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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Dec 28. 2023

슬픈 날은 이렇게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읽으며

(포스팅 수정해 다시 올립니다. 지송 ㅠㅠ)

  재능과 성취에 있어 타고난 자와 노력하는 자의 차이를 가름하는 여러 기준들이 있겠지요. 단적으로 말해 천재와 수재의 차이라고 할까요. 음악사를 공부하며 들은 교수님의 얘기입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또는 슈베르트와 배토벤의 악보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고.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는 완성본 악보와 초본 악보가 거의 유사하고 수정 자국이 없다고 해요. 떠오르는 영감 그대로 작곡을 했고 그 음악이 너무나 탁월하다는 얘기이겠지요. 베토벤의 악보는 고친 흔적이 곰보자국 같다는 말씀에 왜 그리 마음이 쓸쓸하던지...


  범재(凡才)인 전 두말 할 것 없이 여러 차례의 퇴고를 거칩니다. 다시 볼 때마다 비문이 눈에 띄고 알맞지 않은 단어가 거슬리고, 원래 말하려던 것과는 다른 의미가 생겨 한참을 머뭇거리게 하지요. 그런 제가 지금은 아무런 준비 없이 책상에 앉았습니다. 어떤 작품과 화가를 다룰까 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에 비릿한 강물이 차 오르거든요. 몹시 슬프네요. 기실 우리들 대부분은 '나는 왜 사는가?', '산다는 게 무엇인가'하는 삶의 메타적 질문을 애써 외면하며 하루하루 삽니다. 적어도 그 질문의 대한 대답은 자신이 만들어야 하며, 또한 질문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거든요.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걷거나 읽거나인데 오늘은 읽고 옮겨 보기로 합니다. 두 시간 후 약속이 있으니 서두르겠습니다. 제 마음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날, 습관적으로 빼어드는 책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한창훈 작가님의 책 속의 글들입니다.



윈슬로 호머 <얼룩 만들기, 1891>


  <볼락>  달빛이 번지는 수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부이다. 울퉁불퉁 바위도 순한 모습으로 바뀐다. 바다와 달 사이에 나 혼자만 있는 기분이라 속 편한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데 나 같은 이가 또 있는 모양이다. 수런거리는 소리가 바위 너머에서 난 것이다.


  "혹시 어무니한테 말했어요?"

  "속만 상할 건데 뭐 하러 말하겠냐."

  먼저 꺼낸 사람은 기가 죽어 있고 말을 받는 사람도 불편한 기색이다.

  "아휴, 내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소."

  

  한 마리 또 올라온다. 나는 공연히 조심스러워져서 녀석을 재빨리 움켜쥔다. 말은 이어졌다.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사업을 안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내가 말했잖냐."

  "먹고살라면 어쩔 수 없잖소." (중략)


  보아하니 형제가 밤낚시를 하러 온 모양이다. 육지에서 실패를 본 동생이 고향에 온 거라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


  "형님 돈은 어떻게 해서든 벌충해 놓을 테니 걱정 마시오."

  "....."

  "못 갚으면 어디 가서 콱 죽어버릴라요."

  "니는 사업도 너무 서두르다가 말아먹더니 죽는다는 말도 꼭 그렇게 하는구나."


  몇 마리 계속 물어댄다. 그것은 그쪽도 마찬가지이다. 어이구야, 요놈은 굵다, 소리도 들린다. 볼락은 무리를 지어 다닌다. 그러기에 연달아 무는 경우가 잦다. 마치 입을 벌리고 줄지어 기다리는 것 같다. 크기도 적잖다. 이 정도면 꽃다발이다. 결혼식이나 졸업식 장이 바닷속에 만들어졌다.


  볼락은 색깔이 아주 예쁘다. 붉고 푸른 바탕에 노란색이 뒤섞여있어 살아있는 꽃송이 같다. 체형도 안정감 있는 데다 단단하고 날렵하다. 좋은 것은 다 갖다 붙여 놓았다. 아무래도 이놈들은 거울을 보는 버릇이 있을 것이다. 코디네이터가 있을지도 모른다.



월터 랭글리 <오늘의 뉴스>


  <노래미> 처녀 시절에 은미 엄마는 마을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밤마다 연애바위 뒤에서 만났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주겠다는 다짐도 날마다 듣고 언제 김밥 싸서 바닷가로 노래미 낚시 가자고 손가락도 매일 걸었다. 사랑은 소문이 나기 마련이고 소문은 집안을 발칵 뒤집어놨다. 이유는 집안 어른들이 탐탁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


  청년은 뒷주머니에 손꼽고 좌우 30도씩 몸 흔들며 걷는, 학교나 기술, 근면 이런 단어와는 멀찍이 거리를 두고 사는 논두렁 건달이었던 것이다. 동갑이라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호통도 당하고 울고불고하는 시간이 지난 다음, 그녀는 어른들 손에 의해 여수로 시집을 왔다. 살아보니 남편이 정이 있어 살 만했다. 밭일 대신 수산물 처리로 팔자가 바뀌었지만 말이다.


  사귀던 청년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 마시고 운다는 소식이 한동안 들려왔다. 거기는 거기대로 나름의 인생을 살겠지 싶어 못 들은 척했다. 세월이 갔고 영영 남남이 되었다. 그러다가 십 년 만에 그 사내가 찾아온 게 전날 오후였다. 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그 사람이었다. 귀찮게 안 할 테니까 딱 한 번만. 그녀는 나갔다.(중략)


  "내가 가난해서 갔지? 그랬지?, 이 소리만 하면서 울더라고 결국 그 사람만 소주 한 병 마시고 밥상 위에 젓가락 한번 못 대보고 그냥 나왔소. "

  은미 엄마는 축축해진 목소리로 말끝을 맺었다. 궁금증이 풀어진 우리는 건배를 하고 소주를 마셨다. 그녀는 망연자실 한동안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일으키면서 말했다.


  "가야겠구만. 여기 이러고 있으니까 자꾸 생각이 나."

  철이 엄마가 말을 받았다.

  "그렇게 헤어졌으니 생각이 날 만도 하지."

  "그게 아니야."

  "아니면?"

  "노래미 회가."

  "......"

  "먹고 올 걸 그랬나?"


  (정약전 선생은) 파리 날개 같은 두 귀가 머리에 붙어 있다, 고 해서 이어(耳魚)라고 하셨겠지만 아주 큰 것이라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맛도 좋다. 노래미회는 맛이 찰지고 보드랍다. 씹으면 은근한 감칠맛이 돈다. 껍질이 단단해 벗겨내기도 쉬운 편이다. 매운탕용으로도 좋다. 횟집에 가격표 대신 시가가 붙어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이다. 양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윈슬로 호머 <날치> *화가의 작품이라고 나오는데 추가 자료가 없어요. 년도 미상


  <날치> 여섯 살이나 일곱 살 정도 때였을 것이다.(중략)

  막 걸음을 돌리려는데 무언가가 수면에서 뛰어올라 날아가는 것이 있었다. 양쪽으로 기다란 날개가 있었다. 어린 내가 알고 있기에도 새는 하늘에, 개는 땅에, 물고기는 물속에서 사는 거였다. 충격을 받은 나는 어른들에게 말했다.

  "새가 바다에서 나왔어요?"

  "오리 봤구나."

  "오리 아니에요. 이렇게 날아갔어요. 새가 왜 물속에서 살아요?"

  나는 새 날아가는 흉내를 냈다.

  "아, 날치 봤구나."

  "날치요? 그것이 새죠?"

  "아니 물고기다."

  "아니에요. 새예요."


  그때부터 한동안 바다에서 날아오르는 새의 꿈을 꾸었다.(중략)  그런 꿈을 꾸고 난 아침에는 맥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에게만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비밀이 있는 것 같아 공연히 서러웠다.(중략) 날치를 다시 본 게 몇 달 뒤였다. 어선을 타고 맞은편 섬으로 가고 있는데 수면이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그것들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열 마리, 백 마리, 그러다가 수백 마리가 날아올랐다. 구닥다리 낡은 어선은 순간 거대한 새 떼를 만난 비행선이 되어버렸다. 처음 보는 장관에 나는 탄성을 질렀다.


  녀석들은 모두 눈이 선명하고 꼬리에도 자그마한 날개가 있었다. 부딪힐 것 같으면 옆으로 회전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애들이 날기를 시작한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비로소 비밀이 풀릴 때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사내가 뜰채로 잡으려 했을 때 속으로 웃었다.

  "잡힐 게 아니에요, 아저씨. 그 애들은 나를 마중하러 나온 거예요."

  그러고 있는데 한 마리가 갑판에 뚝 떨어져서 파닥거렸다. 뜰채에 잡힌 녀석들도 그러했다. 하는 짓이 물고기였다.


  여러 날 뒤 그 배 주인집을 우연히 가게 되었다. 날개도 없어진 채 푹 익은 고깃덩어리로 변한 그것들이 그 집 밥상 위에 있었다. 배신감에 휩싸인 나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 녀석들은 툭하면 수면을 박차고 비상을 하는 버릇 탓에 예전 서양에서는 아주 못된 놈으로 여겼다 한다. 어린 주제에 턱 밑에 수염이 달려 있어서, 태어남과 동시에 몹시도 버르장머리 없어지기 때문인데 그러기 때문에 적이 많아 늘 도망을 친다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 편집 1


<미역> 섬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숲 속 외 따로 떨어진 집을 얻어 들었다. 전 주인이 두고 간 고양이가 있었다. 녀석은 나를 새로운 파트너로 정했고 끼니때마다 현관문을 긁으며 울었고 그리고 받아먹었다. 오로지 고양이 밥을 장만하기 위해 낚시를 가기도 했다. 녀석은 종종 두더지를 잡아오는 것으로 자신의 밥값을 증명해 보이곤 했다. 그러지 말라는 말은 듣지 않았다. 심지어는 멀리 치워놓은 두더지를 찾아내 현관 앞에 다시 갖다 두기도 했다.


  여러 날 불편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한참 뒤 아무도 모르게 새끼를 낳았다 아무도 모르게 만들되 동네방네 모두 알게 자식을 낳은 사람과는 반대였다.(중략) 내가 바라보고 있자 녀석은 어색하게 울어댔다. 그래, 고생했다 싶어 마침 남은 미역국을 데워주었다. 이곳에는 쇠고기 대신 우럭이나 노래미를 넣기 때문에 그것 골라먹으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생선살은 그냥 두고 미역부터 쭉쭉 뽑아먹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미역, 그것은 개와 마늘만큼이나 어색한 조합 아닌가! 낯선 것 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습관이나 환경을 한순간에 뛰어넘어버리는, 생명 메커니즘의 중심에 미역이 있었다.


   이면우 시인의 시 <봄 중의 봄> 중에서


  아침으로 한번은 꼭 미역국을 먹자고

  여편네와 거듭 다짐했다

  미역이 일하는 사람의 피를 맑게 한다더라

  고래도 새끼를 배면

  깊은 바다 미역 숲부터 보아둔다더라


  (...) 공장 잔업으로 더 늦게 들어오는 여편네가

  스텐양푼 가득 맑은 물에

  배배 꼬인 마른 미역 몇 오라기 담그고

  새벽이면 더 멀리 가야 하는 내가

  먼저 촉수 낮은 부엌 등을 켰다 (...)



윈슬로 호머 <점프하는 송어, 1889>


 <숭어> 생계형 낚시는 두어 해 전부터 버릇처럼 쓰는 말이다. 먹기 위해서 낚는다는 말로 레저형 낚시의 반대 뜻으로 썼다. 그런데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우체국 직원이 물어왔다.

  "책에 생계형 낚시를 한다고 나오던데 그렇다면 낚아서 파시는 건가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물론 팔지는 않지만 생계형 아닌 것은 또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 종종 주기도 하고 그리고 뭘 받으니까 물물교환이다. 할머니에게 주면 마늘과 파, 고추를 주신다. 친구에게 주면 술을 사거나 또 다른 고기를 준다. 육지에 보내주면 돼지고기가 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옛날형 낚시인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있을 때 주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고기잡이 다녀온 사람은 으레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 "반찬이나 하소." 툭 던져주기도 하고 미안해서 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슬그머니 놓고 휭, 사라지던 모습 흔했다. 가난과 풍요를 분별없이 공유하는 것, 그게 공동체이다.(중략)


  돈이 위세를 떠는 짓은 이곳 변방도 예외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노선은 유지되고 있다. 혼자 사는 이들에게 사람들이 생선과 쌀을 가져다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낚시하다 보면 마을 해녀가 소라 몇 개 내 발치에 두고 가기도 한다.(중략)


  2,3월은 낚시꾼에게 가장 가난한 계절이다. 낚시의 보릿고개이다. 수온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물고기가 깊은 바다로 들어가 버린 데다가 움직임도 약하기 때문이다. 탓에 이 철에는 굵은 놈 딱 하나만 노리고 종일 낚시를  하기도 하는데 생계형 낚시를 하는 나는 그럴 처지가 못된다. 그러면 숭어 낚시를 간다.


  파도치는 날에는 숭어가 깊이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잔잔한 날이 좋다. 수심 1.5미터 정도 두고 크릴로 낚는다. 이 녀석은 힘도 세다. 원통 모양의 몸이 꿈틀꿈틀 팔딱팔딱 뛰는 것을 보면 힘찬 남성성의 발현으로 제격이다.(중략)


  내게 몇 마리 얻어먹던 친구가 어느 날 제가 낚아오겠다고 갔다. 잘됐다 싶어 나는 안 갔다. 겨울철 낚시는 춥고 손 시려 고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친구, 빈손으로 돌아왔다. 왜 못 잡았느냐고 하자 잡긴 잡았는데 잡힌 놈마다 용왕 아들이라고 빌어서 놔주었단다. 허참, 용왕은 힘도 좋지.



카를 슈베링거 주니어 <물의 정령>


<해녀와 인어> 나와 친구 셋은 뎀마(노 젓는 거룻배>를 타고 해수욕장으로 낚시를 갔었다. 바람이 없고 비가 오락가락하  날이었다. 우리는 보리멸을 잔뜩 낚아놓고 텅 빈 백사장에서 뛰고 뒹굴었다. 홀랑 벗고 고추 흔들며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원주민처럼 짓 까불며 이중섭 ㅁ그림처럼 놀았다. (중략) 굵은 우럭과 노래미를 한두 마리씩 낚아놓았을 때 친구 하나가 뭐라고 탄성을 질렀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마을 옆, 양쪽으로 포진된 큰 바위 사이의 몽돌밭이었는데 여인네들이 단체로 놀러 와 있었던 것이다. 


  위아래 다 입은 이들, 위만 벗은 이들, 모두 홀랑 벗은 이들 열댓 명이 뒤엉켜 있었다. 상대에게 물을 뿌리고, 벗은 이가 안 벗은 이를 억지로 벗기고, 잡아끌고 밀고, 엄마야, 언니야, 비명을 질러대는 중이었다. 애들이라는 게 키도 작고 힘도 약하지만 눈 하나는 맑지 않은가.(중략) 우리는 그렇게 어정쩡한 거리를 둔 채 정신이 홀랑 빠졌다. 몇몇은 여전히 몸을 아꼈으나 대부분은 볼 테면 보라며 하던 짓을 계속했던 것이다. 하긴 그들이 봤을 때 어린 사내 넷은 자신들을 찾아올 미래의 사람 아니었겠는가. 탯속 같은 바다에서의 놀이는 우리의 근원을 만나 완결되었다.(중략)


  남해안의 거문도라는 섬에도 인어를 보았다는 사람이 여럿 있다. 그러나 어느 섬에도 인어의 증명사진이나 신상명세서는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좀 멀리, 오키나와에 산다는 인어는 이름이 '잔'이라고 하는데 역시 젊은 미인의 모습이란다. 인어라는 게 원래 미인인지, 예쁜 것들만 얼굴값 하려고 싸돌아다니다가 인간 세상을 만나는지는 몰라도 잔도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그물에 걸린 것으로 보면 사람보다는 물고기 쪽에 가깝겠는데 어쨌거나 또한 친절한 어부가 놓아주었고 기브 앤드 케이크의 원칙은 종(種)이 다른 것들끼리도 존재하는 법이라 인어는 해일을 예고해주었다고 한다. 그 어부는 목숨을 살렸고 어부의 말을 비웃었던 이들은 죽었다는데...


<물의 정령 확대>


  

  마음이 해일처럼 곤두섰다 가라앉았습니다. 시간이 약이네요. 어른들 말씀 하나도 허투루 인 게 없습니다. 제 내면의 파고(波高)를 이렇게 보이니 나이가 들면 주책스러워지는가 싶습니다 . 


  절판되었다는 미술서를 중고도서로 찾아 주문했더니 오늘 아침 도착했습니다. 한 장 한 장 쓰다듬어 봅니다. 고대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지식과 미학의 보고를 안아봅니다. 누군가는 이 냉정하고 무심한 세상에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발견하고 이 모든 것이 다 의미 있다고 보았던 게지요. 그래서 무시와 비난을 감수하고 펜을 꾹꾹 눌러가며 기록했겠지요.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이 느낀 것을, 그리고 자신을.


  헤밍웨이를 흠모하고 그의 작품 <노인과 바다>를 좋아합니다. 바닷속 사투의 장면을 편집해 올립니다. 우리의 삶도, 삶을 끊겠다고 결심한 누군가도 이렇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고, 벌였을 것입니다. '삶'이 명사가 아닌 동사라는 것을 다시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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