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58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1)
"엄마~ 이제 다이어트 끝낼 거예요. 일주일에 1킬로씩 꼬박꼬박 찔 거예요."
느루야, 누가 오빠가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저렇게 말하는데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누가한테 "엄만 하루에 1킬로씩 찌는 것도 가능한데..."라고 말하고 싶었다만 얼굴이 팥죽색이 된 걸 보고 꾸욱 참았구나. 도대체 뭔 일이라니! 근무지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중요한 시험을 본다는 얘가 시험공부보다 저녁은 안 먹겠다느니, 15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느니 하며 다이어트를 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어. 바람이 들었나?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연수를 하다 보니 인터넷 상에서 자연스레 스터디 그룹이 만들어졌었나 봐. 한 번도 대면하거나 개인적인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펄펄 끓는 이십 대 남녀가 모이다 보니 마음이 설레지 않았겠니? 동기라는 연대감, 상대에 대한 궁금증, 나를 어떻게 보여줄까 하는 긴장감도 있었겠지. 무엇보다도 그동안 공부하느라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지낸 외로운 시간에 대한 공감대가 있을 거라는 기대도 했을 거야.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품임에도 시험 끝나면 "같이 점심이라도 하고 가실래요?" 하며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싶었던 것 같아.
시험을 치른다는 매몰찬 형식이었지만 그래도 '첫 만남'이라는 단어에 홀린 오빠는 멋진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지. 아마도 이 <뱃놀이에서의 점심, 1880~81> 같은 낭만적인 상상을 했었나 봐. 세상의 아름다움만 보고 그리려고 했던 오귀스트 르느와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처럼 말이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오빠에게 이 그림에 보이는 걸 모두 말해보라고 하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마음의 빗장을 여는 와인, 외로웠던 시간들을 위로하는 대화, 찰나의 기쁨을 담은 유리잔, 낭만이 밀고 당기는 눈길, 바람에 실려오는 여인의 향기, 그늘을 모르는 빛, 언젠가 지나가리라는 걸 알지만 지금은 이 배에 올라탄 젊음이 보인다고 말이야.
내심 취준생이 아닌, 당당한 사회의 일원인 취업자로서 멋진 첫 만남을 준비했던 오빠의 기대가 이 작품처럼 되진 않았나 보더라. 몸에는 최소한의 영양을, 머리엔 최대한의 지력(知力)을 담아 시험을 보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고생하셨어요. 같이 점심할래요?"라든가,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시죠."라고 말하지 않더래. 다들 시험이 끝나자마자 고양이에 쫓기는 생쥐처럼 잽싸게 가방을 챙겨 뛰쳐나가더라는 거야. 맨 끝자리여서 동기들 뒤통수만 실컷 보고 왔다는구나. 하나의 경쟁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경쟁에 내몰리는 경쟁의 허들을 본 기분이었다나? 게다가 이 화창한 날에 혼자 점심 먹으려니 넘 궁상스러워 점심을 굶고 터덜터덜 왔다는구나! 쯧쯔...
일주일에 1킬로씩 꼬박꼬박 찌기 위해서 오빠는 좀 전 치맥을 하고 잠들었어. 방문을 닫는 소리가 쓸쓸했단다. 느루도 요즘, 멍 때리고 있는 매일매일이 찬란한 슬픔이라고 했지? 꽃비 내리는 공원에 서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고 했지.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의 가장자리에 자신의 작고 초라한 모습을 뉘일 고급스러운 돗자리를 주문했다고, 그 돗자리에 앉아 엄마랑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했지.
그래, 술 좋아하는 엄마랑 밖에 나가자꾸나. 햇살 포근한 오후에 캔맥주랑 아몬드를 바구니에 담고서 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자. 행실이 반듯하고 규범을 잘 지키는 우수한 시민은 못되어도 술과 위로에 고픈 딸의 친구는 되어줄 수 있지. 벚나무 아래서 이 흥겨운 그림을 볼까?
혀에 닿는 박하사탕마냥 눈길 닿는 곳마다 "화아~"한 젊음의 열기가 피어나지 않니? 그림 왼편을 봐. 춤추는 남녀를 둘러싼 바닥엔 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빛이 조각난 사금파리처럼 빛나고 있어. 마치 행복에 감전되듯, 여인의 발그레한 얼굴엔 빛이 넘치는구나. 그것뿐만이 아니야. 훌륭한 화가는 색 위에 소리를 얹을 줄 알지. 리듬을 타고 드레스 자락이 스치는 소리, 등을 보인 신사의 재치 있는 유머, 그 유머에 화답하는 여인의 수줍은 웃음소리가 화면을 달뜨게 하고 있어. 바늘에는 실이 가듯 선량한 유혹엔 설렘이 따라가지.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는 인상주의적 특징이 드러나는 르느와르의 대표작이야. 제3회 인상주의 전 출품작이기도 했어. 이 작품은 빛이 어떻게 부서지고 어우러져 반짝이는지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지. 당시 이곳은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서민들의 무도회장이었대. 르느와르는 이곳의 활기찬 정경과 분위기를 나타내려고 근처에 아틀리에를 얻고는 매일 캔버스를 무도회장까지 가져가 그렸다는구나. 그는 일요일, 파리의 신사와 숙녀들이 일상의 지루함을 내려놓고 찰나의 기쁨과 환희에 취하는 모습을 기록했어. 그리곤 이렇게 말했지.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아름다워야 하네. 세상에는 이미 골치 아픈 일이 너무도 많은데 우리가 또 다른 골칫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느루야,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시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일을 할까, 제대로 살고 있을까' 하는 정답 없는 질문들은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가 버릴 것 같지 않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이 화사한 봄날을 맘껏 즐기라고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니? 자연은 신의 언어니까. 꽃이 지천인 지금, 신이 아름다움을 빚는 능력을 이 순간에 몰빵한 듯 온 천지가 화사하잖아. 마치 다리 길고 얼굴은 CD만 한데 보조개까지 들어가는 연예인처럼, 봄날의 자연이란 온갖 색(色)과 형(形)과 향(香)의 향연에 천지가 자지러지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느루야, 지금 병원에서 오고 있는 중이지? 자꾸 뭔가 되려거나, 하려는 마음으로 몸을 들볶으니까 피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거야. 이런저런 고민 내려놓고 땀을 내거나 웃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음~ 춤을 추는 건 어떨까? <부지발의 춤, 1883 >처럼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춤이야말로 땀도 나고 웃음도 나는 최고의 일인 듯 싶은데.
르느와르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답사하고 난 뒤, 가장 매력적인 유물을 건졌어. 그건 "삶의 기쁨"이었지. 다른 인상파 화가가 빛을 쫓아 자연으로 뛰쳐나갔다면 르느와르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삶의 기쁨에 넘친 인물을 그렸어. 그리고 복숭아빛 드레스와 차양 있는 붉은 모자, 미소를 머금고 있는 보드라운 입술로 관람자를 유혹했구나. 세 잔쯤 와인을 마시고 타는 입술을 쥐어짜 "춤추실래요?"라는 말을 건넷을 사내의 목에 그녀가 왼손을 두르는 순간, 이 세상은 바로 천국이 되지 않았겠니? 르느와르는 바로 그 일상의 부활절을 그렸단다.
그는 몸의 실루엣을 돋보이게 하는 주름진 드레스와 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모자를 캔버스에 씌우며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어. 의미 없는 것들의 아름다움, 그는 그 의미 없음에 주목했지. 고대 로마의 프레스코 벽화처럼 파리의 노동자들이 일상의 먼지를 털고 주어진 생을 즐기기를 바랐어. 르느와르는 역사화나 종교화가 쓰고 있었던 회화의 왕관을 벗겨 낮은 자리에 엎드려 있던 풍속화에 넘겨줬어. 그리고는 불세출의 영웅보다 19세기 시민의 위대함을 노래했어. 시저보다 나폴레옹보다 기계를 닦고 서류를 만지는 근대의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야.
만일 누가가 시험을 마친 후, 동기 중 누군가와 함께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면 어땠을까? 취업을 준비하며 너무 짧거나 혹은 길었던 실력을 털어놓고, 실패를 피해 조심조심 내디뎠던 발자국을 내비치고, 달콤하고 고소한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말로 의기투합했다면 어땠을까? 그 시험장에 있던 모든 동기들이 한마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런 축제가 벌어지지 않았을까? 르느와르의 <시골 무도회, 1883>와 <도시 무도회, 1883>처럼 말이야. 오빤 이 남자 모델 폴 로트처럼 능숙하게 리드하진 못하겠지만 자신의 품에 있는 하나의 우주를 조심스레 다루었을 거야. 느루가 춤을 춘다면 시골 무도회의 아가씨처럼 건강하고 화사한 웃음을 보여주었을 것 같아. 느루는 격식을 따지는 걸 고루하다고 생각하니까. 모자가 떨어졌는데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황홀한 무도회에서 설레는 밤을 보냈을 거야. 수잔 발라동이 모델을 한 도시 무도회의 아가씨는 정말 깍쟁이 같은 자세야.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기품이 흐르네.
어떤 모습이던지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축제, 너 나할 것 없이 손을 잡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축제를 맞았을 거야. 다음 시험을 준비하러 뛰지 않아도 되고, 옆에 앉은 동기가 내 경쟁자가 아닌 벗이 되고,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동시대인으로서 응원과 격려를 받았던 하루가 되었을 거야. 엄마의 욕심인지 모르지만 이십 대의 너희들에겐 남녀가 존중과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하루가 필요해.
그래, 그래. 말 안 해도 알아. 누가의 순진함 못지않게 그건 환상이고 이상이라고 말하려는 거지? 엄마 머리엔 팩트체크가 필요하다고 말이야. 문제 하나에 서울로 발령 나느냐, 지방으로 발령 나느냐가 걸려있는데 축제와 파티는 먼 얘기라는 거지. 하지만 끊임없이 경쟁과 순위로 줄을 세우면 일등 외에는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개성을 찾을 수 없게 돼. 목련도 장미도 철쭉도 국화도 다 아름답잖아.
엄만 너희들이 제도를 바꾸지 않고 체제에 순응하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엄마가 이십 대 때는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에 힘이 실렸어. 어려운 환경에서 사회구조의 꼭대기로 올라간 큰 사람이 나왔다는 뜻이었고 그럴 수 있다는 의미였지. 약간의 비아냥을 섞어 "미꾸라지 용 됐다"는 말도 오갔지. 함께 뒹굴던 낮은 처지에서 우러러보는 높은 자리에 앉았다는 의미였어. 어떤 의미로 쓰였던 다수 위에 군림하는 극소수의 엘리트주의를 밑바닥에 깔고 있는 단어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개천의 주인공은 용이 아니라 미꾸라지야. 미꾸라지들이 힘을 합쳐 개천이라는 환경을 바꾸어야 해. 뛰어난 한 사람을 만들고 따를 것이 아니라 누구나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구조, 작더라도 내 힘으로 얻은 성취에 행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금은 영웅이 아닌 주체적이고 선한 개인이 필요해. 그리고 그건 혼자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연대만이 이룰 수 있단다.
이런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다만 르느와르의 환경도 바다가 아닌 개천이었어. 그는 1841년 재단사인 아버지와 재봉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 그는 4살 때 고향인 프랑스 리모주(Limoges)를 떠나 파리로 이사했구나. 어린 시절 뛰어난 목소리와 피아노 연주를 즐겨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아버진 아들이 리모주의 전통 예술인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되길 바라셨지. 그는 열세 살에 공방에서 도자기에 꽃이나 도안을 그리는 도안사가 되었어. 공방이 문을 닫자 부채나 발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는 이때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돼.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한 르느와르는 에꼴 데 보자르(파리 국립 미술학교)에 입학해 데생, 원근법 등 미술의 기술적인 기법들을 배워. 이때 앵그르의 제자였던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 1808~1874)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어. 이 화실에서 만난 벗들이 끌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야. 또 이들을 통해 까미유 피사로, 폴 세잔 등과 교류하게 되었고 빛의 순간을 그리려는 인상주의를 지향하게 되지.
인상주의 화풍이 강렬한 <그네, 1876>를 봐. 햇빛을 가리던 나뭇잎들이 바닥에 내려앉아 빛과 그늘이 동글동글 구르고 있어. 별사탕 같아.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서 보여주었던 빛의 물결이 이곳에서도 파도치네. 캔버스 가득한 빛을 붓으로 툭툭 쳐내어 여인의 긴 드레스를 그린 뒤, 수줍은 마음은 끊어질 듯 가는 그네 위에 올려놓았구나. 그녀 앞 모자를 쓴 남자가 던진 말은 빛의 파도에 휩쓸려 그녀 가슴으로 피신했겠지? 나무둥치와 잎사귀는 남자의 벌렁거리는 심장 대신 떨고 있어. 나무에 기대 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아마도 숲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아. 부러움에 얼이 나간 얼굴이거든.
르느와르가 남과 비교하거나 다투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갖게 한 힘은 친구였던 모네를 비롯한 친구들의 격려와 친구 바지유의 재정적 도움이었어. 부유했던 바지유는 르느와르에게 화실을 빌려 주며 함께 그림을 그렸고, 모네를 비롯한 친구들은 서로가 꿈을 접지 않도록 기운을 북돋았지. <콩다민 가에 있는 바지유의 아틀리에, 1870> 그림 가운데 이젤 앞에서 팔레트를 들고 선 키 큰 남자가 프레드릭 바지유야. 지팡이를 들고 모자를 쓴 남자는 마네, 계단 위에 서 있는 남자가 르느와르란다. 그는 마침내 화가가 되었어. 역사화나 종교화가 아닌 일상의 행복을 그리는 화가, 활기차고 건강한 생명력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지. 다음번엔 르느와르가 생기를 불어넣은 여인들을 소개해 줄게.
도로가 밀리나 보구나. 시간이 꽤 걸리네. 누가는 자고 있고 느루는 오지 않아 엄마는 잠시 산책하러 나왔어.
"아줌마, 꽃 줘?"
가로수 화단에 꽃을 심는 모습을 보고 있던 엄마는 난데없는 굵은 쇳소리에 깜짝 놀랐어. 모자를 깊이 눌러쓴 아저씨들이 겨울 내 비어서 썰렁했던 가로수 둥근 화단에 작은 꽃 화분을 설치하고 있더라고. 신기해 그 모습을 구경하던 중이었거든.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거지?
"아줌마~ 꽃 줘?"
에구머니나! 인도 쪽으로 바짝 붙여 정차하고 있던 트럭 운전석에서 나는 소리였구나. 운전대를 잡고는 사이드미러로 엄마를 보며 하는 소리였네.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요."
막걸리처럼 텁텁해 보이는 초로(初老)의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내려오더니 손바닥만 한 고무 화분이 가득 실려있는 트럭 짐칸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어.
"몇 개 줄까? 골라 봐."
"하나만 주세요. 요거요."
"사람이 어째 그리 오종종해. 팍 골라. 내가 줄 수 있어."
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를 곱게 여겼을까? 꽃을 선물할 줄 아는 그 아저씨 덕분에 이름도 모르는 노란, 빨간, 분홍, 연보라, 흰색 꽃이 핀 화분을 일곱 개나 들고 왔어. 편한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푹 눌러쓴 모자에 마스크까지 했으니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차림이었는데 낯 모르는 아줌마에게 보여준 선의가 왠지 신선했구나. 아가씨에게 꽃다발을 안기는 청년은 있어도, 아줌마에게 꽃 선물하는 아저씨는 거의 없으니까. 유치하게도 콧노래가 나올 만큼 신나네.
느루야, 엄마가 그리도 좋아하는 피천득님이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라는 첫 구절로 <장미>라는 수필을 썼어. 시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아픈 부인이 있는 Y에게 두 송이, C의 하숙방에서 시든 꽃을 안고 있는 화병에 두 송이, 애인을 만나러 가는 K에게 세 송이를 주고 빈 손으로 집에 도착해서는 빈 꽃병을 바라보며 미안해하시지.
피천득 시인처럼 몸이 아픈 네가 도착하면 노란 꽃과 연보라 꽃 화분을 줄게. 마음이 눅눅한 누가 오빠에겐 흰색과 빨간 꽃 화분을 나눠주자. 오늘 시험 본 오빠의 동기들에게도 쓸쓸하고 고단한 젊음을 응원하며 이 꽃을 한 아름 안겨주고 싶구나.
PS : 지난 주 글 올리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마음이 힘들었네요. 그래도 느린 걸음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거로운 것들은 내려 놓았습니다.
순서를 정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제 페이지에 두 개의 코너가 올라 올거예요. 하나는 지금처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로 느루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가 지루한 사람들을 위한 지적인 그림책>, 약칭 <역지사지 그림책> 코너예요. <역지사지 그림책>은 해당 주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그 사건에 대한 그림을 가지고 풀어서 설명하는 형식이예요. 가능한 그 시대 상황과 파생된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안내하려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사건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영향도요.상단 머릿글에 코너 이름을 먼저 올려 헷갈리지 않도록 할게요. 매거진으로도 만들어 놓겠습니다.
기다려주신 모든 샘들께 찬란한 봄날을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