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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Jun 04. 2024

기억의 집

영화 <오블리비언> 속 크리스티나의 세계

  '일기장 열세 권과 봉투가 누렇게 뜬 편지 한 박스를 파쇄했다.'


  에고, 첫 문장이 30kg 아령을 한 손에 들고 있으니 읽는 이의 눈꺼풀이 무거워 어쩌누. 좀 가볍게~ 살살~


  6월이 '요이 땅!' 하자마자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원한 나신의 여름날을 위해 집 안 묵은 때를 벗기려고요. 때밀이의 눈에 어제의 어제, 그 어제의 어제, 그 그 어제의 어제가 쌓인 채로 계절이 오가는 줄 모르는, 변색된 일기장과 편지 묶음 한 박스가 훅 걸렸습니다. 꽃바람에도 나부끼지 않고  소슬바람에도 단풍 들지 않는 잎을 매단 나무들이 빽빽한 숲처럼 말이지요. 숲은 어둡고 서늘했고 습했습니다. 어제의 어제, 그 어제의 어제, 그 그 어제의 어제는 명랑하고 찬란하고 반짝거리는 날도 있었을 텐데 모두 다 두꺼운 이끼에 덮여 있었습니다. 


  일기나 편지는 글자로 쓰여 있지만 글자를 읽는 건 아니지요. 발신인에게서는 그리움을 읽고, 단정한 글씨에선 다짐을 읽고, 유행 지난 편지지나 노트에선 청춘의 골목길을 읽는 것이니까요. 그 골목길에 뿌려졌던 달빛과 울음과 도전과 실패와 우정과 실망과 좌절과 기쁨들이 뒤엉킨 발자국을 세어 보는 것이니까요. 키보드에 있는 자모음을 누르듯 시간들을 꾸욱꾹 눌러보았습니다. 진창에 빠졌건, 미로를 헤매건, 굴을 파건, 오만에 펄럭이건, 그 상황 속 한 문장 한 문장이 시간의 거미줄을 걷고 절뚝이며 걸어왔습니다. 마치 한 발엔 운동화를 한 발엔 하이힐을 신은 것 같았습니다. '자아'를 찾으려는 저의 그 삐뚤거리는 걸음이 몹시 안쓰러웠습니다. 


  왠지 목이 텁텁해 옵니다. 과거의 시간을 펼치고 접었던 흰 손장갑도 새까매졌습니다. 맥주 한 캔이 간절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다시 거실로 들어와 맥주 한 캔을 들고 TV를 켭니다. TV의 좋은 점은 수신료를 내는 사람이 볼 때나 안 볼 때나 항상 열일 중입니다. 채널마다 바이든이든 트럼프든 모차르트든 베토벤이든 카롤레타 그리시든 안나 파블로바든 헤밍웨이나 피카소까지도 휴일 없이 대기시킵니다. 비주얼을 중요시하는 저는 그중 톰 크루즈를 선택합니다. 톰 크루즈가 주연인 영화 <오블리비언>이 2077년의 지구를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톰 크루즈는 오늘도 특별 임무 수행 중이네요. 


영화 <오블리비언> 포스터

 

  2017년 지구로 침략한 외계 생명체는 달을 파괴합니다. 일찍이 경험해 본 적 없는 해일과 지진이 지구를 덮쳤고 뒤이어 상륙한 외계 생명체를 물리치기 위해 인간은 핵을 사용합니다. 외계 생명체는 물러갔지만 지구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살아있는 인간들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떠났고 몇몇은 우주정거장 테트(Tet)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술요원 49, 잭 하퍼(톰 크루즈 분)는 파트너인 빅토리아(앤드리아 라이즈버러 분)와 함께 지구에 남아있는 외계 잔당들의 게릴라 공격을 막아내며 바닷물을 에너지로 바꾸는 장치를 보호하고 전투 드론을 정비하는 일을 맡고 있지요. 


  잭 하퍼는 임무 수행을 하는 5년 동안, 질식해 가는 지구에 식물이 자란다는 걸 알게 되고 의문을 품습니다. 파트너인 빅토리아나 상관인 샐리는 잭의 질문을 거부하지요. 그리곤 거꾸로 영상 속 샐리는 여러 차례 이렇게 묻습니다. 


  Are you an effective team? (팀웍은 좋아?)


  '효과적인 팀웍'은 어떤 것일까요? 빅토리아와 잭은 하늘 높이 솟은 기지에 둘이 삽니다. 둘은 자주 섹스를 나누지요. 생각을 통한 질문은 거부당하고 기본적 욕구인 성욕은 보장됩니다. 잭의 꿈속에 나오는 뉴욕 자이언츠 미식축구팀이 벌이는 뜨거운 열기와 연대를 통한 함성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잭은 자신의 정찰기에 '밥 bob'이라는 록 가수 모형을 세워 놓고 해답을 알 수 없는 세상에 스스로 답을 합니다.  



  잭에겐 또 다른 비밀이 있습니다. 꿈으로 찾아오는 알지 못하는 여인이지요 그녀는 자신을 향해 웃습니다. 그 미소는 정밀한 정찰 드론이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는 잭 하퍼의 깊고 어두운 무의식에 자리 잡습니다. 그는 아무도 디디지 않은 경계지역에 자신만의 비밀 오두막을 만듭니다. 그곳에 임무 수행 중 가져온 로마 고전, 책과 음반, 그림을 모아 놓지요. 지구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인류가 우주로 이민 가는 시기에 책과 음반, 그림이라는 아날로그 예술을 오두막에 가져다 놓은 설정쯤에서 감독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 졌습니다. 조셉 코신스키군요. <탑건: 매버릭>의 매거폰을 잡았지요. 그는 탁월한 음악과 수려한 미장센으로 주제를 밀어붙이는 담력 있는 감독입니다. 그가 던진 퍼즐 조각을 눈으로 집습니다.


  잭은 영국의 시인 토머스 배빙턴 매콜리의 <고대 로마의 노래>를 기어코 오두막으로 들고 왔군요. 



      

   “성문의 수장 호라티우스는 말했다. 지상에 살아있는 자 모두에게 늦거나 빠르거나 죽음은 찾아온다. 그렇다면 선조의 유물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강적에 맞서는 것보다 더 나은 죽음이 있겠는가.”


  호라티우스는 고대 로마의 성을 지키는 수문장이었습니다. BC 508년 이전 로마 왕정의 마지막 왕, 루시우스 타르키니우스 수페르부스가 지나친 폭정과 아들의 아녀자 겁탈로 왕좌에서 쫓겨날 때, 타르킨 가문은 왕의 편을 들어 로마를 침략했습니다. 이에 호라티우스는 다리를 지키며 홀로 수만의 대군과 맞서 끝까지 분투했고 그의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BC 509년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선포했습니다.


  감독은 약 2,600여 년 전 영웅을 소환해 21세기 우주전쟁에 투입시켰습니다. 선조의 유물과 신념을 지키려 다리 위에 홀로 선 호라티우스처럼 인류의 땅을 지키기 위해 외계 침략본부인 테트를 향한 잭 하퍼의 선택이 의미 있는 죽음이라고 말하는 퍼즐이었을까요? 책과 음반, 그림이 상징하는 즉 인류가 남긴 문화와 예술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인류의 정체성이라고 속삭이는 퍼즐이었을까요. 



  잭 하퍼는 꿈속에 보았던 여인 줄리아(올가 쿠릴렌코 분)를 만납니다. 그녀는 추락한 비행선 '오딧세이호'의 캡슐 속에 있었지요. 줄리아를 통해 그녀가 그의 아내였다는 사실도, 그가 외계 잔당들이라 여겼던 이들이 지구의 생존자들이라는 것도, 자신은 수천 명의 복제 인간 중 49번이라는 현실도 알게 됩니다. 컴퓨터를 초기화시키듯 복제인간인 자신에겐 '기억의 초기화'가 진행되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지요. 인간이 아닌 기계에게 자신에 대한 기억이란 시스템의 오류일 뿐이니까요. 


  그렇다면 '고대 로마의 노래'라는 시는 복제된 인간에게서 사라진 인간의 기억, 동일한 기계가 아닌 독립된 '자아'를 재부팅하는 상징퍼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제목  ‘Oblivion’은 '망각'을 의미합니다. 감독은 인간이었던 기억을 삭제당한 잭이 기술요원 49번이 아닌 우주비행사 잭 하퍼로 돌아오는 열쇠를 그의 무의식에 숨겼습니다. 줄리아의 얼굴, 곧 '사랑'이었던 게지요. '사랑했던 기억'은 '망각'이라는 단단한 지층을 뚫습니다. 둘은 망각 이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잭의 원본이 존재했던 '집'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그 집은 현재 도달할 수 없는 피안(彼岸)이자 삶의 의미이지요. 영리한 감독은 불편한 몸으로 그 '집'에 도달하려고 하는 크리스티나를 폐허가 된 뉴욕 도서관에 걸어 놓습니다. 그리고 테트를 향해 떠나는 잭은 그녀를 줄리아에게 남겨 둡니다. 두 번째 퍼즐입니다.    



앤드류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 >


  미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Newell Wyeth, 1917~2009)의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입니다. 가까이 볼까요. 그녀의 머리카락이 날리고 있네요. 약하고 슬픈 바람입니다. 앙상한 팔과 마른 몸의 그녀를 싣고 저 언덕 위로 날지 못하니까요. 바람은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의 머리카락만 쓰다듬고 있습니다. 크리스티나의 손은 마디가 억세고 땅을 꽉 움켜 잡고 있습니다. 그녀는 불편한 다리를 끌어서라도 기어코 저 태풍에 깨진 유리창이 있을 것 같은 집에 도달할 것입니다. 앞을 향한 그녀의 상반신이 보이시지요? 포기는 없습니다.


  집은 웅장하거나 늠름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언덕 아래까지 나무판의 신경통 앓는 소리가 들릴 듯 낡고 허름합니다. 아마도 그녀가 도달하고 싶은 건 '번듯한 집'이 아니라 '그녀의 세계',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그 시간'일 것입니다. 조셉 코신스키는 여러 차례 '기억'을 강조합니다. 


  현대인은 암보다 심장마비보다 '치매'를 더 두려워합니다. '죽음'은 타인에게서 멀어지는 것이지만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니까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주체적 선택으로 신에게서 조차 도망 나온 인간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자아 정체성'의 혼돈입니다. 인간이 음악을 만들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자신만의 취미에 몰입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기계와 인간의 차이는 살과 피가 아니라 기억이 형성하는 '자아의 유무'인 것이지요. 우주 생명체가 인간을 복제할 때 기억을 없앤 것은 인간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고로 우연히 마주쳤던 46번 잭 하퍼와 52번 잭 하퍼는 공통의 기억을 공유합니다. 그 공통 기억이 이런 대사를 만들게 하지요.



  "그 기억은 당신 거야."

  "나는 곧 그다."



  전 저의 한숨과 웃음소리가 들리는 일기장과 편지들을 없애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록물'과 '기억'은 전혀 다르니까요. 사건, 사실의 증거인 기록물은 기억하고 싶은 마음과 능력이 있을 때 '자아의 증거'로서 의미가 있지요. 창고에 처박혀 있다 어느 날 햇빛을 보는 기록물들은 주로 당사자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양지로 끌려 나올 것입니다. 이후의 기록물이란 주로 보는 사람에 의해 의미의 재설정이 이루어지고 저의 지난 시간은 제게서 멀어질 것입니다. 기록물은 시나브로 치매에 걸릴 거예요. 제 의지만큼 기억하고, 어느 순간 희미해진다면 크리스티나와 저 언덕 위의 집 사이 풀밭에서 자유롭게 뒹굴도록 내버려 두어야겠습니다. 30년 전, 제가 9cm의 하이힐에 운동화를 신었다면 이제는 3cm 힐에 플랫슈즈를 신고 있어 더 가볍게 자신에게 가까이 가고 있으니까!


  TV를 끄고 파쇄기의 버튼을 누른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보내는 선물입니다. 조셉 코신스키의 '열쇠'가 이 그림을 떠오르게 했네요. 


앤드류 와이어스 <결혼, 1993>


  6월인데도 밤바람이 차, 전 이 노부부처럼 창문을 열고 자지 못합니다. 열린 창문 언덕 위가 희뿌연 것을 보니 이제 막 동이 트나 봅니다. 끝단에 주름을 잡은 붉은 이불을 덮고 평온한 두 얼굴이 잠들어 있습니다. 언뜻 보면 희고 창백한 얼굴이 한 날 한 시에 눈을 감은 모습 같기도 합니다. 앤드류 와이어스는 <결혼, 1993>이라고 이름 붙였으니 아마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서로 익숙해지고 닮아가는 부부의 모습이겠지요. 이불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두 팔과 다리가 가지런하고 잠꼬대나 코골이 없는 단정한 모습입니다. 침대를 보니 평소에도 반듯하고 검약하실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은 30여 년을 함께 하셨는데 방과 부엌과 앞마당에서 늘 전투태세였기에 이런 조용함은 낯섭니다. 무기가 빈약했던 아버지가 남들보다 빨리 항복하고 평안한 곳으로 떠나셨지요. 


  사랑의 결실이 '결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사랑이나 결혼이 이 그림처럼 조용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미 결혼한 저는 이리 평온한 잠자리와 이른 아침 같이 눈을 뜨는 이가 함께 한 추억과 더불어 오오래 제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샘들에게도요. ^^



PS : 잭 하퍼의 오두막에서 들려온 노래,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Whiter shade of pale"입니다. 참고로 라틴어인 프로콜 하럼은 'beyond these things, 이 일들을 넘어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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