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팔자나 내 팔자나

상상농담 27. 찰스 스펜슬레가 <고아>

by 안노라

희한합니다. 백 여편에 가까운 그림 중 제 눈길을 사로잡는 건 미소, 상냥, 깔끔, 위대, 영웅스러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불안, 우울, 찌질, 초라, 얼룩, 낙서, 평범같이 너저분한 것들입니다. 뭔가 비어서 그 구멍으로 눈물이 나오거나 술이 들어가거나 하는 공허입니다. 편의점 앞에서 총각김치에 소주를 마시는 아저씨들의 넋두리입니다. 개진개진한 눈으로 대상 너머를 바라보는 흐린 관조입니다.



오늘은 장르화(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인물, 소소한 사건 묘사)를 대표하는 영국화가 찰스 스펜슬레(Charles Spencelayh, 1865~1958)의 작품 <고아>를 보시겠어요? 그는 텔레비전이나 카메라가 없던 시절, 일상생활을 통찰력 있게 묘사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요즘 언어로는 '웃픈 현실'들을 짜임새 있게 구성했지요. 해바라기가 지천으로 피어있어도 해바라기는 반 고흐의 것이듯, 자연에 소유권이 있니 없니 누가 뭐래도 생트빅투아르 산은 세잔의 것이듯, 고달픈 노년의 하루는 찰스 스펜슬레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늙음을 우아와 연민과 유머로 감싸 안았습니다.



찰스 스펜슬레 <고아>



그림 속 모자는 비뚤어졌고 파이프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습니다. 바랜 양복 소매 끝단은 닳았네요. 줄무늬 넥타이는 평범을 넘어 고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의 옷은 마치 월화수목금토의 노동을 주머니에 넣고 주일에 교회 문을 연 순종의 양복처럼 보입니다. 다듬지 않은 수염은 뻐세고 엉성합니다. 테이블 위, 병아리 털과 비슷하네요. 에그머니! 병아리 옆구리에 상처가 보입니다. 누가 쪼았는지 털이 뽑히고 옴팍 패었네요. 저 병아리를 돌보아 줄 어미 닭이 없는 게지요.



그래서일까요? 그의 눈엔 병아리에 대한 측은함과 안타까움이 묻어 나옵니다. 옆구리를 쪼아대도 피하지 못했을 병아리의 혼자된 처지가 자신과 겹쳐집니다. 나이 든다는 것이 그의 몸을 마르고 버석거리게 했지만 거꾸로 낡은 그의 눈에 온몸의 습기가 모입니다. 해바라기 속에 반 고흐의 고독이 있듯, 생트빅투아르 산에 세잔의 집념이 있듯 저 병아리 속에 노년의 고달픔이 있습니다. 그와 병아리는 돌보아 줄 이 없는 '고아'들입니다.



화려한 쇼윈도가 즐비한 거리에 '궁색'은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니지요. 너저분하고 쉰내 나고 발음이 분명치 않은 것들은 가난과 어울려 뒷골목으로, 뒷골목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자신들의 자리를 만듭니다. 매끈하고 명쾌한 것들의 부박(浮薄)함에 넌더리가 날 때, 일상에서 사라진 것들을 찾아 삶의 깊은 자리를 기웃댈 때가 있습니다. 그곳엔 고아원이 있습니다. 기댈 곳 없는 감정들 -외로움이라든가 자신 없음이라든가 열등함이라든가 쩨쩨함 같은-, 낮은 것들이 모여 서로 곁을 주며 빛을 쪼이고 있습니다.


한번 방문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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