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깨어서...

by 안노라

밤에 깨어 있습니다. 소파도 식탁도 설거지를 끝내지 못한 접시도 제자리에 있습니다. 밖에 나갔던 마음만 돌아오지 못했지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봅니다. 단어가 몇 개 없군요. 이럴 때, 저는 침묵하고 타인의 언어를 빌려 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와 화가와 그림을 소개합니다.

질 나쁜 연애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를 하느니
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 가겠어
잠자리 선글라스를 끼고
낡은 오토바이의
바퀴를 갈아 끼우고
제니스 조플린의 머리카락 같은
구름의 일요일을 베고
그의 검고 단단한 등에
얼굴을 묻을거야
(중략)

회오리 바람 속으로
비틀거리며 오토바이를 몰아 가는
불량한 남자가 나는 좋아
머리 아픈 책을
지루한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
지껄이지도 않지

오토바이를 태워 줘
바다가 펄럭이는
바람부는 길로
태풍이 이 곳을 버리기 전에
검은 구름을 몰고
나와 함께 이 곳을 떠나지 않겠어?

-문혜진_


우수(憂愁)의 시절을 달리는 제임스 딘과 같이, 단숨에 혼돈를 몰고 온 마이클 잭슨과 같이, 「아메리칸 지골로」에 나오는 리처드 기어와 같이 몰락과 애수(哀愁)가 함께 있는 위험한 등(背)을 보고 싶네요. 그런 등에 기댄 채, 잔 없는 맥주를 손에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고 싶어집니다.
이 詩
황홀하군요.

이 시에 딱 어울리는 화가가 떠 오릅니다. 그녀의 이름은 김점선입니다. 이제는 그림으로만 만날 수 있는 화가지요.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의 투명함을 사랑했고, 탁월하지만 본능적인 재능을 연모했고, 무엇에도 걸치지 않은 자유로움을 흠모 했습니다.


아이처럼 천진한 그녀가 그린 그림과 글 입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풀들이 비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나무들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아 움직이는 연기를 하고, 바다는 뒤집어지고 거리의 먼지가 모두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나쁜 집에서는 비가 줄줄 새고, 해진 운동화 속에도 물이 쿨럭거리고, 우와 재밌다."




"나는 내 아이가 마음이 아주 넓고 부드러우며 환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추운 겨울밤, 누군가가 입다가 버린 구멍 난 나일론 치마, 이불감보다 더 찬란한 원색의 꽃들이 그려진 여름 치마를 임부북이라고 떨쳐 입고 고구마통 옆으로 다가서는 그 하찮은 모습의 여자에게도 따뜻하게 웃어주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



1

"그 때 나는 집 나와서 바람난 미혼모였다. 몸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나이든 여자가 주변에 한 명도 없었다. 태어나서 그런 사람이,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그 흔하디 흔한 경험을 가진 여자가 그렇게 간절히 필요했던 적이 없었다. 고독했다. 사람을 제 몸속에, 뱃속에 넣고 다니면서도 고독했다. 지구는 아주 넓은 황무지이고..."



1 "나는 사람들하고 놀지 않고 내 생각하고 논다."




"태어나서 한번도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추워지는 밤에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낮에도 두꺼운 오버코트를 입은 채 걷는다. 슬리핑 백을 입고 다니는 셈이다. 짐은 아무 것도 없다. 빈 손으로 모든 것을 껴 입은 채, 걷는다. 이런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다. 가장 단순한 생활, 짐 없이 걷는 사람,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 실크로드 근처, 오직 흙뿐인 벌판을 혼자서 걷는다.




"어느날 남편이 운동화가 해졌다고 하면서 사러 간다고 했다. 따라갔다. 남편이 운동화를 신어보고 샀다. 새 신을 며칠 신고 산보 다니면서 발이 아프다고 했다. 신을 신어보고서도 바로 살 줄 모르냐고 내가 구시렁거렸고 우리는 다시 신을 사러 갔다. 똑같은 모양으로 조금 더 큰 걸 샀다. 이제야 발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으니까 할 수 없이 내가 신어야 한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새 신이 생겼다. 커플룩이 되었다. 한참 뒤, 몇 달쯤 지나서 나는 스스로 깨달았다. 남편이 일부러 작은 신을 사고, 억지로 내게 새 신을, 좋은 신을 신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내 문제들을 말로 나눌 살아있는 사람들을 찾지 못하고 죽은 자들을 책 속에서 만나며 소일하고 있었다. 산 사람들은 번거롭고 멍청하고 무식하다.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은 살은 다 썩어 없어지고 뼈만 남아 있듯이, 인쇄체 글자로만 남아 있다. 죽은 자들이 편했다."



"나는 그들과 같이 하객석에 앉았다. 식 중에 부모님께 절하는 시간이 왔다. 아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 사람들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즉석에서 루머가 만들어졌다. '저기 저 반바지 입은 머리 헝클어진 여자가 신랑의 생모래. 그런데 약간 머리가 돌아서 엄마 역할을 못한대...'

물론 아들은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라도 식장에 와준 걸 너무나 고마워했다."



"추상은 저절로 그렇게 되어가는 거야. 글씨를 많이 많이 쓰면 초서가 되듯이, 팔십에 이른 운보(김기창)가 추상으로 접어드는 것같이."

-변종하-

허블 망원경으로 들여다 본 우주가 제 아무리 세밀하고 먼 곳이라 해도 그것은 지금 과학이 닿을 수 있는 가장 세밀하고 먼 곳일 뿐, 우주 전체는 아닐 것입니다. 광대한 우주는 과학이 아닌 인간의 상상 속에서 보물섬처럼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늘엔 별이 없습니다. 거센 바람이 별을 쓸었나 봅니다. 아니, 지구의 하늘은 더 이상 별을 품지 못하는지도 모르지요.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발견되지 않은 별이 그대이기를 바라는 4월입니다.

<출처> 그림은 네이버에서, 김점선님 글은 <나는 성인용이야>, <점선뎐>에서 발췌했습니다. 김점선님에 대한 그림도 언젠가 다룰 날이 있겠지요. 이번 주에도 그리운 화가를 모셔 오겠습니다. 마음은 별을 찾아 떠다니느라 통금을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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