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기도, 빨래 삶기도, 누굴 만나기도, 책을 읽기도, 글을 쓰기도 싫은 바람 부는 봄날, 가만있으면 저리는 어깨와 팔에 두툼한 핫팩을 두르고 소파에 앉았습니다. 고양이의 가르릉 소리보다 더 나른한 오후, '멍 때리기'에 딱 좋은 날입니다. 거실 소파 맞은편에는 오래된 TV가 있습니다. '에~에액숀~'만 하는 우리 집 명품입니다. ON 스위치를 꾸욱 누릅니다. <이퀼라이저 1>이 한창입니다. TV 화면을 꽉 채운 덴젤 워싱턴은 식당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눈에 슬픔이 있다고 했지요, 아마.
<이퀼라이저 1>의 한 장면
새벽 아주 적막한 그때, 짙은 입술과 짧은 치마의 어린 소녀가 그의 책 <노인과 바다>에 관심을 갖습니다. 사랑했던 아내가 추천한, 반드시 읽어야 할 명저 100권 중의 하나였지요. 어린 소녀는 부끄러운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알잖아요. 난 매춘부예요."
그러자 덴젤 워싱턴(로버트 역)은 책을 덮고 이렇게 대답하지요.
"아가씨는 뭐든지 될 수 있어. 원하기만 하면."
"제 세상에는 불가능해요."
너무나 절망적인 말이, 가수를 꿈꾸는 어리고 아름다운 소녀의 입을 통해 혼돈의 세상으로 나옵니다.
덴젤 워싱턴은 그 특유의 찌르는 눈으로 소녀를 바라봅니다.
"그럼 세상을 바꿔."
어린 소녀(알리나)의 힘으론 그녀의 세상을 바꾸지 못했는지 그녀는 그녀의 세상으로부터 무지막지하게 얻어맞아 병원에 실려갑니다. 그리고 워싱턴은 소녀의 포주를 찾아가지요. 소녀의 자유를 대가로 9800달러를 내밉니다. 포주는 웃습니다. 조롱이 터집니다.
"한 달, 그리고 다시 보내. 이런 푼돈은 2주면 벌어. 그 계집애는 아직 어려. 나중 00가 되면 쓸모없어질 테니 그땐 거저 줄지도 모르지."
차마 번역 그대로 옮길 수 없습니다. 전 어린 소녀들을 데려다 성매매를 시키는 포주의 지독한 악함을 적확하게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해 화가 납니다. 설명도 못하나! 하지만 악이 횡행하는 영화와 나른한 봄날의 소파 사이에는 스크린이라는 달과 지구 거리만큼의 장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 속 빌런은 '멀리서 흘깃 보는 악'입니다. 금방 단어 찾기를 그만두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이어지는 덴젤 워싱턴의 현란한 애엑숀은 19초 만에 악당을 전멸시킵니다. 통쾌함에 다 다다르기도 전, 별안간 난데없는 센 주먹이 제 눈두덩이를 후려갈깁니다.
'저게 뭐지?... 돈(Don)의 성모인가?'
스크린은 제 눈두덩이 깊숙이 멍 때리고 있던 뇌에게 어퍼컷을 날립니다. 감독에게 한방 먹었습니다.
<이퀼라이저 1>의 한 장면
옛 러시아는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군소공국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1240년 키예프 공국의 멸망을 시작으로 몽골(타타르인)과 분리독립을 선언하는 1483년까지, 240여 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몽골은 매년 막대한 조공을 요구했고 때때로 불시에 침입해 수많은 양민을 노예로 끌고 갔지요. 속국이었던 동안 자유와 독립을 향한 크고 작은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1380년 러시아(당시 모스크바 공국)의 드리트리 대공(1363~1389)은 돈강 상류에 있는 쿨리코보 전투에서 몽골을 크게 물리칩니다. 이로 인해 그는 '돈강의 드미트리'라는 뜻의 '드미트리 돈스코'라고 불리게 되었지요. 또 그의 사망일인 오늘 5월 19일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지정한 그의 축일입니다.
고개 숙이고, 빼앗기고, 매 맞고, 속박당하고, 내어놓아야 하는 자국의 운명을 신의 은총에 의지해서라도 어떻게든 바꾸어보려는 애달프고 절박한 전투-쿨리코보에 모시고 나간 이콘이 이 <돈 DON의 성모>입니다. 이 이콘화는 전쟁을 이긴 후 드미트리 대공에게 보내졌고 대공은 이콘을 모스크바로 옮겨 모셨습니다. 드디어 1483년, 러시아는 이반 3세가 킵차크 칸 국(國)과 맺은 조공계약을 불태우며 몽골과의 오랜 주종관계를 끝내게 됩니다.
이후 100여 년이 지난 1591년 크림지역에 있던 타타르인의 칸이 군대를 이끌고 다시 러시아를 침략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이 'DON의 성모'앞에 간구했습니다. 그들이 이콘화를 높이 세우고 전투를 시작하자 타타르의 대군이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성모님은 자비로운 두 손을 펼쳐 끝내 자유롭고자 하는 이들의 무릎을 세우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셨던 거지요. 1593년 이콘을 모시고 나갔던 장소에 '돈스코이 수도원'이 세워졌습니다.
페오판 그렉 <돈 DON의 성모, 연대추정 1482>
중세의 서양 회화에서 '그림'은 곧 '말씀'이었습니다. 그림은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전하려는 도구였으니까요. 하지만 러시아인들에게 '이콘'은 그림이거나 말씀이 아닙니다. 신앙이고 간증이며 기도고 기적이지요. 러시아의 이콘은 '신의 나타나심'입니다. 1917년 동토의 땅과 문화와 사회를 깨트린 러시아 혁명 전까지, 러시아 여느 집 동쪽 모서리에는 반드시 이콘화와 촛대가 있었고 그들은 그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신의 현현인 이콘의 제작과정은 신의 창조질서에 따릅니다. 무(無)와 혼돈 이후 "빛이 있으라"하셨던 것처럼 금색의 배경을 가장 먼저, 가장 밑바닥에 칠하지요.
머리에 후드를 쓴 성모님은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어린 예수님을 안고 계시네요. 성모님 후드의 깃과 예수님의 옷은 금박으로 장식했습니다. 숭배와 경건의 마음이 빛납니다. 성모님의 오른손이 너무 크고 왼손과 차이가 난다거나 양감(量感)이 느껴지지 않고 예수님의 신체 비율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건 이 이콘화를 그렸던 페오판 그렉에겐 전혀 문제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신의 은총, 기쁨, 평안, 믿음, 준엄, 영광만이 그의 붓에 차고 넘쳤을 테고 고통에 엎드렸던 러시아 민중들에겐 '그가 그렸던 것'만이 보였을 테니까요.
엥? 아니 <이퀼라이저 1> 빌런 뒤에 있던 그림은 <돈 DON의 성모>가 아니군요. 흐릿한 장면 속 성모님의 손이 다른데요? 그럼 슬픔의 성모였던 <블라디미르의 성모>였을까요?
콘스탄티노플 화파 <블라디미르의 성모, 12C 초)
'블라디미르의 성모님은 우리에게 익숙한 -"후우~"하고 입바람을 불면 스르르 안개가 흩어지듯 연한 미소와 자애로운 눈으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이 아닙니다. 슬픔이 배어 나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만 같은 성모님입니다. 닫은 입술은 신음소리를 담고 있네요. 갸웃한 고개는 우수에 젖었고 후드와 어깨의 눈꽃 문양은 외롭게 깜빡입니다. 콧날은 가을 어스름, 노을을 인 소나무 같지요. 장난기 가득한 예수님이 애써 눈길을 마주치려 하지만 성모님은 아주 깊은 곳을 바라 보고 계십니다. 슬픔의 성모이자 러시아를 수호하는 국가의 팔라디온(국가의 안전이 달려 있다고 알려진 고대의 이미지 또는 대상)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오른팔로 예수님을, 왼팔로 러시아를안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1131년 경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그리스 총대주교는 키예프 공국의 유리 돌고르키 대공에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이 식사하던 식탁의 판에 그려졌다고 알려진 신비스러운 이콘을 선물했습니다. 이콘을 운반하던 말이 블라디미르 근처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빙빙 돌기만 하였다지요. 이콘은 블라디미르의 '가정 대 성당'에 모셔집니다. 60년 후인 1395년 타타르 몽골의 위대한 칸이었던 타메를라네(다른 이름 '티무르')가 모스크바를 침공했습니다. 모스크바의 바실리 1세는 블라디미르에서 모스크바로 이 이콘을 옮겼고 밤새 그 앞에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군대는 성상과 함께 행진했습니다. 현(現)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중부 지역에 티무르 제국을 세운 강력한 통치자였던 타메를라네는 꿈속에 성모님의 슬픈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타메를라네 군대는 즉시 퇴각했습니다.
블라디미르 성모님의 비탄에 잠긴 눈동자는 예수님의 미래를 보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나약함과 악함을 서글퍼하셨기 때문일까요? 그도 아니면 러시아 민중의 고통을 함께 겪고 계셨기 때문일까요. 아마 모두 다 일 것입니다. 성모님은 심판의 날에 인간을 가엽게 여겨 달라고 예수님의 옷깃을 붙잡고 눈물로 간청하는 분이시니까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저 그림은 <블라디미르의 성모>도 아니네요. 예수님의 옷과 성모님의 손이 달라요. 저 작품을 매 장면마다 흐릿하게 처리한 것은 우연이 아니군요. 감독의 냉정한 계산이 숨어 있었나 봅니다. 감독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고 작품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오호~
<이퀼라아저 1>의 한 장면
장면들을 back 합니다. 잠들지 못하는 로버트와 알리나는 브리짓 디너(bridge diner)라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지요. '도로변의 간이식당'으로 해석할 수도, '다리 앞 식당'일 수도, '다리'라는 단어가 갖는 함의를 가져온다면 '현대사회의 어느 길목에서 우연히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전 이쯤에서 감독 안톤 후쿠아를 다시 만났습니다.
"장난 아니군."
브리짓 디너에서 로버트는 <노인과 바다>를 읽고 있습니다. 로버트와 알라나와 노인은 각자의 바다에서 파도를 이기며 항해 중입니다. 어느 날 알리나는 노인이 아직 고기를 잡지 못했냐고 묻습니다. 로버트는 잡았지만 상어에게 다 먹혔다고 말합니다. 마치 로버트의 자기 고백 같습니다. 그는 백척간두의 삶을 살았고 뭔가 지키려 애썼지만 노인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알리나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을 수도.
"바다는 비에 젖지 않아. 어떤 시련이 와도 시련에 젖지 않아."
그럼요. 인간은 파멸당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으니까!
로버트는 악에게 패배하지 않으려 합니다. 알리나에게 기회와 시간을 주려 합니다. 그 기회의 장소는 동시에 악당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안톤 후쿠아는 악당이 머무는 장소 정 중앙에 성모님을 모셨습니다. 그는 악당이 악을 행하는 중에서도 성모님의 '중보(仲保)의 손길'을 바라는 그 노골적인 뻔뻔함을 보여주려 했을지 모릅니다. 만일 성모님이 몽골의 채찍에 살점이 터지는 러시아 민중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줄 정도의 능력이라면 자신과 자신의 사업을 지켜보라는, 극악한 악인의 신에 대한 능멸을 빗댄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엔 선과 악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가 꼬리를 물고 함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많은 의도 중...
<이퀼라이저 1>의 한 장면
혹시, 어쩌면... 성모님은 이 악의 장소에서 피와 오물을 뒤집어쓰며 언젠가 선이 찾아오리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인간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면 반드시 한 점 선함이 있다고... 그 선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그건 진정으로 선한 19초면 충분하다고...
나른함이 달과 지구의 거리만큼 물러납니다. 팔은 쑤셔오고 목은 뚝뚝 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러시아의 이콘화를 꼼꼼히 읽어보고 싶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PS :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마음을 담아 영화 레옹의 OST, 'shape of My heart'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