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52 베르나르 뷔페
느루야, 엄마가 낮술을 했단다. 요즘 느루는 통계와 영어 공부에 쩔쩔매고 있어 말도 붙이지 못하잖아. 그래서 세무 공무원이 되어 조금은 맘이 느긋해진 누가 오빠를 꼬셔서 삼겹살에 맥주를 걸쳤지. 도도히 취기가 오르니 세상이 내 것이네. 남들은 배가 부르면 화가 난다는데, 엄만 배부른 걸 아주 좋아하잖아. 쌀 독에 쌀이 그득한 행복한 마음으로 할머니의 사진을 본다.
얼마 전, 할머니 영정사진을 찍었지. 작년 12월, 팔순을 맞이한 기념으로 가족사진과 함께 찍은 것이지. 느루도 누가도 의젓하고 단정하게 나왔구나. 사실은 할머니가 더 늙기 전에, 더 기력이 쇠하기 전에 사진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을 졸였단다. 할머니가 먹는 걸 힘들어하고 자꾸 말씀이 없어지셨거든. 사진 속 할머니의 이마는 아주 힘센 소가 깊고 고르게 간 이랑 같구나. 총기 넘치던 눈은 햇볕에 입을 벌려 말라버린 바지락 같구나. 자존심 우뚝하고 맵시 우아했던 할머니가 이리 야위고 볼품없어지셔서 손으로 가만 쓸어본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그리 사이가 좋지 않으셨어. 할아버지의 현실감 없고 대책 없는 낭만에 덴 할머니는 시나브로 삶에 전투적이고 생활력 강한 투사가 되어 가셨지. 엄마 나이 스물이 지난 즈음엔 그저 전우애만 남은 부부였구나. 서로 "소 닭 보듯" 했단다.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 날, 목 안에서 한 양동이의 검은 물을 토해 내셨지.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검은 강처럼 시커맸어. 할아버지가 위암으로 3개월을 가파르게 앓자 할머니는 고된 병시중을 내색 없이 감당했지. 나중 "악"소리가 날만한 병원비에도 한 마디 말씀이 없으셨어. 그리고는 주렁주렁 매달린 우리들을 두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한테 모질게 해 놓고 그냥 가다니 참 나쁜 사람이다."라고 하시며 뼈 빠지는 노동으로 그 병원비를 다 갚으셨어. 그 후론 여태껏 할아버지 얘기가 없으셨구나.
그런데 요 며칠 사진이 나왔느냐고 여러 번 물으시는 거야.
"요즘은 보정을 몇 차례 한대요. 그래서 여러 날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왜요? 엄마, 미인대회에 사진 내려우?" 하고 농을 했지. 그랬더니 할머니가 살금살금 웃으시며 장롱 서랍 깊숙이 손을 넣어 오래전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꺼내시는 거야.
"느그 아부지가 내도록 외로웠을틴디 내 사진 옆에 놓아줄라고 그런다."
느루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리즈'시절이 있었겠지. 그 리즈시절에 너희들처럼 '불타는'까지는 아니어도 '달달한' 연애일 때가 있었을 거야. 엄마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 이전, 두 분의 애틋한 젊음이 떠 올라 눈 앞이 흐려지는구나. 술 탓이겠지?
한동안 엄마 기억 속 할아버지는 자꾸 희미해졌어. 그 할아버지처럼 이 화가도 멀리 뿌옇게 보였었는데 낮술이 주는 흥에 취한 걸까? 평생 한 여인과 달달한 연애를 했던 화가가 생각나네. 연인에 대한 깊은 마음뿐 만 아니라 그는 새로운 추상회화의 파고(波高)가 높을 때, 한 물 갔다고 평가받았던 구상회화의 전통을 붙잡고 홀로 피골이 상접한 20세기를 기록한 프랑스 화가 이기도 하지.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은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란다. 목탄으로 빠르게 드로잉 한 것처럼 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지. 평생의 연인이었고 뮤즈였던 아나벨에 대한 그의 마음이 짐작되는 작품이야. 베르나르는 당시 프랑스 문단의 작은 요정이었던 프랑수아즈 사강과 절친이었어. 너도 들어봤을 거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으로 파리를 발칵 뒤집은 바로 그 사강이야. 둘은 사강이 주최한 파티에서 만났지. 베르나르는 그녀를 본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심장의 떨림을 맛보았어. 운명이 자신을 향해 서서히 걸어왔거든.
우울하고 굶주린 어린 시절과 유일한 피난처였던 어머니를 일찍 떠나보냈던 뷔페와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태어났고 뛰어난 지성과 두드러진 필력, 매혹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춘 아나벨이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의 자살로 아물지 않는 흉터를 가진 그녀는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어. 그들은 매일 100km의 거리를 왕복하며 사랑을 나눈단다.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쓱쓱" 그렸다고 해야 하나? 멈추어 생각한 그림이 아니라 차창 밖의 풍경을 본 대로 느낀 대로 거침없이 스케치하듯 기록한 그림이지. 그녀의 존재 자체가 아름다웠을 테니까. 그 아름다움을 보관하고 싶었을 거야. 마음 깊은 곳, 오염되지 않는 순정한 장소에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하는 건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모든 이의 바람이겠지. 문득 젊은이들의 사랑도 이와 같으면 좋겠구나. 감정에 충실했던 그 순간은 그 순간으로서의 생명력을 가질 테니까.
뷔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
"나는 당신을 원해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당신이면 돼요."
오르페우스에게 에우리디케가 있었다면 베르나르에겐 아나벨이 있었어. 그녀는 베르나르 영혼의 뮤즈이자 현명한 아내였어. 느루야, 그녀는 그의 작품과 전시회를 홍보 하는 글을 썼고 화상들을 만났으며, 그가 우울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그의 생활을 돌보고 일상을 지원했지. 둘은 늘 함께 다니면서도 또한 자신들 각자의 영역에 몰입했어. 그녀는 가수이기도 했거든.
"나는 베르나르가 창조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욕구를 소진하고자 견뎌야 했던 작업의 강도를 이해하는 데 30년이 걸렸다.(중략) 내가 잘한 점이 있다면 베르나르에게 그림은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가 그림과 마주하고 있을 때, 내가 낄 자리를 만들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술가를 이해하는 예술가다운 말이지. 이제 구상화가로서의 베르나르 초기 작품 <접시 위 계란 그리고 남자>를 보여 줄게.
뷔페가 19살에 그린 그림이야. 쇄골이 드러난 남자의 두 손엔 포크와 나이프가 있구나. 하지만 접시엔 계란 한 개뿐이야. 그의 가난한 식탁과 쓸쓸한 혼밥을 지켜보는 물병은 가장자리에서 떨어질 듯해. 위태로운 둘은 쌍둥이처럼 닮았어. 저 기다란 포크에 계란 한 알, 열아홉이라는 아직은 어린 나이였던 그는 어떻게 삶의 남루함과 고독을 알았을까? 이 작품을 보면 보잘것없는 식사 한 끼를 준비하기 위해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과 주름을 보여주었던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연상되지 않니? 작품 속 농부의 가족들은 흐릿한 조명 아래서 감자를 먹었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감자를 먹지 않았는데도 목이 메었지.
베르나르 뷔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0년 전, 프랑스 파리 북부 변두리인 바티놀(Les Batignolles)에서 태어났어. 변두리의 삶이 그렇듯 무언가가 늘 부족했고 그중 가장 부족했던 건 아버지의 사랑이었지. 소심하고 예민한 성품이었던 베르나르가 변두리의 문제아로 자라지 않고 예술가가 된 것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어. 사랑 깊은 어머니는 그림에 대한 아들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았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그의 손을 잡고 루브르 박물관에 갔단다. 그곳에서 문명사의 빛이 되었던 수많은 대가들, 렘브란트와 다비드와 장 그로가 베르나르의 가슴에 평생 동안 꺼지지 않는 불씨를 던졌지. 그는 예술의 길을 걷기로 결심해.
그의 십 대는 발랄하지 않았어. 결핍과 위험이 상주하는 전쟁 속에서 자랐거든. 1940년 6월 프랑스 파리는 나치에 점령당했어. 미래와 자유가 묶인 암담한 파리에서 뷔페는 곤충과 식물 그림에 몰두했지. 그리고 그의 회화실력을 높이 산 드로잉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열다섯의 나이로 파리의 국립 미술학교인 "에꼴 데 보자르"에 합격해. 그가 열망에 가득 찬 세계로 진입한 기쁨을 누리기도 전, 한결같이 그를 응원해 주던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사망하셨어. 그는 넓은 대양 한가운데 돛대 없는 배처럼 표류했단다. 그리고 에꼴 데 보자르에 돌아가지 않고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폭풍이 이는 바다처럼 높고 낮은 물결이 수시로 엄습하는 그의 마음을 다스리며 그림에 몰두했어.
그는 어둡고 날카롭고 앙상하고 비루한 전후시대의 거리를 그렸어.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개인들의 외투 속에 감춘 외롭고 고독한 상처를 핀셋으로 집어냈지. 한동안 그의 그림은 전쟁과 갈등과 결핍의 모습을 진열하는 전시장 같았어. 더러워진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 말이야. 건조하고 삭막한 도시의 얼굴, <장례식>을 보겠니?
사방에 부패하고 상한 '죽음'이 있구나. 널려있는 절망과 비참함 속에 지리멸렬한 삶이 숨 쉬지. 물기라곤 없이 말라비틀어진 세상이야. 비명과 울음이 도시의 벽돌과 벽돌 사이에 새어 나오고 있어. 세계는 1차 대전이 끝났고 20여 년 만에 다시 2차 대전을 맞았어. 쉴 새 없이 누군가의 손목이 날아갔고 목도 날아갔어. 후방에 있는 어린아이들은 만연한 위험에 시름시름 앓다 죽었고 전방에 있던 청년들은 쥐가 끓고 진창이 된 참호에서 발이 썩어 들어가 죽었지. 이제 종달새는 이곳에 날아와 울지 않아. 인간의 욕심과 오만에 넌덜머리가 난 신은 자비의 손을 거두어버렸어.
그림 속 자비를 거둔 공간은 납작하고 숨 막히지. 문은 모두 닫혀있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아. 하늘과 땅 모두 회색과 어두운 황색이야. 산 자는 아무도 오지 않고 산 자들의 그림자들만이 모여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는 듯하지. 오른쪽 건물을 돌아 하늘을 향해 뻗은 길의 표지판은 아마도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 만개한 꽃과 과실에서 썩어가는 부패의 냄새를 맡았던 바니타스의 정물화처럼 그는 평범한 일상을 향해 당기는 '전쟁'이라는 방아쇠는 '상실과 소외'라는 탄환이 장전되어 있음을 온 세상에 알렸어.
전쟁이 끝나고 대포와 기관총에 부서진 세상은 급격히 추상으로 넘어갔어. 회화는 세상과 인간을 왜곡했던 죄를 형(形)에게 물었어. 하지만 화가들은 형태 자체를 없애는 방법으로 진화했지. 하지만 그는 여전히 검고 잔인한 선과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의 불안과 고독을 그렸어. 그에겐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단다. 저마다의 각도로 빛을 반사하는 추상이라는 색유리가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빛나려면 그 조각조각을 검은 선으로 이어주어야 한다고 말이야. 자신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의 적자(摘子)를 자처했지.
그의 전시회는 늘 성황을 이루었어.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몰려왔고, 주문을 했고, 그를 재벌 작가의 반열에 올렸지. 그가 추구한 예술세계에 대한 관객들의 애정은 전후시대의 허기를 표현했던 <닭을 들고 있는 여인, 1947>이라는 작품을 피카소가 보러 왔다는 사실로 더욱 굳건하고 화려해졌어. 삶의 황폐함을 그렸던 그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라는 작품을 통해 통렬한 깨달음을 선물하기도 했어. 그림을 봐. 성모의 자애로움은 찾아보기 힘들어. 오히려 아들을 잃은 비통함 너머,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절한 고통에 갇힌 마리아의 모습이 있지. 가는 두 다리를 완전히 꺾고 주저앉아 위로를 구하는 모습이야.
그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문화 훈장을 받았고 넘치는 부(富)가 있었어. 천재적 재능이 꽃피운 것에 따른 이른 성공이 가져다준 보상이었지. 하지만 그가 너무 오래 한 자리에 머물렀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붓보다 시대를 견인하는 선지자들의 걸음이 훨씬 빨랐던 것일까? 그는 진지한 프랑스 비평가들에게 비난을 받기 시작했어. 너무나 상업적이며 예술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였지. 한때는 그의 그림에 환호했고 지금은 야유와 조롱을 던지는 비평가들에게 그는 광대의 모습으로 다가갔어. 야윈 팔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껴안았지.
광대는 마치 베르나르와 아나벨 같아. 감정을 숨기고 서로 의지해 기타와 색소폰으로 음악을 연주할 뿐이야. 평가라는 못이 그의 마음을 날카롭게 긁는 동안, 그는 예민해진 자신과 신경쇠약에 걸린 시대를 위로하고 싶었을 거야.
추상과 해체로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흐름에 저항하기엔 그의 그림은 너무 우스꽝스럽고 세간의 평가는 견딜 수 없이 삭막한 것이었나 봐. 물론 전부가 그랬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예술가란 심약한 사람들이니까. 흉터는 깊어졌고 그의 몸도 무거워졌어. 그럼에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파킨슨병에 걸렸어.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지. 그는 자신이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어. 용광로 같은 애정과 산맥 같은 자존심을 가진 그에게 창조의 능력을 상실한 무미건조하고 소외된 삶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테니까.
우리에게 <80일간의 세계일주>로 유명한 작가 쥘 베른은 1869년에 <해저 2만 리>를 출간해.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깊은 해저에 푸르른 인광을 번뜩이며 고래보다 빠른 속도의 괴물이 목격되지. 네모 선장과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살아있는 수수께끼'를 찾아 나서. 그리고 말하지.
"내가 상대하고 있는 녀석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고요."
느루야, 베르나르는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녀석이 누구고,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그의 방식대로 말했단다. "죽음보다 더 허무한 것은 삶을 무표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야.
삶을 무표정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일흔 하나가 되던 1999년 그는 아나벨에게 잠시 내려가 있으라고 한 뒤,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살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나벨에게"라는 유언장을 남기고. 아마도 이건 유언장이 아니라 연서인 듯 싶지. 순정한 마음을 다해 일평생을 사랑했고, 비난과 추앙을 동시에 받았던 자신의 작품만큼이나 살피고 아꼈을 테니까. 아나벨은 그가 떠난 세상에 6년을 더 남아 그의 작품을 관리하고 전시회를 기획하며 세간의 비평에 묻힌 그의 예술세계를 알렸단다.
느루야, 술이 깨 버렸구나. 감정이 고양된 흥이 넘친 상태가 좋았는데. 베르나르와 아나벨을 생각하며 다시 사진을 들여다본다. 이 영정사진을 들고 미인대회에 나가면 "포토제닉 상" 정도는 너끈히 탈 수 있을 만큼 할머니 얼굴이 고와 보이네. 살아생전 "소 닭 보듯"하신 두 분이 나중엔 "고목나무에 매미"처럼 딱 붙어 계시게 될까? 그 모습을 상상해. endless love가 별 거겠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