터팬이 팅커벨과 나누는 이야기 같습니다. 행여나 팅커 벨이 숨어버릴까 손안에 놓아두곤 안절부절못하는 순수하고 여린 피터 팬입니다. 그는 온몸으로 음을 다룹니다. 그의 연주를 보시면 그가 얼마나 몰입하여 빠져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공연의 수확은 쇼스타코비치와 브람스를 새롭게 만난 것입니다. 전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 2번 A장조, 작품 26번 곡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동안 말주변 없고 소심한 사내 같던 브람스가 이렇게 생동감 있고 개성적인 곡을 작곡했어?" 전(全) 곡은 분량이 꽤 됩니다만 탁월한 연주 덕분에 집중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박수를 너무 쳐 손바닥이 얼얼했습니다. 앙코르 곡이었던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1번 G 단조 4악장> 역시 감동적이었어요. 개성이 뚜렷하고 진하고 굵직한 세 곡은 음악의 힘에 집중해 보자는 디토의 메시지를 잘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제 <러스트 앤 본>의 마지막입니다. 마치 나란히 달리던 열차가 포물선 꼭대기에서 충돌하듯 수면 아래 잠재웠던 감정들이 충돌합니다.


홀로 시합을 준비하던 알리는 보고 싶은 샘을 만납니다. 알리와 샘은 빙판 위에서 썰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알리가 잠깐 방심한 사이 샘은 그만 얼음 구덩이에 빠지고 맙니다. 알리는 샘을 구하려 맨 주먹으로 얼음을 내리칩니다. 선혈이 빙판을 붉게 물들입니다. 샘이 응급실에 있는 동안 스테파니의 전화가 옵니다.


"샘이 궁금하면 다시 전화할게. 안부 전해 줘."

그녀는 알리의 안부를 묻지 못합니다. 그녀는 습기에 떨고 있습니다.

"끊지 마... 샘을 잃을까 봐 너무 두려웠어. 나를 버리지 마. "

알리는 손가락 뼈가 부러졌습니다.

"늘 곁에 있을게."

"... 사랑해."



때때로... 필름에 온기를 불어넣는 감독이 있습니다. 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러스트 앤 본>을 작업하며 불완전한 육체에 따뜻함을 입혔습니다. 전 영화를 보는 내내 용광로와 같은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팔이나 다리뼈가 부러지면 몸에서 나온 칼슘으로 저절로 뼈가 붙고 더 강해지기도 하지만 손가락이 부러지면 절대 완치될 수 없다. 펀치를 날릴 때마다 통증을 느낀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어느새 갑자기 그 고통이 살아난다. 깨진 유리조각처럼 나를 찌르고 또 찌른다."

살아있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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