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만 호밀밭의 파수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51 앙리 루소

by 안노라

느루야, 간밤 통계자료와 씨름했나 보구나. 식탁에 즐비한 커피잔, 먹다 남은 고구마, 욕실에 후끈한 습기까지, 조금 전 네가 뒤척였을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있더라. 행여 네가 깰까 봐 살금살금 설거지를 하고 시금치를 무치고 쌀을 씻으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식과 스펙을 더 가져야 이 사회에 필요한 일꾼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너네가 하는 표현대로 '몸과 영혼을 갈아' 하는 공부가 네 꿈을 이루는 재료이긴 한 거야?


언젠가 다들 대기업만 들어가려고 하니까 경쟁적이 된 건 아니냐는 내 말에 느루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지. 엄마의 이십 대는 거의 대부분이 가난하고 궁핍해 낡은 군복을 해지도록 입고 다녀도 그걸 '젊음'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지만, 우리가 겪는 이십 대는 학교 주차장에 벤츠를 파킹하고 캔퍼스를 걸어오는 친구와 알바를 마치고 버스에서 허겁지겁 강의실로 뛰어오는 친구가 함께 수업을 듣고 그 일상의 모순 속에서 자신의 현실을 확인해야 하는 세대라고 했어. "젊은것들이 대기업만 가려한다"라고 비난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나게 만든 건 누구냐고 했지.

"중소기업을 다니는 순간, 이류 인생처럼 취급된다고."


엄만 고작 이 땅의 엄마, 아빠들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는 말을 조그맣게 했어. 한숨을 쉬며 느루가 얘기했었지. 그래, 맞아. 하지만 경제적 호황기에 젊음을 보낸 엄마 세대의 지금은 금요일 저녁이라고. 해야 할 일에 쫓기던 한 주가 다 가고 황홀하고 느긋한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에 맥주 한 캔을 놓고 책꽂이 앞을 어슬렁거리는 세대라고. 하지만 느루 세대는 다르다고 말했어. 여태껏 월화수목금금금의 시간을 보내고도 내일은 다시 경쟁의 출발선에 대기해야 하는, 불안에 떠는 일요일 저녁을 사는 세대라고 했지.


느루의 말이 아직도 마음을 찌른다. 엄마가 네게 무엇으로 위로해줄 수 있을까?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했더라도 '이류 인생'이 아니라고 어떻게 증명해 줄 수 있을까? 엄마의 손은 참 가난하구나!


혹시 말이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1897.jpg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1897>


컴퓨터 앞에서 하루 종일 강의 자료를 만들다 고개를 들어 이 그림을 볼 때가 있어. 쫓기고 피로했던 마음이 평온해져. "이제 잠깐 쉬어도 돼." 하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 네게도 그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의 <잠자는 집시, 1897>, 이 그림을 지친 느루에게 선물할게.


깊고 푸른 밤을 건너는 은빛 달이 있어. 달이 내려다보는 모래 언덕엔 검은 여인과 사자가 있구나. 발자국 하나 없는 걸 보니 이 사막 위에 둘 말곤 아무도 없어.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서로 길들이는 과정일까? 사자는 깊이 잠든 여인의 머리카락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고 있는 것 같아.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가 이 여인의 몸 안에 있는 것처럼. 사자에게 집시 여인은 낯설고 새로운 초원. 길고 곧게 뻗은 꼬리가 미지의 초원을 향해 한 발 내디딘 사자의 긴장을 나타내 주지.


하지만 집시 여인은 꿈조차 없는 깊은 잠에 빠졌어. 잠이 깨면 사막의 모래바람 속, 넓적하고 큰 발로 남은 여정을 지속하리라는 암시처럼 긴 지팡이와 물병을 곁에 두었어. 하지만 정작 내 시선을 끄는 건 달을 닮은 저 만돌린이야. 사막에 떨어진 달처럼 둥글고 흰 몸뚱이가 품고 있을 집시의 음표! 몸집에 비해 커다란 그녀의 손으로 가늘고 흰 줄을 뜯어 들려줄 노래가 궁금해.


잠든 그녀의 노랫소리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이에게만 들리지. "모든 어른들이 한때 어린아이였지만 아주 일부의 어른들만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어린 왕자의 말처럼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엄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아. 들리지 않는 그 노래는 사막을 건너 피카소가 살던 '세탁선'까지 날아갔나 봐. 어린아이처럼 그리려고 노력했던 피카소는 무명의 앙리 루소를 초대해 '루소의 밤'을 열어주었어. 유명한 예술가들이 몰려왔단다.


앙리 루소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1909>


그 예술가 중에는 피카소의 친구 기욤 아폴리네르도 있었어. 그는 순한 눈매와 고운 마음씨를 가진 시인이자 시대를 앞서가는 민감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였지. 그는 피카소가 살던 '세탁선'이라는 건물을 드나들다 마리 로랑생이라는 시인과 사랑에 빠졌어. 아폴리네르는 무명의 앙리 루소를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자신과 로랑생의 초상화를 주문했어. 앙리 루소가 두 연인을 그린 그림,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1909>야.


아폴리네르는 순박한 표정으로 시인의 상징인 깃털 펜과 종이를 쥐고 있어. 로랑생은 하늘의 영감을 시인에게 전해주는 매개자로 그리스 여신의 입상처럼 그려졌어. 하지만 첫눈에도 잘 그렸다고 보긴 어려운 그림 같지 않니? 현대를 살고 있는 이십 대의 여자를 저렇듯 '얼큰이'에 투박하게 그렸다면 뺨 맞기 딱 알맞았을 거야. 로랑생의 몸은 지나치게 거대하고 인물의 신체 비례 또한 과장돼 있어. 배경의 나뭇잎은 띠 벽지 디자인 같고 하단의 꽃과 줄기는 욕실의 타일 장식이 연상돼. 게다가 저 붉은 꽃은 시인을 상징하는 패랭이 꽃이라고 하는데 엄만 아무리 봐도 패랭이 꽃 같지 않구나.


놀라운 건 이 그림을 보고 난 사람들의 반응이었대. 모두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인 걸 단박에 알아봤다고 하는구나. 그 사람을 구성하는 얼굴과 표정, 몸 이외에 감춰져 있지만 반드시 있는 어떤 것을 알아보는 눈이 루소에게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루소의 '다름'을 알아보는 예민한 더듬이가 피카소나 아폴리네르에게 있었던 것일까? 그랬을지도 몰라. 그들은 시대를 앞선 입체파나 초현실주의를 탄생시킨 장본인들이니까. 하지만 루소나 피카소를 만나기 전, 당시의 비평가들에게 루소는 험담이 아까울 정도의 형편없는 화가 취급을 받았단다.


앙리 루소 <나 자신, 초상화-풍경, 1890>


"루소의 작품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단돈 3프랑으로 기분 전환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난쟁이 몸집에다 절구통 머리를 얹어놓고 자화상이라고 제목을 붙인 건 틀림없이 화가가 겸손하기 때문일 것이다."

"야생 사자가 슬금슬금 다가오는데 웬 여자가 지쳐 잠들어 있다. 사자가 덮칠까 말까를 고민하는 배꼽 잡는 그림이다. 하품이 나온다."


이 정도의 비평이라면 어지간히 강단 있지 않고는 화가가 붓을 꺾지 않겠니?


그런데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했어. 살벌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히 그림을 그렸어.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자신을 진심으로 훌륭한 화가라고 믿었고 자기 작품에 대한 긍지가 대단했어. 당시엔 인상파와 관학파(아카데믹한)가 화단의 두 축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아카데믹한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자신의 실력을 의심치 않았고, 세간의 평가를 무시해 버렸고, 저속한 비평가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것을 보고 있다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혔어. 너희들이 말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뼈 속까지 꽉 찬 화가였단다.


그의 근자감이 가득 찬 <나 자신, 초상화-풍경, 1890>이란 작품이야. 검은 베레모를 쓴 화가가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카루셀 철교 앞, 큰길 위에 당당히 서 있어. 구름처럼 떠 있는 열기구와 만국기가 펄럭이는 배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 그의 흥분을 엿볼 수 있지. 그는 시대의 중심에 서서 다가오는 미래를 맞이했어.


느루는 "그런 자부심은 착각일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할는지 몰라. 그래, 루소는 프랑스 회화가 축적한 세련된 기법이나 시각적 구성 등은 다루지 못했어. 르네상스 이후 회화의 고전이 된 원근법이나 명암, 비례 등도 능숙하지 않았어.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처럼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콤플렉스가 어떻게 새로운 회화를 여는 열쇠가 되었는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단다.


"전혀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여인 1907.jpg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여인, 1907>


루소는 평범한 풍경에서 환상을 보고 일상에서 놀라운 상상력을 펼쳤어. 아마도 그의 내면에 '그림은 이렇게 그려야 한다'거나 '회화의 기본은 이것이다'라는 어떠한 규칙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그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은 그만의 것이었고 그의 등에는 짊어져야 할 과거의 유산이 없었어. 그는 가볍고 빠르게 걸었어. 미술이론이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화가들의 무거운 발걸음으로는 결코 갈 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


느루는 정글에 가 본 적 있니?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한 나무들과 온갖 짐승들과 원시적 생명력이 가득 찬 매혹적인 공간에 발을 디딘 적 있니? 그의 작품에는 정글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 많아. 하지만 그는 한 번도 프랑스를 벗어나지 않았고 아프리카를 방문한 적도 없었어. 다만 그의 상상력이 동물원과 식물원에서 보았던 다양한 생명체들을 자신의 캔버스에서 뛰어놀게 한 거야. 양치식물과 침엽수가 함께 자랐고, 사자와 호랑이는 영역다툼을 벌이지 않았어. 그의 상상력에는 원시와 문명의 경계선도 없었지. 그는 현실에 발을 딛고도 늘 하늘을 우러르는 고대의 제사장같이 우리에게 자연의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단다.


<뱀을 부리는 여인, 1907>을 봐. 신비롭고 환상적이지 않니? 기름지고 풍요로운 검은 땅이 고대 주술사의 형상을 빌어 솟아난 것 같아. 검고 치렁치렁한 머리, 어둠을 응시하는 대담한 눈, 단단하고 강한 다리는 압도적인 그녀의 힘을 느끼게 해. 그녀가 부르는 피리소리에 이브를 꼬여냈던 뱀들은 춤을 추고 숲의 정령은 깨어날 거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강물도 멈춰 귀를 기울일 거야. 소리에 취한 달빛이 내려앉아 새벽이슬은 별처럼 빛날 거야.


루소는 살롱전에 거듭 떨어졌어. 하지만 지금, 살롱전에 입상했던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 이는 없어. 오히려 강한 자기 확신으로 자신의 영역을 고집한 루소의 그림이 초현실주의 미술의 대문에 걸려 있지. 느루야, 있던 것은 낡게 돼. 낡은 건 새 시대를 견인하지 못한단다. 예술과 인생은 근본적으로 새롭고 혁명적이야. 엄마는 젊은 너희들이 루소와 같이 좀 더 당당했으면 좋겠구나. 아니, 세상의 평가에 좀 더 무뎌졌으면 좋겠구나. 사회가 치밀하게 짜 놓은 틀을 거부하고 과거의 환영들을 쓸어버렸으면 좋겠구나.


너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구요. 그때는 지금처럼 화려한 스펙이 필요 없었겠죠."


앙리 루소 <즐거운 어릿광대, 1906>


그는 넉넉지 못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났어. 어린 시절,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학업성적이 나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지. 가난은 가진 재능을 키우거나 가능성에 도전해 볼 기회를 빼앗잖아. 루소는 생계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 급사로 겨우 취직했지만 30프랑을 훔쳐 소년원에 구금되었고 면죄해 주는 대신 군 복무를 권유받게 돼. 그는 육군에 지원했어. 군 복무 5년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홀로 되신 어머니를 돌보아야 할 의무가 생기지 않았다면 군대에 계속 남았을지도 몰라. 그는 제대 후 어머니를 모시고 파리로 왔어.


루소는 스물다섯에 나이 어린 클레망소를 만나 결혼하고 1871년부터 파리시의 세관원으로 근무했단다. 그는 늘 박봉에 허덕이며 살았어. 왜냐면 현재의 세무공무원이라기보다 고속도로 통행 징수원처럼 센 강을 오가는 물건에 세금을 걷는 일이었거든. 일생을 보내기엔 몹시도 건조하고 딱딱한 일이었지. 하지만 그림을 그려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루소는 특별히 낙담하지도 좌절하지도 않았어. 루소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고 드로잉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었기에 루브르 박물관에 모사 허가증을 얻어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며 독학했어.


마흔의 그는 더듬거렸지만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그리고, 쉬지 않고 그렸어.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그는 학생들이 쓰는 물감과 화구를 챙겨 들고 일요일이 되면 파리 근교의 식물원과 동물원을 찾아가 수천, 수만 장의 그림을 그렸어. 그래서 사람들은 약간의 조롱과 경멸의 의미를 담아 그를 '일요화가' 또는 '르 두아니에 루소(Le Douanier, 세관원)'라고도 했구나. 화가의 포즈로 당당한 자화상을 그린 그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모사 작업은 그를 열등감에 빠지게 했어. 살롱전의 낙선은 더 깊은 실의에 주저앉게도 했지. 게다가 그는 의지할 곳 없는, 화단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왕따'였으니까.


하지만 루소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알고 있었어.

"자연을 관찰하고 내가 보는 것을 그리는만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했거든.


앙리 루소 꿈 1910.jpg 앙리 루소 <꿈, 1910>


자신이 행복한 길을 찾아 루소는 49세가 되던 해, 세관원을 사직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에 집중했단다. 쟁쟁한 화가들의 무대인 살롱전 출품은 어려웠지만 참가비만 내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앙데팡당전'에는 1895년부터 꾸준히 참여했지. 물론 어디에도 주목받지 못했어.


그저 서툰 아마추어 화가라고 생각했던 그를 사람들이 주목하게 된 계기는 1908년, 이미 현대 예술의 봉우리로 추앙받던 피카소가 그를 높이 인정했기 때문이야.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권위에 약하니까. 하지만 무엇이 피카소로 하여금 루소를 인정하게 했는지는 몰랐을 거야. 엄마가 소개했던 첫 작품, <잠자고 있는 집시>를 떠올려봐. 사자는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점이지만 집시 여인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이란다. 이미 루소의 작품에서 다시점이 보이고 있어. 회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평면적 구성, 사실과 상상 사이의 몽환적이고 비밀스러운 사물들의 나열, 색의 원시적이고 미묘한 깊이 등은 기존의 틀에 익숙해진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천재의 세계였지.


그는 작품 <꿈, 1910>을 완성한 얼마 뒤, 패혈증으로 사망해. 아마도 지금 그는 자신이 창조한 에덴동산인 이 <꿈> 속에 있을 거야. 밤과 낮이 뒤섞이고 상징과 은유가 질문을 던지는 원시적 공간에서 아직도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나신의 여인이자 그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야드비가에게 사자와 밀림과 피리를 부는 주술사와 낮에 뜬 달을 안겨주면서 말이야.


느루야, 엄마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구나. 네겐 꿈을 가지라면서도 난 꿈을 좇지 못했고, 현실을 이기라면서도 늘 현실과 타협했고, 사회의 평가를 두려워 말라면서도 엄만 눈치를 보며 살고 있으니까. 그런 엄마의 삶을 네가 산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야. 루소의 그림을 네게 소개하면서 어쩌면 실패가 무서워 시도해 보지도 않고 잠재운 무수한 일들이 주술사의 피리소리를 듣고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엄마가 바라는 건 네가 실패했을 때라도 그걸 통해 배울 수 있도록 안전하게 널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것. 네가 혼자 길을 걷지 않도록 팔짱을 껴 주는 것.


앙리 루소 카니발 축제의 어느날  1886.jpg 앙리 루소 <카니발 축제의 어느 날, 1886>


<추신>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에 나오는 집시 여인의 옷과 그 신비함을 영화에 담아 냈어요. 멋진 뮤지컬의 리듬과 춤을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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