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픈 시보다 아픈 시가 낫다

바나나똥을 누던 아들, 그리고 나...

by 남쪽열매

<범일동 단칸방-첫아들>

범일동 매립지에 있는 큰 단칸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남편은 범일동 남문시장에서 천 도매상점을 운영했다.


2년 동안 거의 날마다 돈다발이 수북수북 쌓였다. 둘 곳이 없어서 단칸방 한쪽에 커튼을 만들어 치고는 돈을 모았다가 은행에 입금하곤 했다.

큰돈을 벌었다.


그러는 중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 남편을 쏙 빼닮은 아들이었다. 사업에 열정적이던 남편덕에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는 그의 건강을 위해 늘 정성껏 밥상을 차렸다. 서서히 최전방에서의 군생활 5년의 묵은 때가 벗겨지고 건강한 몸이 되어갔다.


<좌천동 저택-첫아들의 돌잔치>

그때 모은 돈을 일부 찾아 좌천동에 130평 땅을 샀다. 남편은 집을 지었고 지프차도 한대 구입했다. 그 집에서 첫아들의 돌잔치를 했다. 시장 전체를 대접하는 큰 잔치였다. 모든 것이 푸짐했다.


남편은 늘 넉넉하게 베풀었다.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는 시장에서 잡은 백숙용 닭 한 상자를 사 왔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비위가 상해서 백숙을 한 그릇도 못 먹었다.

또, 아들이 걸어 다닐 무렵에는 아들이 밥은 잘 안 먹고 바나나는 잘 먹는 것을 보고는 그 당시 비싼 바나나를 한 상자 배달시켜 보냈다. 얼마나 실컷 먹었는지 나중엔 아이가 바나나똥을 눌 정도였다.


남편은 늘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뭐든 넉넉하게 먹어야 껄떡대지 않는다고 하셨어.(※'껄떡대다'의 의미는 먹고 싶어 남의 것을 넘보는 것이다)

고픈 시보다 아픈 시가 낫대. 실컷 못 먹으면 자꾸 더 먹고 싶어 남의 것을 넘보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법이라고 하셨지."

그때는 요즘같이 먹을 것이 많아 살찔까 봐 걱정인 시대와는 많이 달랐다. 전쟁 끝나고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아이와 어른들이 남이 먹는 것을 보며 입맛 다시는 일이 허다했다. 남편은 잔치할 때마다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다 불러 음식을 나누었다.(당시엔 거지도 많고 넝마주이도 많았다. 그들도 함께 불러 나눠먹었다.)


<좌천동 저택에서 둘째, 딸이 태어났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다. 그 집에서. 딸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했다.

결혼하고 시작한 사업이 너무나 잘 되었고,

남편과 똑같이 생긴 아들도 낳았다.

남편은 고향인 평양에서 살던 집을 추억하며

큰 집 지어 이사도 했다.

거기다 뽀얗고 건강한 예쁜 딸까지 낳자

모두들 나를 복덩이라고 칭찬했다.

나도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었다.


(출산 후 몸조리)

개인적으로는 힘든 시기도 있었다.

장손인 첫아들을 낳은 때나 둘째인 딸을 낳은 때나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시골에 계신 나의 어머니는 못 오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허약했던 바로 아래 동생을 돌보시느라...


남편은 어머니 대신 한 아주머니를 고용해 식재료를 대량으로 사다 날랐다.

음식을 잘해달라고 부탁하고는 바쁜 사업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는 내 입에 맞는 음식을 거의 할 줄 몰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무거나 잘 먹지는 않았다.

내 입에 맞지 않는 것은 잘 안 먹어서 어머니는 내 입맛이 까탈스럽다고 했다. 다른 반찬은 안 먹고 새우젓과 밥만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미역국 하나라도 살뜰히 내 입에 맞게 요리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하루는 큰집에서 둘째 낳고 몸조리하며, 마루에 나와 놀고 있는 아들을 쳐다보는데, 한참을 눈앞이 깜깜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는데 얼마 지나자 회복이 되었고 나는 그 일을 잊고 지냈다. 너무 안 먹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나중에 둘째가 학교 들어간 후, 자주 넘어져서 스타킹에 구멍이 난 채 들어오곤 했다. 알아보니 교실에서 밖으로 나갈 때 갑자기 눈이 부셔, 교실 앞 정화조 손잡이에 걸려 넘어졌던 것이다. 그때 생각났다. '몸조리할 때 내가 잘 먹지 못해 그런가?!' 자책이 들었고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이 일 때문일까? 나중에 하나뿐인 올케와 막내 여동생이 아이를 낳았을 때, 최소 20일 이상 매일 소고기미역국을 정성껏 진하게 끓여서 갖다 주었다.




※이 글은 어머니의 기억을 기반으로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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