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농담 26. 끌로드 조셉 베일 <깨진 항아리>
"이를 어쩌담."
조셉 베일(Joseph Bail, 1862~1921)의 <깨진 항아리> 속에는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어린 소년이 있습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의 수선스러움을 붙잡기라고 하려는 듯, 왼손은 앞치마를 꼬옥 말아 쥐고 있습니다. 모자와 앞치마를 보니 요리사 수습생인 듯합니다.
부엌은 아닌 것 같군요. 지하 창고에 무언가를 담으려 왔을까요? 예로부터 서늘한 지하에 신선해야 할 식재료나 와인을 저장하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넓적한 유리 항아리(주전자)를 깨뜨렸네요. 돌부리도 없었는데 딴생각을 했던 걸까요?
이 어린 수습생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면 필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을 것 같습니다. 만일 어른이 깨뜨렸다면 얼른 치우기라도 했을 텐데 당황해서인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네요. 하지만 수습생은 곧 커다란 부엌에서 능숙한 솜씨로 작품을 만들고 있을 요리사를 향해 뛰어갈 것입니다. 그리곤 잘못을 빌겠지요. 도저히 꾸중할 수 없는 눈빛으로 말입니다. 불과 싸우던 요리사는 자신의 수습 시절을 떠올릴 것입니다. 아마 그도 그런 시간들이 계단이 되어 토크(Toque, 세프 모자)의 주름을 한 개씩 늘렸을 테니까요.
요리사들이 처음부터 저런 모자를 썼던 건 아닙니다. 이 분이 아니었다면 영국 관광수입 50%가 줄어들었을 거라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헨리 8세 때문이지요. 까다로운 미식가였던 헨리 8세는 수프 속 머리카락에 노발대발합니다. 요리사는 그 자리에서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후부터 왕실 요리사들은 요리에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로 인해 머리가 목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자를 썼습니다. 1815년, 나폴레옹 몰락 후 유럽을 재편하는 빈회의가 열렸을 때, 요리 외교로 프랑스를 지켰다는 샤를 탈레랑의 개인 요리사 마리앙투안 카렘이 주방의 위생을 위해 흰색 모자를 쓰도록 했다고 합니다. 카렘의 토크 주름은 101개였다지요. 아직껏 그 신화는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토크 주름은 달걀로 요리할 수 있는 요리수를 나타냅니다. 달걀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101개라니 세계 외교사에 빛나는 탈레랑의 요리사답습니다.
카렘도 저 수습생처럼 깨트리고 꾸중 들으며 성장했을까요? 101개의 주름이 있는 토크는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걸까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걸'하는 후회가 될 때, 새 신발을 신은 뒤꿈치처럼 맘이 쓰릴 때, 냉큼 달려가 사실을 말할 용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테지요.
"현재를 깨뜨렸어요. 하지만 내일은 '희망'이라는 새로운 요리를 주의 깊게 만들어 볼게요."
PS : 2주를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잠시 곁눈질할 틈이 없었네요.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오디오 북 녹음을 했습니다. 생존형 강의를 했고, 취미로 배우는 댄스공연에 나가려고 스텝을 밟느라 애썼고, 동아리에서 필독해야 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어설픈 요리로 간신히 밥상을 채웠고 계절에 맞게 베갯잇을 바꿨습니다. 그 사이 사회가 흉흉해졌네요.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벅차 눈 가린 경주마처럼 사는 제가, 소용돌이치는 사회를 곁눈질합니다. 우리도 공동체라는 유리 항아리를 깨뜨리고 있는 것인가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