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껏 웃고 양껏 놀라

그림 우체부 1. 모드 루이스

by 안노라

제게 오는 첫 편지는 어떤 것일까 설렜습니다. 약간 긴장되기도 했구요. 기쁜 내용일 수도 슬픈 내용일 수도 있으니까요. 당신이 무수한 펜팔 친구 중 제 이름을 고른 이유도 궁금했습니다. 편지 겉봉투에 적힌 당신의 닉네임을 보며 이름이 갖는 뉘앙스를 잠시 생각했습니다. 본 적이 없는, 앞으로도 보지는 못할 당신을 상상했습니다. 편지를 꺼내는 순간이 30여 년 전, 첫 연애편지를 받을 때 같더군요.


보낼까 말까 몹시 망설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편지지가 갓 데친 시금치처럼 풀 죽어 있었거든요. 많은 시간을 들여, 쓰다 멈추다 봉투에 넣었다 꺼냈다 하셨지요? 편지 속에 담긴 글자들은 흩어질 걸 알면서 허공에 내뱉은 입김 같았습니다.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차가운 유리창에 그저 "호~"하고 폐부 가득한 우울을 토해내셨구나 싶었습니다. 전 그 입김이 아주 사라질까 서둘러 당신에게 답장을 씁니다. 새벽녘에야 잠들었을 당신을 밝은 햇살이 깨울 때쯤, 이 편지는 도착하겠지요.


먼저 심심(甚深)한 위로를 보냅니다. 돌아가신 부군(夫君)의 첫 기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구요. 추모공원을 다녀올까 망설이고 계시는 그 마음을 살피니 자판 위에 두 손이 길을 잃습니다. 가끔은 스물여섯 개의 자모음으로 나타낼 수 있는 무수한 단어 밖에 마음이 존재합니다. 마음을 찾아 한참을 서성이다 이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모드 루이스 봄의 황소 연도 미상.jpg 모드 루이스 <봄의 황소, 년도 미상>


이 작품은 모드 루이스(Maud Lewis, 1903~1970>의 작품으로 제목의 대부분은 작품의 선별을 위해 후에 지어졌으며 제작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녀 작품 거의가 제목이 없고 제작 연도가 불분명합니다. 아마도 딱히 제목을 붙일 이유가 없었고 더욱이 제작 연도는 기록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작품'이라고 생각지 않았으니까요.


그녀는 노바스코샤의 1번 고속도로 옆, 바짝 붙은 자신의 집 앞에 "그림을 팝니다"라는 팻말을 세워 두고 지나가는 이들이 보아주길 바랐습니다. 1940~60년대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들은 담배꽁초를 버리기 위해 창문을 여는 일이 흔했으니까요. 그들이 담배꽁초를 던지다 알록달록한 팻말과 수선화가 잔뜩 핀 창문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궁금증에 차가 서기도 하지 않을까?' 모드 루이스는 그런 아주 작은 행운을 바랐습니다.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잠시 모드의 집 앞에 선 사람들은 분명, 누군가, 먼지 푸석한 도로 옆,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둔 것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튤립인 듯 착각하는, 속눈썹이 길고 눈에 별을 단 두 마리의 소가 튤립 꽃밭에 서 있었을 테니까요.

'이런... 낭패군. 내가 도로안내판을 잘못 본 게 틀림없어. 지도에도 없는 사잇길로 빠져 버리다니. 그나저나 저 두 마리 소는 뭐람. 멍에를 붉게 치장했네. 별이 박힌 눈을 봐. 이럴 순 없어. 헨젤과 그레텔의 집인가?'


소 뿔 끝의 노란 전등은 밤 길에 활짝 핀 튤립을 밟지 않으려는 마음 여린 소의 궁여지책이겠지요? 소는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듯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치켜뜹니다. 데려가기 전에는 꽃잎 하나도 이 도로 위에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인 양 A4용지 정도의 자그마한 공간엔 바람 한 점 불지 않습니다. 나무도 소도 미동도 않고 쳐다만 봅니다. 이쯤 되면 2달러를 내고 소를 데려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이제 트럭 운전사는 눈에 별이 박힌 소 두 마리와 함께 도로를 달립니다. 아마도 '숙제였던 일'이 곧 '가벼운 여행'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추모공원을 가게 된다면 이 소와 나란히 걸어보시겠어요? 이 세상의 속도에서 비껴 나 나만의 보폭으로 걸을 수 있도록, 아름다웠던 추억이 되살아 나 오랜 시간의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숙제가 여행이 되도록 말입니다.



가족사진 콜라쥬 1.png



편지에서 당신은 부군이 첫사랑이었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만난 무뚝뚝한 상사였다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다정한 말도, 유쾌한 웃음이나 넌지시 던지는 농담도, 심지어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새벽부터 내린 폭설로 온 세상이 눈 천지였던 날, 지각한 당신의 책상 위에 꾸지람 대신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 내밀었던 사람이라고 기억했습니다. 갑자기 눈에 폭삭 젖은 양말이 뽀송해지고, 뿌옇게 김 서린 안경 너머가 밝게 보였던 날이었다고 썼습니다.


당신 기억 속에 생생히 남은 행복했던 그 하루를 잊지 마세요. 가시밭 길을 헤쳐나갈 때 필요한 것은 가시나무를 찍어낼 도끼보다 가시에 찔리지 않을 두터운 옷일 수도 있으니까요. 두려운 시간들을 맞으며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한없이 울었을 당신에게 친밀함과 신뢰로 촘촘히 짠, 옷 한 벌을 해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옷을 선물해 드릴 수 없는 제가 대신 '봄의 황소'를 그렸던 모드의 이야기를 전해 드릴게요.


따스한 그림을 그렸던 모드 루이스(Maud lewis, 1903~1970)도 두려운 시간들을 지나왔답니다. 자료를 보면 내려앉은 어깨에 등이 굽고 턱이 가슴에 바짝 붙은 채 고양이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어린 시절 사진이 있습니다. 그녀는 캐나다 노바스코샤(州)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해안 도시(郡) 야머스에서 마구점을 운영했고, 음악을 사랑했던 어머니 그리고 오빠 찰스가 있는 단란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녀의 신체적 결손이 가지고 태어난 것이든 유아기에 생긴 것이든, 정성을 다해 돌보아주는 부모님이 계셨던 어린 시절은 유복했고 행복했습니다. 피아노 치는 법을 배웠고 어머님과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려 이웃에게 5센트를 받고 팔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열네 살까지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녀가 팔았던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반짝이는 날들이었지요.


1935년, 카드 속 별들이 빛을 잃고 전나무가 부러지는 사나운 세상이 들이닥쳤습니다. 그 해 아버지가, 1937년엔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에 모드는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딸을 출산했습니다. 딸은 다른 가정에 입양되었습니다. 유일한 형제였던 오빠 찰스는 부모님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서둘러 그녀를 딕비에 사는 이모에게 보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오빠도 아이도 모두 그녀를 떠났습니다. 모드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모드 루이스 결혼식 파티 2.jpg 모드 루이스 <결혼식 파티, 연도 미상>



게다가 그녀의 굽은 등과 기형적인 손은 평생 그녀를 괴롭혔고 결국은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려 갈수록 손의 움직임이 어려웠습니다. 집안일조차 힘겨웠지요. 이모는 상냥한 사람이었지만 1930년대였던 당시, 혼기가 지난 데다 출산한 경험이 있고 더욱이 장애까지 있는 조카를 거두기엔 벅찼을 것입니다. 어쩌면 모드가 그렇게 여겼을 수도 있구요.


모드는 마을 가게에서 '함께 살거나 집안일을 해 줄 여성 구함'이라는 광고를 봅니다. 마을을 돌며 생선을 팔았던 마흔네 살의 에버릿 루이스가 붙인 구인광고였습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광고쪽지를 들고 근처 마샬타운에 살고 있던 에버릿을 찾아갑니다. 더딘 걸음과 어눌한 표정으로 삶의 교차로에 서 있던 모드가 간신히 방향을 정한 것이겠지요. 튼튼한 아낙네를 기대했던 에버릿은 그녀를 보고 여러 차례 망설였지만 다른 후보자는 없었습니다. 함께 산 몇 주 후, 둘은 결혼식을 올립니다. 모드의 적극적인 주도로 말이지요.


<결혼식 파티, 연도 미상>은 그녀가 제목을 붙이기도 했고, 여러 차례 다른 버전으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눈 오는 날의 당신처럼 모드도 결혼식 날이 무척 행복했던 기억인 것 같습니다. 신랑 신부는 짙푸른 나무와 튤립 사이로 두 마리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있습니다. 말들의 갈기가 서 있고 바퀴에 하얗게 부서지는 잔물방울이 이는 걸로 봐서 야트막한 언덕을 신나게 넘어온 것이겠지요. 붉은 집과 노란 꽃밭과 푸른 하늘이 하객입니다. 마차를 탄 둘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모드 루이스 생선 팝니다. 연도 미상.jpg 모드 루이스 <생선 팝니다, 연도 미상>


결혼식이 끝나면 일상이 찾아옵니다. 에버릿은 생선을 팔았고 모드는 집안일을 했습니다. 둘은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이었지만 결과는 형편없었습니다. 에버릿은 가난한 데다 오랜 시간 혼자 살아 요리 및 집안일이 능숙했습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덫을 놓거나 낚시를 하거나 파이를 만들 줄 알았습니다. 모드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잘 그렸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몸의 장애도 의식되지 않았고 아주 행복했습니다. 둘은 이제 생각을 바꿔 모드가 그림을 그리고 에버릿은 집안일을 했습니다.


우리의 상상 속에 있는 가정을 이 세상에 데려 온다면 이런 것이겠지요. 남편은 자동차 시동을 걸며 아파트 난간에 선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들고, 아내는 아이를 업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통장이 살찌는 모습에 콧노래가 나오는 아침 말입니다. 불행은 절대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집이지요. 누구나 그런 대문을 갖고 싶어 하지만 분양을 잘못 받은 걸까요? 부군은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직장도 잃었고 친구도 잃었고 당신도 잃었고 궁극적으로는 그의 삶도 잃었다고...


"... 무슨 물건이든 쓰면 쓸수록 닳고 작아지는 법인데 일하는 손은 왜 닳지 않을까요? 나무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도 닳고 쇠로 만든 괭이와 호미도 닳는데 일하는 손은 왜 닳지 않을까요?..."

-서정홍의 <닳지 않는 손>중에서-


부군과 헤어져 25년을 홀로 아드님을 키우느라 닳지 않는 손을 가졌다는 당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후로는 추억 위로 내리는 눈이 너무 무거워 등이 굽는다는 당신!

평균치의 비슷비슷한 삶을 살아온 저는 홀로 견뎌온 당신의 시간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할 터입니다. 그저 안타까운 제 마음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 바랍니다. 또 마음 깊은 아드님이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드님이 푸짐한 제사상 차려 아버님 찾아뵙고 싶다고 했다지요. 어렸을 때 아버님이 만들어 준 썰매를 아직도 가지고 있노라고.



모드 루이스 작품 13.png 모드 루이스 <제목, 연도 미상>



아드님이 가지고 있는 썰매와 비슷할까요? 아이들이 바람보다 빨리 언덕 위에서 씽씽 내 달립니다. 모드는 신체적 기형으로 인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했고 야외활동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이 그림은 본 것을 그렸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그렸을 것입니다. 모드에겐 그림이 곧 자신의 걸음이었으니까요. 자신은 달릴 수 없기에 더욱 달리는 그림을 그렸던 모드처럼 어쩌면 부군이 아드님에게 세상에 내리는 폭설에 파묻히지 말고 그 눈 위를 미끄러지듯 유영하며 즐기라는 뜻을 두었는지도 모릅니다. 신(神)은 어린아이가 볼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상태로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살면서 어린아이처럼 맘껏 웃고 양껏 놀라고 말입니다. 훌륭한 영화는 명장면이 많은 것처럼 행복한 삶은 영원히 기억되는 어떤 순간을 많이 가진 인생이라고. 아꼈던 당신과 아직 어렸던 아드님의 삶을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모드의 초기작이라고 하는 이 썰매 타는 그림은 제게 얇은 슬픔을 남깁니다. 모드는 에버릿과 결혼 후 30여 년을 쪼고만 오두막집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오두막이 대략 3.7m*4.2m 크기이니 얼마나 작은지 상상할 수 있으시겠지요? 게다가 전기도 수도도 없었답니다. 석유램프를 켰고 집 앞에 작은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 오두막 창문 앞에 앉아 그녀는 굽은 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집 안 곳곳, 심지어 쓰레받기에 까지 그림을 남겼습니다.


처음엔 에버릿의 눈치를 보며 집안을 꾸몄고 나중엔 경제적 수입원이 되었기에 잠시 쉴 틈도 없이 그렸습니다. 의사가 왕진 가는 마차, 황혼 녘에 서 있는 두 마리 사슴, 파도와 갈매기, 사과꽃이 핀 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파랑새, 쟁기질하는 농부, 그물을 깁는 여자, 이렇게 썰매 타는 아이들 등 창문 너머로 보고 싶은 세상 모두를 그렸습니다.



모드 루이스 작품 편집 2.jpeg 모드 루이스 (왼) 쓰레받기에 그림, <무제, 1967> / (오) 가리비 껍데기에 그림 <무제, 연도 미상>


에버릿은 선박용 페인트나 팔리지 않아 오래된 유화를 싼 값에 사다 주었습니다. 대체로 물감이 부족했기에 크레파스나 수채 물감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팔레트는 생선 통조림 깡통이었고 캠벨 수프 캔에는 테레빈유를 부었습니다. 캔버스는 어림없었고 벽지나 판지, 카탈로그 뒤, 심지어 가리비 껍데기에도 그렸습니다. 이름이 알려져 작품을 주문받아 그릴 때조차 파티클보드에 그렸습니다.


싸구려 붓은 털이 잘 빠져서 페인트에 섞이곤 했지만 전문가용 붓을 살만큼 넉넉지 못했습니다. 그건 붓을 살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에버릿의 인색함 때문이었습니다. 모드의 재능을 이용해 그는 돈을 모았고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굴비를 매달아 놓고 눈으로 먹었던 자린고비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히 다뤘습니다. 기침만 해도 창문이 깨질 것 같은 오두막, 몹시 인색했지만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해 준 에버릿, 웅크리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신체, 주문해 준 고객들, 몇몇의 애호가들, 그리고 따뜻했던 기억들을 꽉 끌어안았습니다. 폐렴이 악화되어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파티클보드에 선박용 페인트를 콕 찍은 다음 듬성듬성 털이 빠진 붓으로 '오늘의 행복'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흰 눈과 푸른 언덕이 함께 있고 전나무에도 꽃이 피었으며 쟁기질을 하는 소는 방울장식을 달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닌 보고 싶은 것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그 순수함으로 나이브 아트(naive art)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모드 루이스 작품 4.jpg 모드 루이스 <모드와 에버릿, 연도 미상>



당신은 무엇이 보고 싶으세요?

아마도 모드는 창 밖에 자신이 에버릿과 함께 멋진 자동차를 타고 노란 스카프를 휘날리며 꽃길을 따라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전 당신에게 '보고 싶은 대로 하라'라고 말하려 합니다. 당신이 보고 싶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아름다울 것입니다.



PS : 지금은 이메일이나 톡으로 대화를 나누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편지가 있었습니다. 어설프고 수줍던 생각들이 오고 갔지요. 전 오래되고 낡은 사람이라 편지 형식을 빌어 종종 이렇게 답하려 합니다. 그리고 모드 루이스의 삶을 다룬 영화 <내 사랑, 2017>을 추천합니다.


*유튜버 '일류영화다'님의 편집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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