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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Mar 12. 2024

별을 향해 달린 이상주의자의 죽음

상상농담 43. 빈센초 카무치니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 

  위대한 정신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잦지는 않지만 역사는 때때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넘보며 자신의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이 터질 듯 달리고 있는 인간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그가 별을 향해 뛰고 있을 때, 일개 범부에 불과한 저는 숨이 막히지요. 같은 종족으로서 우러름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3월 15일이 다가오는 오늘, 이루지는 못했으나 고귀한 도전을 보여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100~44)에 대해 빈센초 카무치니(Vincenzo Camuccini, 1771~1844)가 그린 작품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 1806>를 나누고자 합니다. 


빈센초 가무치니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 1806>


  집단적 테러처럼 보이는군요. 주저앉은 한 사람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칼을 빼어 들고 있습니다. 쓰러지려는 그의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무릎 꿇은 두 다리의 절망이 붉은 토가 위로 선명합니다. 사뿐히 봄이 걸어오는 보드라운 날, 뜬금없는 이 그림이 너무 무겁지 않느냐구요? 맞습니다. 3월은 파란 장미 빼고는, 빨간 국화 빼고는 모든 꽃씨와 구근들이 사방 지천에서 뒤척이고, 제 빛을 뿌리려는 봄의 시작이니까요. 고대 로마인들은 그들의 신, 주피터를 기념하는 매 달의 중간을 ‘이데스(ides)’라고 불렀습니다. 특히나 3월의 이데스는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 생각해 화려한 축제를 벌이곤 했지요. 


  축복이 넘치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에서 카이사르를 부릅니다. 집을 나서는 길에 카이사르는 점쟁이 스푸린나를 만납니다. 카이사르는 옅은 미소를 띠며 “3월 15일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얼마 전 스푸린나는 카이사르에게 3월 15일, 흉조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었거든요. 그녀는 “아직 3월 15일이 다 지나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아내였던 칼퍼니아도 대문을 막아섭니다. 불과 한 달 전, 원로원의 추대에 따라 폰티팩스 막시무스(대제사장)이자 '조국의 아버지'로 선포된 카이사르의 옷깃을 붙잡습니다. 지적이면서도 강인했고, 영리하면서도 감성적이었던, 힘과 부드러움을 함께 갖춘 -게다가 운(運)까지 좋았던- 그였지만 죽음이란 결코 피해 갈 수 없이 강한 것이었을까요. 근심으로 주름진 아내의 손을 토닥이고 그는 원로원으로 향했습니다. 


  원로원에는 귀족들과 그가 사랑했던 여인 세르빌리아의 아들인 마르쿠스 부르투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의원 중 한 명이 카이사르 어깨에 두르고 있던 토가를 붙잡아 당겼습니다. 공모자들에게 공격할 시간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지요. 역사가 플루타르크(Plutarch)는 상원의원 세르빌리우스 카스카(Servilius Casca)의 칼에 찔린 카이사르의 마지막 외침을 전해줍니다. 

  "추악한 카스카, 뭐 하는 거야?"

  23번의 난도질 끝에 위대한 이상주의자였던 그의 심장은 멈췄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줄리어스 시저>라는 희곡에서 "부르투스, 너마저!"라는 대사로 배신당한 영웅의 마지막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원로회의 귀족들은 왜 카이사르를 암살하려고 했을까요? 조국의 아버지라 칭송했던 그를 왜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요. 카이사르는 로마가 앓고 있는 질병, 즉 ‘귀족들의 대규모 토지 소유의 폐해’를 정확히 파악했고 도려내는 데 사력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기득권의 대표 세력인 귀족들의 권력기반을 뒤흔드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기원전 133년, 로마 원로원 내 벌족파는 토지개혁을 시도했던 그락쿠스 형제를 암살했습니다. 이후 귀족 중심인 원로원은 점차 권력과 토지를 키워 나갔습니다. 그락쿠스 형제가 실현하고자 했던 '토지 소유 제한'과 '곡물 배급 조절'은 약 100년 후, 카이사르에 의해 다시 태풍이 됩니다. 카이사르는 점차 태풍의 반경을 키웠고 귀족들의 창문은 덜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귀족들 각자의 이권에 따라 느려터지게 진행되던 개혁들을 처리해 나갔습니다. 원로원을 개편하고 식민지 시민권을 확대하고 가난한 이를 구제하기 위한 복지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제국의 수도답게 도시계획을 단행하였고 통화를 개혁하고 달력을 개정했습니다. 율리우스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365일 양력 체계는 카이사르가 단행한 율리우스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개혁의 태풍에 의해 기득권의 유리창이 깨져나가자 귀족들은 덧문을 대고 태풍을 잠재울 방법을 모색합니다. 태풍을 키우는 카이사르라는 수증기를 없애는 방법, 그건 그를 원로원이라는 육지로 상륙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흐르는 강물은 매 번 새 강물이듯 영웅은 갔고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황제에 이르러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며 원대한 제국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별을 향해 달린 이상주의자의 죽음이 이룬 꿈입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카이저(Kaiser, 독일), 카이사르(Qaysar, قيصر 아랍), 차르(Tsar,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세계 전역의 통치자 칭호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이상주의자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질없는 욕심인가 되돌아봅니다. 그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카이사르가 죽고 난 후,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들려 드립니다. 


  “내 심장이 저기 저 관(棺) 속에 있는 카이사르에게 가 버렸으니, 나에게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PS : 3월 15일이 다가와 이 글을 포스팅 했는데 밖 날씨를 보니 비가 오네요. 날씨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포스팅이라 대신 이 노래를 올립니다. 오래간만에 배따라기의 <그대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입니다. 어깨가 아파 잠을 못 이루는 요즘, 젊은 날 이리 쑤시지도 저리지도 않은 어깨에 비를 맞으면 비오는 날에도 거리를 헤매었던 젊은 저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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