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히다..

결혼 후 닥친 첫 번째 시련

by 남쪽열매

둘째가 4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보수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큰집에서 5년밖에 살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교회 장로와의 동업>

딸이 두 살 때, 남편은 그 당시에 다니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 소개로 그 교회 장로와 새로운 사업으로 동업을 시작했다.


재주 많은 남편은 스스로 넥타이 디자인을 고안했다. 그리고 디자인에 알맞은 실을 공장에 주어 천을 주문했다.

그 천을 남편이 자기 돈을 주고받아온 후

우리 공장에서 넥타이를 직접 생산했다.


장로는 남편이 생산한 넥타이 완제품을 그들 소유의 국제시장 점포에서 판매했다.


수입은 모두 그들의 손을 거쳤고 남편은 선 지출만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교회 장로이고 목사님이 소개한 사람이라고 너무 믿었던 순진한 처사였다.


남편은 가족과 평양에서 신앙생활할 때 보고 체험했던 장로님들은, 신뢰할 만한 분들이었기에 의심 없이 믿었다고 했다.

게다가 목사님이 보증해 주신 셈이니...


그런데 그 장로 부부는 이중장부를 통해 남편을 속이고, 수익금을 자신의 이전 사업에서 진 빚을 갚는데 다 썼다.


혼자 2년 동안 사업하며 벌었던 그 많은 돈을 그들과의 동업 2년 만에 그들에게 다 떼이고 말았던 것이다.


<벌건 연탄집게의 위협>

남편이 의심이 들어 장부 대조를 시도하자,

장로 부인은 나의 남편에게 무서운 협박을 했다.

목숨의 위험을 느낄 정도의 위협을 가했다.

연탄불에 벌겋게 달군 연탄 집개를 들이대며 소리쳤다.

"장부를 대조하자고 하면 이 벌겋게 달군 연탄 집개로 당신 입을 지질 거야! "

"그 돈으로 우리 빚을 다 갚아서 한 푼도 없어!"

라며 악을 썼다고 했다!


그들에게서 돌아와 나에게 그 말을 전하는 남편의 얼굴은 놀라고 억울해서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 후 그 부부는 어디론가 도망쳐버렸다.


<산속 텐트와 군밤장사>

기가 찬 남편이 그 부부의 행방을 수소문해 찾아가 보니, 장로는 충청도 서천 산속에서 텐트 치고 초라하게 숨어 살고 있었다.

그는 제발 고발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며 빌더라고 했다.

그렇게 무섭게 우악을 떨던 부인은 서울 산동네에서 살며 군밤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밤도 잘 못 까는 성치 않은 거지꼴이었다.

그녀도 그저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고발당해서 감옥살이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믿음을 실천하는 내 남편)

선량한 모태신앙인인 남편은 그녀가 오히려 불쌍해서 쌀 한 가마니를 사서 넣어주며

용기 내서 살라고 했고, 고발도 하지 않을 거라 안심시키고 돌아왔다고 했다.


남편은 애초에 고발할 마음도 없었다.

나는 성경 말씀에 있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생각났고, 그 말씀을 실천하고 온 남편이 훌륭해 보였다. 그래서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예언된 불행- 두 번의 꿈)

사실 남편이 그 사업을 시작하려고 만남을 가지기 전날 나는 꿈을 꾸었다. 세 사람이 모여 뭔가 의논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여자로 보였다.

내가 꿈을 꿀 때 여자가 보이면 좋지 않은 신호였다. 이유는 모르는데 늘 그랬다.


그리고 1년 반쯤 지난 뒤 사업은 잘 되고 있는데, 웬일인지 나는 또 좋지 않은 꿈을 꾸었다.

남편의 안경이 실타래에 엉겨 다락방에 놓여 있었다. 내가 풀려고 애를 썼는데 도저히 풀 수가 없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결산을 하는데, 수익금은 장로가 다 빼내고 없고 남편에게는 빈 통장만 남아있었다!

집을 제외한 전 재산 2700만 원을 다 날린 것이다.


그 당시 남편은 내 꿈 이야기를 진지하게 생각지 않았다. 파산한 사실을 알고 협박을 받고 온 날, 빈 가방과 장부를 방바닥에 툭 떨어뜨리며 눕더니 남편은 말했다. "천정이 빙빙 돌아..."라고.

그렇게 씩씩하고 부지런하던 남편의 그런 힘없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제대하고 곧바로 나와 결혼한 후 사업하느라 쉴 새 없이 일했다. 또, 하나님이 주신 아들과 딸을 낳고, 새집도 짓고 알뜰하게 가정을 꾸리며 재미있게 잘 살고 있었는데, 그렇게 믿던 사람이 사기꾼이 되어 물질적인 큰 시련을 맞이한 것이다.





※이 글은 어머니의 기억을 기반으로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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