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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마 May 13. 2023

나를 더 명확하게 하는 너,
인권의 출발

  

나는 다른 이와의 구분(경계)을 통해 점점 명확해진다.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나의 주체성을 확보해 나간다. 다른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유일한 나, 나라는 존재의 주체성. 나를 비교하고 나와 다른 면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 나를 규정지을 수 없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제품은 고유성이 없다. 개개의 주체성을 부여할 수 없다. 1번부터 100번까지 모두가 똑같은데, 구분을 할 수 없는데, 거기에는 주체성이, 고유한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을 수 없다.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만 있을 뿐이다. 

고유의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과정을 통해 남다른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 객관화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면 모두가 내가 되는 상황이다. 자아를 위해서는 타자가 필요하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는 것과 같다.

나를 나 되게 하는 증거는 타자이다. 내가 나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나와 다른 타자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의 뜻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모여 사는 존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획득하기 위해서 타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줄 수 있는 타자가 있기 전에는 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으로는 완전한 존재를 구성할 수 없다. 타인과 구분되는 나를 만들 수 없다. 

구분한다는 것은 일정한 선(기준)에 의해 나누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 같지 않고 다르다는 구분이 많아질수록 거꾸로 나는 더 명확해진다. 전체가 하나인 스케치북에 수많은 선을 그리고 나서야 그림이 생기고 많은 선(구분)을 통해서 나와 타자가 분명해진다. 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구분과 분리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구분과 윤곽의 기준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타인이다. 타인에 의해 보증된 구분과 선이 있을 때 내가 비로소 분명해진다. 

남과 다른 주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비교 대상은 곧 객관성을 의미한다. 객관적인 비교 대상이 있어야 비로소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객관화에서 나오는 구분, 분리, 경계, 개체, 나눔 등은 실존(주체화)의 조건이다. 비교 대상인 타자들이 나의 존재를 보증하는 것이고, 수많은 나의 존재를 떠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스탕달은 말했다. 

타자가 내 존재의 근거이다. 타자가 있을 때 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타자를 환대하는 것이 내가 있을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타자를 환영하는 것이 나의 존재를 확실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무리 중에서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내가 있으려면 네가 필요하고, 너라는 존재는 내게 있어 필수적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너는 나만큼 중요한 존재이다. 이것이 인권의 출발점이다. 

과거에는 자아와 주체성, 자의식이 중요했다. 내가 생각하는 고로 존재하였고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자의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중심적이고, 자아실현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자의식의 자리를 감각에 의해 감지되는 타자가 차지했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자아가 되었다. 나의 발견에 이어 타자의 발견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 인권이 확장되었다. 

나는 타자로 더 강해진다. 내 존재의 강도는 타자가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더 강해진다. 타자가 나를 강하게 지탱하면 내 존재의 기반이 강해진다. 얼마 전 하버드 대학에서 장수하는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사회적, 경제적 배경, 교육, 유전 등 다양한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조사한 결과 장수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노년까지 자신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밀한 소수의 사람이 곁에 있다는 점이었다. 타자가 나를 안정적으로 받아주지 않으면 나의 존재 가치는 줄어든다. 나를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주는 타자가 있을 때 내 존재 가치와 의미도 증가한다. 타자가 나의 존재의 근원이 되는 셈이다. 

타자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러한 인권적 가치에 무시하는 가치관이 주류를 이루고 상식화되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수단이나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의해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기본권조차 보장받기 어려워졌다. 사람을 교환가치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교환가치가 떨어지는 이들은 인간으로서 인정받기도 어려워졌다. 그냥 박애나 시혜의 대상이 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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