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루야, 너 자니? 엄만 잠이 오지 않아. 불면증에 좋다는 라텍스 베개를 베고 누웠는데도 자꾸 뒤척이네. 아까 오빠가 전에 아르바이트하며 만났다는 청년 얘기가 아직 소화되지 않고 부대껴. 이 나이가 되도록 현실을 소화할 만한 튼튼한 위장을 갖지 못한 탓일까? 도대체 이십 대나 오십 대나 거친 삶에 체하는 것이 똑같다면 나이는 왜 먹는 거니? 쯧쯔.
그 청년은 혼자 산다고 했지. 부모님이 어린 시절 이혼해 탁구공처럼 엄마, 아빠 집을 튕겨 다니다 결국 연락을 끊었다고.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주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다고 말이야. 여자 친구 한번 사귀어 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지. 전혀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아인데 엄만 그 말만 듣고 내심 울컥했단다. 외로움이 엎어진 자리에 스며드는 습기를 알거든.
밤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외로워서 술자리를 갖게 되고 그 술값을 다시 아르바이트로 메꾸게 된다는 오빠 얘길 들으니 그 청년의 의지없음보다 그 연약함을 이용하는 아르바이트 사장님이 너무 밉구나.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마음 다잡아 검정고시로라도 고등학교를 마쳐야 한다고 조언했어야 해. 적어도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모아 홀로 설 수 있도록 독려했어야 해. 어린애가 쉴 새 없는 노동으로 번 돈을 다시 술값으로 탕진하게 하다니, 그리고 그것을 방치하고 조장하다니...
이십 대 중반이니 어린애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할 성인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엄마가 보기엔 어린애야. 인격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한 탓에 유아적 마음에 이십 대의 몸을 가진 기형적인 "어른 애"지. 이 사회는 갈수록 경제의 불균형뿐만 아니라 인격의 기형을 가져오는 것 같아. 함께 사는 동시대인으로 타인에 대한 알맞고 필요한 관심과 지나친 간섭의 경계는 어디쯤인지 모르겠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이 깨 버렸구나. 내일 서울 갈 일도 있는데 이리 어수선해지다니! 차 한 잔 하려고 일어났더니 식탁에 화집이 있구나. 따뜻한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보고 싶네. 페이지를 열어볼까?
느루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디에고 벨라스케스 <세바스티안 데 모라의 초상, 1642>
벨라스케스라고 하면 먼저 <시녀들>이 생각날 텐데 엄만 늘 이 그림이 먼저 떠올라. 그의 또 다른 깊이와 매력이 느껴지거든. 바로크 시대의 위대한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가 그린 <세바스티안 데 모라, 1642>라는 작품이야. 그림 속 모델의 이름은 제목처럼 '세바스티안 데 모라'야. 궁정의 난쟁이였지. 유난히 쭈그러진 피부와 성장이 멈춘 몸, 기형적인 비율로 인해 뒤뚱거리는 걸음을 가졌어.
그림 속 세바스티안은 앉아서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 그의 눈에는 무기력함이나 비굴이 보이지 않아. 동정을 구하는 시선이나 귀족들의 비위를 맞추며 웃음과 재주를 파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지. 오히려 입술을 굳게 다물고 두 손을 힘 있게 그러쥐고 관람자를 쳐다봐. 만일에 누군가 그를 조롱하다면 당장 허리춤에서 칼을 뽑을 것 같은 위엄이 느껴져. 그럼에도 정사각형에 가까운 꽉 찬 캔버스는 그가 당면한 비좁고 출구 없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 같구나!
세바스티안이 있던 당시 스페인 궁정은 권력과 명예와 경제적 자원이 한곳에 집중되었던 절대 왕권의 시기였어. 몹시 권위적이었고 화려함과 부유함이 넘쳐났지. 하지만 그 이면엔 권력 유지를 위한 모략과 술수가 범람했고 근친혼에 따른 유전병으로 왕가의 자손들은 앓거나 단명했단다. 권력의 정점에는 우울과 긴장이 살얼음처럼 드리워져 있었지.
그런 숨 막히는 궁정에 난쟁이들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했어. 왕족들은 여러 명의 난쟁이와 광대를 왕실에 두고 무료함과 권태를 달래려고 했어. 이들은 때로 왕궁 밖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풍자와 익살로 전해주는 재담꾼이기도 했고, 왕자와 공주의 잘못을 대신 감당하는 매 맞는 시동이기도 했고, 살아있는 장난감이기도 했으며, 정상적인 몸을 갖고 있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우월함을 만족시켜주는 '열등한 존재'이기도 했지.
디에고 벨라스케스 <발타자르 카를로스 왕자와 난쟁이, 1631>
언뜻 보면 꼬마 둘이 어울려 노는 듯한 그림이야.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게 중심이 고르지. 화면 중앙의 남자아이는 에스파냐 펠리페 4세 왕의 아들, 발타자르 카를로스 왕자야. 이제 두 살이지. 금실로 고급스럽게 수놓은 의례용 드레스 위에 광택 나는 어깨띠를 두르고 왕위 후계자답게 지휘봉을 들고 있구나.
화면 왼쪽에 있는 여자아이는 궁정에 사는 난쟁이 소녀야. 작은 몸집의 소녀는 왕권의 상징인 왕홀(王笏)과 보주(寶株)의 대용물인 딸랑이와 사과를 들고 있어. 소녀는 지금 자신의 불균형적인 외모를 이용해 카를로스 왕자 옆에서 왕자의 고귀한 혈통과 기품 있는 외모를 돋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마치 네덜란드의 부유한 신흥 상공인이 자신의 부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방식과 비슷해. 검박(儉朴)과 절제를 강조하는 종교인으로서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는 대신 하녀를 가족 초상화에 집어넣듯이 말이야. 우린 하녀를 둘 정도로 부자라는 말이지.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왕실의 주문에 맞춰 왜소증 아동이나 척추장애인을 이용해 왕족의 우월한 혈통을 강조했지만 난쟁이를 희화화하거나 낮추어보는 어떤 암시도 보이지 않아. 오히려 왜소한 소녀는 카를로스 왕자보다 더 전면에서 화면을 이끌어 가고 있어. 프레임 밖을 응시하는 어린 난쟁이 소녀의 맑고 선한 눈동자는 카를로스 왕자의 시선과 부딪치며 팽팽한 에너지를 쏟아내.
17세기의 궁정화가는 궁정의 하인이었어. 식기를 닦고 빨래를 하는 하인보다 한 두 등급 위인 정도의 하인이었지. 하급 귀족 출신이었던 벨라스케스는 궁정에서 생활하며 광대와 난쟁이들의 삶에 대해 무척 공감하고 안쓰러움을 가졌던 것 같아. 화가의 철학과 신념은 그의 붓끝에서 표현되는 것이니까. 그의 긴 붓은 차별이나 왜곡이 없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여 현실을 극복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장애인들을 그렸단다.
벨라스케스의 연민 어린 시선과 담대함은 난쟁이의 신체적 약점이 부각되지 않도록 부러 앉은 그림을 선호한 것으로만 봐도 알 수 있어. 게다가 <어릿광대 디에고 데 아세도, 1644>이라는 작품에서는 난쟁이 광대 앞에 커다란 책을 놓기도 했어. 당시 상층 귀족이나 성직자만이 볼 수 있는 책을 마치 "난쟁이나 하인은 읽지 못하란 법 있어?" 하듯 당당하게 펼쳐준 거야. 참 따뜻하지?
디에고 벨라스케스 <어릿광대 디에고 데 아세도, 1644>
느루야,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남부의 세비야에서 태어났어.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무대이기도 하지. 그의 아버지는 포르투갈에서 이민 온 유대인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스페인 하급 귀족이었어.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당시 화단을 주름잡던 화가 '프란치스코 파체코'의 제자가 되었고, 스물네 살에 필리페 4세의 화가가 된단다. 붓이 달아준 날개로 그는 사뿐히 꼭대기에 올랐어. 벨라스케스는 색의 효과를 통해 르네상스 전성기를 이끌었던 티치아노와 극단적 명암 대비를 이용해 극적인 효과를 내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
17세기의 스페인 마드리드와 오스트리아 빈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멀고 험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어. 자동차도 비행기도 없었던 시기, 두 왕가는 지속적인 연대를 위해 왕과 왕손의 모습을 초상화로 그려 안부를 주고받았고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그 일을 맡아했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초상화의 대가'로 불리게 돼. 우리가 아는 <시녀들, 1656년 경>이란 작품에서도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잖아. 그런 그가 귀족과 왕실의 초상화가 아닌 천하고 멸시받았던 난쟁이와 광대들의 위엄과 품위를 기록한 초상화를 남긴 거야. 그는 타인에게, 사회의 약자에게 과도한 간섭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관심을 가진 거지.
엄마가 이십 대때, 장애인 연합 캠프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장애인 신문에 올린 적이 있었어. 30여 년 전이니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낮았고, 비장애인들이 그들에 대해서 칙칙하고 남루한 모습의 선입견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어. 그런데 사진을 올리자 전화가 이어졌고 후원금이 마구 들어왔단다. 엄마도 찍을 땐 몰랐는데 사진 속 친구들이 우리가 잃어버렸던 바로 그 순정한 웃음을 짓고 있더라구. 갈 곳은 많은데 돌아올 곳을 잃어버린 우리 모두에게 아직은 그 땅이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 모두 그걸 느꼈었던 것일까?
엄만 가끔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곤 하는데 그때도 그랬던 것 같아. 느루야, 엄만 이 말을 깊이 이해한단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을 흔드는 것이 본질이다."
(왼) 벨라스케스 <개와 함께 있는 난쟁이, 1642) / (오) 안토니스 모르 <개와 함께 있는 그랑벨 주교의 난쟁이, 1560>
우리의 감각을 흔드는 그의 그림을 하나 더 보여줄게. 왼쪽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개와 함께 있는 난쟁이, 1642>이야. 멋진 의상과 붉은 액세서리 그리고 단단히 목줄을 죄고 있는 의젓한 자세, 부리부리한 눈, 사람이 왜소한 것이 아니라 개가 큰 것처럼 느껴지지 않니? 기형인 신체와 사회적인 무시, 무기력한 미래, 어릿광대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편견을 넘어서려는 강인한 아름다움이 있지?
같이 개를 곁에 두고 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도 있어. 오른쪽의 안토니스 모르가 그린 <개와 함께 있는 그랑벨 주교의 난쟁이, 1560>을 보렴. 비교가 되니? 벨라스케스가 그린 난쟁이와 어릿광대들은 비록 짤막한 다리와 무거운 머리를 가졌지만 "나는 나야."라고 외치며 당당하게 상대방을 바라본다면, 안토니스 모르의 난쟁이는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옷을 입고 개에게 쩔쩔매면서 "전 장난감이 아니에요." 하는 소리를 삼키고 있는 듯이 느껴져. 얼굴은 수치와 분노를 꾹 억누르고 있어. 벨라스케스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개개인의 존엄과 미래의 목소리를 담아냈지. 그의 화법이 후대에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씨앗을 뿌린 것처럼.
느루야, 엄마가 아플 때, 바라는 것이 있었단다. 내가 아픈 걸 다른 사람은 몰랐으면 싶고, 가족은 섬세히 배려해 주고 엄마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것이었지. 예를 들면 청소나 설거지 같은 일상적인 일들의 도움을 바랐어.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인 거야. 밖에 나가면 은근히 다가와 암에는 이런 음식이 좋다느니, 이런 생활습관을 가져야 한다느니 하며 측은한 눈길을 보냈고, 집에서는 일상을 같이하는 익숙함 때문에 엄마의 바람은 자주 잊혔지. 타인에 대해 알맞고 필요한 관심의 시작은 어디일까?
디에고 벨라스케스 , 궁전 난쟁이 프란시스코 레스카노의 초상, 1643~45>
느루야, 오지랖 넓게 이런저런 생각에 끄달리다 이른 모임에 늦을 뻔했구나. 널 깨우지 않고 서둘러 나왔단다. 지하철에서 내려 모임 장소를 걸어가고 있어. 그런데 이런...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가 이런 모습일까? 마치 태풍이 나무의 머리채를 잡아 악다구니를 쓴 흔적처럼 죄다 부러지고 꺾였더라.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크레인을 동원한 인부들이 우람하고 키 큰 가로수를 가지째 잘라버리더라고. 둥그런 톱날이 슁~ 윙~ 쇳소리를 내자마자 굵은 나뭇가지들이 툭툭 떨어지는데 관절이 부러지고 심장 터지는 소리가 들렸어. 작업을 마친 길거리엔 생뚱맞게 나무 둥치만 남았는데, 마치 닳고 닳아 대만 남은 싸리빗자루를 거꾸로 세운 모양이야. 어찌나 몰골이 흉하던지 차라리 나무를 베어 버리지 싶을 정도였구나. 3차선 도로 한쪽이 죄다 이 모양이어서 다 큰 아가씨들을 완력으로 발가벗겨 줄지어 서 있게 한 느낌이 들더구나. 고개를 돌리고 말았단다.
도로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봄이 오니 곧 아름드리나무는 잎을 토해낼 테고 그러면 빽빽한 나뭇가지가 상가의 간판을 가린다던가, 무성한 나뭇잎이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한다던가, 뭐 그런 정당하고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야. 하지만 아무리 당연한 일이어도 거친 방법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어. 불편하고 쓸모없는 건 한 치도 용납할 수 없다는 냉혹한 합리성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심미안(審美眼)이라고는 밥톨만큼도 없이 효율성만 추구하는 조직의 건조함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저 나무들도 매연 가득한 도로가 아닌, 햇빛 노니는 시냇가에 심어졌다면, 바람에 나부끼는 풍성한 머리칼로 우아하게 봄을 맞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상처 없는 삶을 꿈꾸는 건 삶에 대한 무례'라는 말은 사람만이 아니라 나무에게도 해당되는 걸까? 누가가 아르바이트에서 만났던 청년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지금 누가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 청년도 가로수도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던 결과로는 너무나 무겁구나!
아무래도 누가에게 그 청년의 친구가 되어주라고 해야겠어. 간섭 말고 관심, 알맞고 적당한 관심!
추신 : 혹여 오해가 있을까 염려되어 덧글답니다. 이 글에서 '난쟁이'라는 단어를 취한 건 글이 담고 있는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가 현재의 '척추장애인'이나 '왜소증 장애인'같은 단어들이 담지 못하는 뉘앙스를 살려주기에 선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분들에 대한 비하의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