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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마 Mar 31. 2023

임도를 걷는 즐거움

임도는 임산물을 나르거나 삼림의 관리를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산에 조성한 도로이다.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길이지만 사람들은 주로 산책로나 MTB 자전거 코스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대형산불이 잇따라 발생하여 진화인력과 장비가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임도의 중요성이 커졌다. 개인적으로 임도는 오르는 길이 아닌, 걷기에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걷는 것이 좋아지는 길이다.

     

유명한 산이 아니어도 햇살 좋은 날에 등산로는 항상 사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임도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임도는 원칙적으로 등산객을 위한 길이 아니라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다. 원래 차를 위해 만든 길이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한가하다. 내가 쉬고 싶은 곳에서 편한 자세로 마음껏 쉴 수 있다. 중간에 되돌아가도 상관없다. 운 좋게 평탄한 그늘을 발견하면 한숨 잘 수도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없고, 휴대용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도 없다. 자연과 길 속에 나 혼자 있는 기분이다.    

  

임도에서는 다양한 소리를 듣고 느낄 수 있다. 주변에 시끄러운 소리가 없으니 귀 기울이지 않아도 새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람이 산에 부딪혀 내는 다양한 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자연의 소리만 아니라 내 신발과 지면이 맞닿을 때 나는 소리도 있다. 작은 돌들을 밟을 때 나는 자박자박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소리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명상음악이 된다. 마치 내가 자연과 연결되는 느낌이다. 아침 저녁으로 끼고 다니는 무선 이어폰도 잠시 내려놓게 한다. 임도는 복잡한 마음을 풀어주는 신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임도에서는 다양한 길을 만날 수 있다. 먼지 날리는 흙길, 낙엽 쌓인 숲길, 자잘한 돌이 깔린 자갈길, 때론 시멘트로 포장한 콘크리트길. 어느 길이든 그 나름의 재미가 있고 소리가 있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길이기에 경사가 심하지 않다. 정신차리기 힘들 정도로 턱까지 차오르는 숨소리도 없다. 여유롭게 충분히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나만의 길을 즐길 수 있다. 흙길이어서 좋고, 숲길이어서 좋고, 자갈길이어서 좋다.      


청바지에 티만 입어도 상관없다. 뒷산에 마실 나온 기분으로 갈 수 있다. 가벼운 옷차림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다. 커다란 등산 가방도 필요 없고, 정장을 입었어도 운동화만 신었다면 가능하다. 봄이 오는 문턱이라면 출근하다 평소에 마음에만 품어왔던 임도로 발길을 갑자기 바꿀 만하다. 사람은 자연 속을 걸을 때 생각이 정리되고, 자연 속에서 만족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봄, 임도를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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