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상처가 숨기에 적당하지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57 구스타브 카유보트

by 안노라

비가 오네. 가로수를 쓰다듬던 봄비가 콘크리트 바닥에 툭툭 떨어져 팝콘처럼 터지고 있어. 꼬투리에서 터져 나온 완두콩같이 초록 물방울이야.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엄마는 종이 쇼핑백을 머리에 이고 물방울들을 피해 걸었어. 왠지 우산을 사고 싶지 않아. 비에 젖은 도시는 길냥이조차 보이지 않는구나.


이런 어쩌지? 빗줄기가 굵어지는 걸. 쯧쯔, 어깨도 젖고 바짓단도 젖었는데 저 상가 앞 천막으로 두른 처마 밑에서 잠시 쉬어 갈까? 아이고, 비긋기 위해 머리를 가렸던 종이 쇼핑백 끈이 찢어져 버렸구나. 종이백을 안고 가야 하나? 그러고 보니 이 기시감(旣視感)은 뭐지? 그래, 오래전 내 스무 살 언저리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네.


그땐, 알고 지내던 선배가 이사를 했었어. 선배는 지하창고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조각을 했었거든. 눅눅하고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 입구의 문을 열면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가 토르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이곤 했지. 지금은 찾기 힘든 '아우라'가 있는 자그마한 여인이었어. 그런데 작업실을 옮겼다는 거야. 우린 작업실에서 마실 다량의 술과 약간의 안주, 그리고 하이타이(당시 빨래 세제)를 들고 가던 중이었지.


하필 장마 때였어. 하늘이 뻥 뚫린 것처럼 맹렬히 비가 왔고 금세 허벅지까지 젖었어. 누군가 들고 가던 하이타이 끈이 떨어졌다더니 갑자기 세제의 뚜껑을 열고는 인도 한복판에 뿌리는 거야. 곧 아스팔트가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흰 거품이 일었어. 순식간이었지. 우린 우박처럼 떨어지는 굵고 세찬 빗방울을 맞으며 부글거리는 세제 속을 맨발로 첨벙 대며 놀았어. 술과 안주와 두 팔을 묶고 있던 무거운 청춘을 아스팔트 위에 내려놓았지. 그리고 가볍게 치마를 걷어올렸어. 마음속 '들고양이들'이 날뛰었지.


이 그림 속 행인들처럼... 몹시 외로웠거든.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구스타브 카유보트 <비 오는 날의 파리 거리, 1877>


안개비로 캔버스가 촉촉하게 젖었어. 눈에 눈물이 차오르듯 돌바닥 사이에 물기가 어른거리네. 도시의 습기를 이렇듯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나도 슬며시 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 수은등 밑을 걷고 싶다. 오른쪽 전경에는 우산을 쓰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남녀의 모습이 있지. 모자와 도트 모양의 베일, 귀걸이,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중산모를 쓰고 단추 달린 양복을 입은 남자의 팔짱을 끼고 있어. 들고 있는 우산 활대의 주름처럼 공기를 주름지게 하는 작은 소란이 있었던 걸까? 캔버스 너머 사선으로 빗긴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한 남자가 스쳐 지나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여 걷고 있는 남자. 비에 젖은 돌바닥 마냥 천성적으로 말수가 없어 보이는 남자.


그는 먼 곳에서 왔을 거야. 동네나 마을같이 개인 삶의 내력이 진술서처럼 보관되어 있는 곳에서 말이야. 그의 발뒤꿈치에 매달린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제를 털어내고 미래를 향해 가고 싶었을 거야. 원래 상처 있는 인간들은 과거로부터 도망갈 곳을 찾지. 그들은 신으로부터, 전통으로부터, 남루한 신분으로부터 벗어나 근대의 도시를 향해 달리지. 근대의 도시엔 개인이 숨 쉴 수 있으니까. 인격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이 사는 곳. 그래서 19세기 근대를 여는 도시, 파리는 도망자의 것이었고 이주민의 것이었고 디아스포라의 것이었지. 도시는 상처가 숨기에 적당하거든.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는 도시를,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파리 도시민의 일상을 그렸어.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후원하는 미술품 수집가이자 화가였어.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에 따른 색과 형태의 변화에 집중할 때, 그는 오스만 양식이라 불리던 세련된 건축물과 회색 공기에 숨겨진 과학과 속도의 구조물, 새로운 시대가 떨어뜨린 고독하고 강인한 남자들의 걸음과 뒷모습을 캔버스에 담았지. 이 그림은 <비 오는 날 파리 거리, 1877>라는 작품이야.



카유보트는 화면의 원경(遠景)에, 한 공간에 머물지만 결코 소통하지 않는,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어. 그들은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하염없이 비에 젖는 사람들이지. 카페에 앉아 압생트를 마시며 시를 읊거나,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다가 기차 경적소리에 뛰쳐나가거나, 백화점 쇼윈도의 화려함에 매혹당하면서도 시대의 속도에 멀미를 느끼는 예민한 개인들.


"희망은 박쥐처럼 겁먹은 날개를 이 벽 저 벽에 부딪치고

썩은 천장에 제 머리를 박아대며 달아날 때

끝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거대한 감옥의 쇠창살을 닮고

희망은 꺾여 눈물짓고, 포악한 고뇌는

푹 숙인 내 머리 위에 검은 깃발을 꽂는다."

파리의 우울을 견뎠던 샤를 보들레르는 <악의 꽃>이라는 시집에서 음습한 고독이 이식된 도시를 사는 개인의 모습을 특유의 염세적인 언어로 풀어냈지. 근대 도시에 뿌리내린 욕망과 금기와 일회적 시간들이 의식의 검열을 피해 쏟아져 나왔어. 보들레르가 파편적이고 우연함이 스치는 아름다운 도시의 몰골을 '악의 꽃'으로 명명했듯, 카유보트는 사진과 회화의 거리를 거닐며 내면의 도망자들이 익명의 도시에 스며드는 모습을 차분한 눈으로 기록했어.


화면 오른쪽 앞을 봐. 잘린 남자의 뒷모습이 있지. 왠지 어색하지 않니? 마치 거리를 지나가다 무심히 셔터를 누른 스냅사진 같잖아. 맞아. 카유보트는 찰나의 순간과 우연한 채집을 기본으로 하는 사진술에 매료되었어. 1839년 사진기가 발명되었고 이는 회화(繪畵)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지. 이후 두 분야는 서로 심각한 영향을 주고받게 돼. 전경(前景)의 남녀는 우산의 활대와 베일의 무늬까지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원경은 아웃 포커싱처럼 형태만을 표현한 것으로도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지. 드가가 사진을 찍어 캔버스 안의 다양한 구도를 실험했듯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웬 도시 이야기냐고? 음... 오늘 문득 대부분 당구공처럼 우연히 부딪쳤다 스쳐 지나가면서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독을 들키지 않는 우리들이 도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지만 자신의 액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진관 쇼윈도에 걸린 사진들처럼 말이야. 이제는 고독을 치유하는 방법도 다른 것 같아. 우린 자연을 찾아 떠났지만 느루와 같은 젊은 세대는 이 건조한 도시 안에 숙영지를 두고 방향을 찾고 보급품을 조달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성장한 곳이 도시니까 휴식이 필요할 때도 도시 속에 캠프를 차리겠지.


구스타브 카유보트 <유럽 다리, 1876>


느루야, 때로 인생이 고되고 너무 지칠 때, 언제든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는 캠프는 어딜까? 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나' 말고 극소량으로 남아있는 우리 안의 순수한 어린아이가 맘껏 뛰놀고 설렐 수 있는 네버랜드가 있을까? 저 흰 연기가 피어나는 <유럽 다리, 1876> 속의 생 라자르 역(驛)에서 삶의 정주(定住)와 이동(移動)이 가능하려나?


19세기 과학과 이성의 힘이 근대를 상징하는 기차에 실려 파리의 생 라자르 역에 도착했을 때, 기존의 낡은 속도로는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시대의 변화를 담을 수 없다는 위기감도 함께 내렸지. 이 작품은 철로가 나아가는 방향 끝에 신(神)과 사회로부터 분리된 개인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예술가의 감수성이 낳은 작품이란다. 비릿한 쇠 냄새를 풍기며 자연이 아닌 문명을 바라보고 있는 도시인의 그림이지.


창백하고 부신 빛이 다리를 비추고 그 위에 사람들이 오가고 있어. 중산모를 쓴 남자의 뒤편에 소실점을 두어 긴 공간감을 부각했고 화면 오른편에 X자로 난간 테크를 구성해 속도감과 율동감을 살린 그림이야. 밝은 회색과 어두운 검은색의 대조, 육중한 철 구조물과 날아갈 듯한 빛의 대비가 선명해.


화면 오른쪽 앞, 회색 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가 다리 밖을 내려다보며 도시를 관찰하고 있어. 과학과 문명을 통해 인간이 더 자유로워지고 그 자유의 확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살피고 있는지도 모르지. 일부 학자들로부터 동성애자가 아니었을까 의심받는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이 작품에 그의 비밀들을 숨겨 놓은 게 아닌지 궁금하구나. 왼쪽엔 남녀 한 쌍이 얘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어. 자연스러운 파리의 일상이지. 특이한 건 꼬리를 올린 개 한 마리가 화면 속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거야. 개는 전통적으로 충성심을 의미하지만 꼬리를 세운 개는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카유보트는 부유하고 명망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인 중산모를 쓴 상류층 남자와 동성애자로서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을 꿈꾸고 있는 자신을 대비시켜 놓았는지도 몰라. 파리라는 거대 도시에 숨어서 그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위에 자신의 외면과 내면을 한 화면에 담은 이면 자화상을 그린 거지. 화려한 파리가 그의 캠프였을까? 물론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화면 안 은유를 유추할 뿐이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다.


구스타브 카유보트 <마루 긁는 사람, 1875>


그의 그림 <마루 긁는 사람, 1875>을 봐. 그림엔 대부분 건장한 남자들이 등장해. 등과 팔뚝의 근육은 마치 고대 조각의 일부 같지. 설마 파리의 노동자가 진짜 저런 몸을 가졌다고 보이진 않아. 그가 전통적인 회화를 공부했다는 것이 힌트가 될까? 느루야, 그는 일하는 남자의 몸을 자신의 붓으로 깎았던 것 같아. 그래서 노동에는 일말의 비루함도 느껴지지 않지. 긴 발코니 창에서 그들의 등과 마룻바닥에 드는 오후의 나른한 빛을 봐. 어떤 이념이나 도덕적 메시지 없이 오롯이 노동 그 자체를 보여줘. 오른쪽 앞면의 와인과 유리잔은 이들에게 구스타브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 1849>과는 다른 이미지를 부여하지. 쿠르베의 노동자들은 선명하고 붉은 좌파의 냄새가 나거든. 쿠르베는 노동자들에게 찌그러진 냄비에 한 컵의 수프를 끓여주었지.


카유보트는 1875년 살롱전에 이 작품을 출품하지만 저속하고 조잡하다는 공격을 받았단다. 당시 완고하고 미적 안목이 부박(浮薄)해진 프랑스 화단은 노동자의 "노"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쳤을 거야. 사회 곳곳에서 부의 편중과 불평등한 권리에 거친 항의가 잇달았을 때였거든. 살롱전을 주최하는 미술권력은 기존의 가치와 사회가 추구하는 미(美)를 지키려 했지. 카유보트는 자신의 예술을 담을 그릇을 인상파에서 찾았어. 그들의 전위적이고 다양한 실험에 매료되었지. 르느와르, 피사로, 드가 등과 어울리게 돼. 그리고 그들을 경제적으로 후원해주었단다. 느루야, 그는 지식이나 품위, 교양만이 아니라 이해심, 연민 등을 마음속에 가꿀 줄 알았구나.


그는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와는 다르게 금수저에 엄친아였어.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고 판사이자 사업을 운영했던 아버지로 인해 부유하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학을 공부한 그는 1868년 법학 학위를 받고 1870년 변호사가 되었어. 이런 걸 너네들 말로 세상 혼자 산다고 하지 않니? 하지만 마침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으로 인해 군에 입대하게 돼. 변호사 경력이 짧은 건 이 때문이야. 전쟁 후 그는 방향을 바꿔 화가 레온 보나와 그림 공부를 함께 했고, 1873년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기도 했어.


그가 그림을 배울 당시 파리는 나폴레옹 3세가 오스망 남작과 일으킨 도시계획이 진행 중이었어. 쭉 뻗은 대로와 방사형 거리, 공공 공원과 상하수도 시설을 정비했지. 반듯한 도로와 화려한 상점에 어울리는 옷차림과 액세서리가 등장했어. 근처 나들이 가는 행렬도 새롭고 엄청난 변화 중 하나였지. 햇빛 아래 빛나지 않은 것이 없었구나. 벨 에포크 시대의 핵인 파리와 파리지엥이 탄생했어. 카유보트는 파편화된 개인이 숨고 성장하고 취하는 파리라는 도시에 온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화가였어.


구스타브 카유보트 <예르 강 비의 효과, 1875>


그가 도시의 순간만을 그렸던 건 아니야. 엄마가 좋아하는 이 <에르 강 비의 효과, 1875>는 그가 20여 년을 살았던 마을 근처의 강을 그린 작품이야. 비가 내리니 해는 빳빳이 굳었을 거야. 그런데도 강물이 반짝이는구나.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로 물 표면에 크고 작은 동그라미가 나타났다 사라져. 마치 징검다리 같아. 숲은 자신이 얼마나 깊은 색을 토해내는지 다투듯 나무에도 강물에도 초록을 뱉었네. 비의 무게가 힘겨운 잎들은 온 힘을 다해 버팅기고 건너편 배 한 척이 강기슭에 엎드려 있어. 느루가 익명의 도시에서 얻는 자유로움만큼 엄만 강과 숲에서 치유를 구했지.


영~ 비가 그치질 않네.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사지 않는다면 비는 피할 길이 없을 것 같아. 오늘은 오래전 그날처럼 비를 맞아볼까? 그리고 맨발로 첨벙대 볼까? 잠들어있던 마음속 들고양이들이 발톱을 세우며 튀어나올지도 몰라. 여하튼 끈 떨어진 종이백을 가슴에 안고 거리로 나왔어. 머리 위에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져. 이 그림처럼 엄마 머리에도 동그란 무늬가 생기면 좋겠어. 징검다리 같은 초록 동그라미.


요즘 사색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느루에게 그날의 얘기를 해줄까? 장대비 속에서 치마를 걷고 춤을 추었던 우리들은 각자 선택을 했어. 독신주의자였던 누구는 여러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거쳐 시집을 갔고, 사회를 개혁하려던 누구는 시험에 떨어지고 거듭 떨어져 미련 없다며 미국으로 떠났고, 다리 좀 떨고 침 좀 뱉었던 누구는 팔자에 없는 학교 선생님이 되기도 했어.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때론 부족한 때론 풍족한 삶이었지. 우린 각자 쏟아지던 장대비가 가슴에 남긴 징검다리를 딛고 "너머 그 너머"로 뛰어갔어. 그동안 무수한 눈물이 빗물에 스며들었지.


닥터 지바고의 이 대사를 네가 읽고 나면 엄마가 집에 딱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겠는걸.

"당신이 슬픔이나 회한 같은 걸 하나도 지니지 않은 여자였다면, 나는 이토록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거요. 나는 한 번도 발을 헛딛지도 낙오하지도 오류를 범하지도 않는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오. 그런 사람의 미덕이란 생명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니까... 그런 사람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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