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의 역사 2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거장의 시선>을 다녀와서 2 (풍경화의 역사 2)

by 안노라

끌로드 로랭의 <성 우르술라의 출항> 작품을 띄웠었지요. 설명을 드리지 못했어요. 이제 이어봅니다.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미를 픽처레스크(Picturesque)라고 합니다. 그대로 해석하면 '그림과 같은'이라는 뜻이지요. 끌로드 로랭의 풍경화에서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자연 정경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끌로드 로랭(Claude Lorrain, 1604~1682)은 프랑스인입니다. 하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살았습니다. 그를 로마파 화가로 분류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정식으로 미술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재능과 노력을 통해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니콜라 푸생에 버금가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신이 어떤 이에게는 능력과 기예를, 또 누군가에게는 인내과 복종을 주었다면 그의 강보(襁褓)에는 그 둘,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탁월한 재능과 혹독한 수련은 풍경의 초상화를 탄생하게 했습니다. 역사의 지난한 얼굴인 신화나 전설, 성경의 한 장면들은 그의 손을 거쳐 생동감 있는 표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니콜라 푸생이 고전주의의 엄격한 형식을 숙련되게 사용해 전통의 모범을 보인 것과 대조대는 지점입니다.


이제 다시 <성 우르술라의 출항>을 부르겠습니다.



클로드 로랭 성 우르술라의 출항, 1641.jpg 끌로드 로랭 <성 우르술라의 출항, 1641> *전시 작품



작품 왼편에 노란 옷을 입고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든 여인은 성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13세기의 책 <황금전설>에 등장하는 성녀 우르술라입니다. 그녀는 브리튼 왕국의 공주로 11,000명의 시녀들과 함께 로마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돌아오는 도중, 독일 쾰른에서 훈족의 공격을 받아 시녀들은 고문받고 모두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결혼하자는 훈족 왕의 제안을 거절해 화살에 맞아 숨졌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시녀들이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우르술라 편집 1.png



성 우르술라와 시녀들의 배경엔 웅장하고 고전적인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제 로마의 건축물을 모델로 고대의 위엄과 이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르술라의 고결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입니다. 원경(遠景)엔 안개와 빛이 뒤섞인 새벽이 배를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빛은 로랭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요. 그가 뿌린 빛과 대기는 자연스러운 풍경을 시적 환상의 세계로 이끕니다. 때로는 새벽빛이, 때로는 황혼빛이 먼 우주를 달려온 밤하늘의 별처럼 부드럽게 빛납니다. 끌로드는 미술사에서 미묘하고 정교한 빛의 효과를 달성한 화가로 자리매김했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윌리엄 터너는 끌로드의 <시바여왕의 출항>과 이 <성 우르술라의 출항>을 본 후 강렬한 영감을 통해 <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도>를 그렸습니다. 나중 터너가 로랭의 작품 옆에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는 조건으로 본인의 작품을 기증할 정도였으니까요.



우르술라 편집 2.png



근대 이전의 그림은 모두 주문자에 의해 제작된 것입니다. 주문자란 주로 교황을 중심으로 한 성직자, 왕과 귀족 계급, 그리고 르네상스에 이르러 등장한 신흥 계급인 부유한 상인들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그림 시장이라는 것이 형성되었거나 소더비 경매란 없었지요. 이 그림은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비서였던 파우스토 폴리의 주문으로 그려졌습니다. 우르바노 8세는 열렬한 예술품 수집가였습니다. 당연히 폴리의 역할 중 많은 부분이 예술 작품을 의뢰하고 구입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성 우르술라가 탈 배엔 바르베리니 가문 문장인 벌이 그려진 깃발이 매달려 있습니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입니다. 글쎄... 속칭 '아부'를 잘 한 덕이었을까요? 그는 1643년 추기경으로 임명됩니다. 또한 그 역시 바로크의 거장 베르니니의 강력한 후원자로서 장엄하고도 극적인 예술품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하지요.



이야기가 다른 데로 빠졌군요. 이제 픽처레스크의 또 다른 대가(大家)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의 풍경화를 봅시다. 이번 전시에도 참가한 작품이지요. <스트랫퍼드의 종이 공장, 1820>입니다.



존 콘스터블 스트랫퍼드의 종이공장, 1820.jpg 존 컨스터블 <스트랫퍼드의 종이공장, 1820> *전시 작품



컨스터블은 영국인의 감성을 그대로 옮겼다고 하는 풍경화가입니다. 그는 평생 자신의 고향 서퍽(suffolk)의 풍경을 찬찬하고 다정하게 그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인이 더 늙어지기 전에 살갗의 부드러움과 관능적인 목소리를 그리려는 화가처럼 고향의 구석구석을 쓰다듬고 매만졌습니다. 볼우물이 패이며 살포시 웃는 연인의 얼굴만 봐도 사랑이 느껴지듯 그의 캔버스 속 구름과 나무와 시내에서 고향에 대한 화가의 깊은 애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물에 영혼이 깃들게 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위엄을 더했습니다.



컨스터블은 영국 남동쪽 스투어 강 계곡에 자리 잡은 이스트 버그홀트에서 자랐습니다. 전통적으로 풍경화가들이 선호하는 장엄한 풍경이나 극적인 지형은 부족했지만 완만하고 소박한 수로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구불거렸고 계곡마다 인간과 자연이 교감하는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업사회로 달려가는 18세기에 들어서자 바지선이 항해할 수 있도록 강이 정비되었습니다. 컨스터블은 자신의 고향이 어쩌면 신화가 살 수 있는 마지막 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는 이곳을 '순경의 나라'라고 불렀고 자신은 스스로 '경호원'이 되었습니다.



경호원이 지킨 자연은 도덕적 감정과 영적 신비함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나뭇잎을 흔들거리는 바람과 잎맥에 반사되는 눈부신 빛을 담기 위해 야외로 나갔습니다. 지금의 스튜디오 페인팅의 기초가 되는 야외 드로잉을 시작한 거지요. 들과 강에서 여름날의 광채를 드로잉 하고 빛과 그늘을 배열했습니다. 그리고는 스튜디오에서 실제크기의 캔버스에 유화로 다시금 스케치를 했습니다. 그는 농부가 흙을 손질하듯 캔버스 위를 문지르고, 두드리고, 뿌리고, 솔질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백마나 마차나 뱃사공, 구름까지도 모든 것이 영웅적으로 비칩니다. '삶의 나날' 어디에도 소심하고 졸렬함은 없습니다. 그건 캔버스의 사이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간 회화엔 등급이 존재했고 그림의 크기도 등급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1등급인 역사화는 회화의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고려 없이 무난히 전시장의 전면을 차지했지만 그동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풍경화는 전시회 귀퉁이를 장식하는 데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존 컨스터블은 관람자가 풍경화 속을 걸어 들어가 산책해도 좋을 만큼의 대담한 사이즈로 제작했습니다. '6피트 그림'이라고 불리지요. 그는 6피트 풍경화를 연작합니다.



존 컨스터블 백마 1818~1819.jpg 존 컨스터블 <백마, 1819> *최초의 6피트 작품, 전시 외 작품



그의 연작엔 경호원이라 칭하는 그의 작품답게 빨간 경보등이 '작품'을 지키고 있습니다. 소년의 재킷일 때도 있고, 말의 마구, 뱃사공의 모자, 오두막에 비치는 불빛 일 때도 있습니다. 순간적인 빨간 터치는 풍경화를 지키는 그의 재치를 느낄 수 있어 혼자 미소 짓곤 합니다.


스트랫퍼드 확대 1-side.jpg



어떤가요? 끌로드 로랭, 윌리엄 터너, 존 컨스터블 작품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또 낭만적 풍경화와 픽처레스크의 차이도 알게 되셨나요?



그럼 19세기의 풍경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바르비종파이면서 인상주의 풍경화에 영향을 미친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 Raptiste-Camille Corot, 1796~1875)입니다. 바르비종(Barbizon)은 파리 근교의 퐁텐블로 숲 근방의 작은 마을입니다. 격렬한 역사를 가진 프랑스의 19세기 초는 정치적 갈등이 심했고, 산업화에 따른 인구 이동으로 파리의 몸집은 날로 육중해졌습니다. 화가들은 넉넉하면서 완만한 틈새를 꿈꾸었지요. 원시(原始)를 그리워했습니다. 몇몇 화가들이 바르비종으로 내려갔지요. 우리가 아는 이발소 그림의 주인공 '장 프랑수아 밀레'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변화무쌍한 자연, 의미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요리를 하려고 한 것이지요.



우거진 숲에는 빛이 힘을 잃습니다. 바르비종파의 풍경화는 일반적으로 어둡고 연하게 빛나는 녹색과 갈색, 검은색이 지배합니다. 신중하고 절제된 선, 간단한 구성, 이미지의 강렬함을 담아 전체적으로 시적인 효과를 내곤 했습니다. 29살에 회화를 시작한 코로는 유명한 고전주의 풍경화가들에게 수학하며 초기엔 전통적이고 단단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얇고 가는 붓으로 정확하고 세밀한 윤곽선을 잡고 단색의 밑 칠을 통해 정교하게 작업했지요. 하지만 바르비종파와 교류하면서 서정적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순수 풍경화로 돌아섭니다.



장 밥티스트 코로 기울어진 나무 1860~65년 경.jpg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기울어진 나무, 1860~65년 경> * 전시 작품


고요합니다. 시간이 정지된 듯 바람도 불지 않습니다. 오른쪽 어두운 초록 숲과 왼쪽의 은빛 호수는 명확한 경계 없이 서로에게 스며듭니다. 안개에서 갓 벗어난 화면엔 형태가 흐릿한 나무들이 한편은 어우러지고 다른 한편은 고적하게 서 있습니다. 대각선으로 길게 뻗은 나무는 그 자체로서 시적 이미지를 던져 줍니다. 화면의 구도를 분할하는 역할도 맡았군요. 호숫가 보트에 몸을 기울이고 있는 남자, 나무 위로 손을 뻗은 여인, 바닥에 앉아 바구니에 나뭇가지를 모으고 있는 세 사람은 각자의 일에 몰두할 뿐 서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략한 붓질로 단번에 묘사해서인지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가 됩니다.



카미유는 호수와 자작나무가 있는 이와 유사한 여러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풍경화는 실제 하는 풍경을 담백하게 기록했습니다.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엔 평범하고 창백한 얼굴에 수줍게 앉아있던 여인이 대화를 나누자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이 느껴질 때와 같이 그의 작품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규범이나 형태는 사라지고 그 안에 은근하게 빛나는 빛의 부스러기들이 보입니다. 그는 1846년 레종 도뇌르 십자가와 1848년 살롱전에서 2급 메달을 받았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빵부스러기처럼 그가 떨어뜨린 단순하고 제한된 색상과 빛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인상주의에 가 닿지요.



이제 인상주의의 풍경화를 감상해 볼까요? 한국인이 아닌데도 그를 생각하면 유독 우리의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대한민국 국민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작품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 1890>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 1890> *전시 작품



너무나 특징이 확연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지요. 전 가끔 이런 작품은 그냥 느끼기만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기면서 굳센 붓질, 들숨날숨이 다 보이는 터치, 화사하면서 빛이 내려앉은 색, 무리 지어 풀을 쓸고 가는 바람, 형(形)이 없는 자신만의 형태, 원근이 뚜렷하지 않은 구도, 나비처럼 앉지도 날지도 못하는 마음이 보이는 화면, 아~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연이 있습니다.



그는 생 레미 마을 근처 생폴 드 모졸(Saint paul de Mausole)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정원을 그렸습니다. 인간의 손길이라곤 없는, 작지만 커다란 자연이자 그의 '풍경'입니다. 이제 풍경은 자신의 내면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꽃 없이 잡초가 우거진 정원에 그는 나비를 그려 놓았습니다. 나비는 앉을 곳을 찾을 수 있을까요? 혼자 울컥합니다.



인상주의가 기존의 사조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빛을 통해 색의 고유성을 부정하고 형태보다 색의 표현을 중시하여 형을 직관적으로 설정'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인상주의를 넘어 현대에 이르러, 자연을 소재로 한 풍경화는 멸종위기에 처했습니다. 고유의 색도 안정된 형태도 모두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공간의 실험에는 폴 세잔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 폴 세잔의 풍경화는 오지 않았습니다만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연은 어떤 모습인지 보겠습니다.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1902~04.jpg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산, 1902~04> *전시 외 작품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다'

세잔은 자연이 숨기고 있는 내적 형태를 묘사하려고 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단단한 대리석에서 부드러운 생명을 끄집어내듯, 그는 표면 아래 숨겨진 형태의 근원을 찾으려 했습니다.



無鑑於水 鑑於人 (무감어수 감어인), 물에 자신을 비추지 말고 사람 안에 비추라는 말이니 곧 겉이나 표면에 집착하지 말고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뜻일 터입니다. 세잔은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껍질에 집착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의 밑바닥까지 깊이 내려갔습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수평과 수직선으로 자연을 분리하고 다양한 시점을 한 공간에 넣었습니다. 원근도 입체도 없는 사물의 내면에는 구, 원뿔, 원기둥이 있었습니다. 그의 풍경화는 경계를 훌쩍 넘어 새로운 추상의 문을 열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제가 회화에서 풍경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나 화가가 해석하는 개인적인 견해라고 말씀드린 것 말입니다. 이제 풍경화는 자연을 대상화해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지미술이나 생태미술 등이지요. 앞으로도 풍경은 제 스스로의 길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풍경 속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PS : 전에 존 컨스터블의 <건초마차>를 다룬 글이 있어 첨부합니다. 그리고 전시 후기인데 현장감이 너무 없어 제가 찍은 몇 장의 사진을 올립니다. 감상하시길...




*먼저 건초마차부터~~


존 컨스터블 건초마차.jpg 존 컨스터블 <건초마차, 1821>



더운 여름 오후입니다. 푸른 초원 아득히 뭉실한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었습니다. 화면 앞 구름은 해의 그림자를 얹었는지 약간 검게 그늘져 있습니다. 왼쪽 모퉁이에 물레방아가 돌고 있군요. 시냇물의 번짐이나 물기둥이 없는 걸로 봐서 물레방아는 게으름 피우며 천천히 돌고 있습니다. 굽이진 시냇물 가운데로 바퀴가 잠긴 건초 마차가 농부의 발걸음에 맞춰 건너가고 있습니다.



말들은 잠시 쉬고 싶은 모양입니다. 말의 등은 유순하고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깨를 비비는 나뭇잎들은 보드랍고, 햇빛은 물 위에 반짝이고 바람이 귓가를 속삭이는 여름날, 시원한 이곳에 머무르고 싶겠지요. 물가엔 어리고 눈빛이 맑은 소녀가 아버지를 기다리며 작은 손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을 것 같은 오두막집이 있습니다. 고요한 저녁이 오면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나겠지요? 별들이 시내에 내려와 세수도 하겠지요? 자갈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시냇물처럼 건초 마차는 시냇물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지나갑니다. 마차를 이끄는 농부가 주인이었을까요? 걱정이 되는지 개 한 마리가 시냇가를 서성입니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 풍경이네요.



이 그림을 그린 존 컨스터블은 평생을 영국 서퍽(suffolk) 지방에서 살았습니다. 옥수수와 목초지,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고 실개천이나 수풀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지만 자연이 주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밝았습니다. 그 당시 풍경화는 그림의 여러 장르 중 특히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금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연이 주는 색과 느낌과 구도에 매혹당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었고 매끄럽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 대형 캔버스 위에 자연의 진솔함을 담았습니다. 조미료나 양념 없이 재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풍미를 살렸다고 해야 하나요? 프랑스 자연주의 화풍인 바르비종 파는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조심성 없던 어린 시절” 로 인해 화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조심성 없음으로, 그런 천진함으로, 그는 자연 그대로를 담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의 그림은 <윌든 Walden>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더불어 번거로운 삶의 소란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21세기, 영혼의 필터입니다.


"사람들 무리 속에 있을 때, 또는 이른바 '성공'이라는 것의 한 복판에 있을 때, 나는 내 인생이 하찮으며 정신이 빠르게 약해지는 걸 느껴요. 하지만 떡갈나무 잎이 바스락대는 소리나 참새가 들릴락 말락 짹짹거리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겨울 산책이 다채로워지고, 내 인생은 만족스러워지며, 견과류 알맹이처럼 고소해진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전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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