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정의 생계를 품었던 9년의 프롤로그
< 돌아보니, 가장 풍성했던 은혜의 시절 >
보수동 2층 양옥 새집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바쁘면서도 풍성했던 시기였다. 물질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또 사회 활동 면에서도 많은 은혜를 누렸던 시간이었다.
그 시절 우리 집을 거쳐 간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막중한 책임이 뒤따랐다.
내 형제자매들이 부산에 터를 잡을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며, 우리 부부가 무려 다섯 가정, 약 30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 집 담장 안에는 수많은 사연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 외에도 첫아들을 낳았을 때부터 남편이 데려온 15살 고향소녀를 비롯해 집안일을 배우며 일을 하던 소녀들이 대략 13명쯤 있었다. 또, 교회 목사님이 부탁해서 먹이고 재우며 돌봐주었던 청년들도 있었다. 잠시 머물다 간 이들도 있었지만, 고향에서 온 소녀들 대부분은 몇 년씩 함께 지내다 결혼하여 떠나곤 했다.
첫아들 낳은 뒤, 남편은 우리 아이가 할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많이 안타까워했다. 평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나오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내 고향에 가서 참하고 성실한 소녀 한 명을 데려왔다. 충분하진 않았지만 할머니 대신 데려왔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나에게 코끝으로 '찡!'하고 전해왔다.
나는 그 소녀에게 아이만 잘 돌보면 된다고 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 했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고향집으로 월급도 보내주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며 고향에서 딸을 둔 부모들이 서로 자기 딸을 우리 집에 보내고 싶어 했다고 한다. 돈도 벌고, 건강도 좋아지고, 예뻐지기도 하고, 살림도 배우고, 결국 결혼까지도 잘하니 동네에 좋은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 신앙을 삶의 중심에 >
이렇게 식구가 늘어가면서, 매 주일마다 모두 함께 교회에 나가니 교회에서는 우리 가족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주일이면 온 가족이 단정하게 차려입고, 걸어서 교회로 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남편은 양복을, 나는 주로 한복을 곱게 입고 갔다. 다른 가족들도 가진 옷 중에 제일 좋은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예배 후에는 교회 문 앞에서 우리 식구들이 서로 얼굴을 보고 인사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후, 분가 한 형제는 각자 집으로, 나머지는 같이 우리 집으로 삼삼오오 얘기하며 돌아왔다. 삶은 바빴지만 참 풍성했다! 믿음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이라 믿었기에 힘든 줄도 몰랐다.
남편의 사업도 번창했고,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 안에서 우리 가정의 역할도 점점 커져갔다.
매년 여름마다 사경회 집회가 있었다.
처음엔 부산 금정산에서, 나중엔 교인 수가 너무 많아져 목사님 고향인 경남 거창에서 큰 규모로 열렸다. 모두 텐트를 치고 4박 5일을 숙식하며 은혜를 받았다.
우리 식구들은 교회사역에 큰 도움이 되는 일꾼들이었다. 그때도 일 잘하는 건장한 장정들과 가사에 능한 내 여형제들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큰 도움이 되는 일꾼들이었다.
텐트와 취사도구는 미리 트럭으로 보내어 선발대가 설치했다. 집회 당일 날에는 새벽부터 교회 앞 도로에 늘어선 수십 대의 버스에 성경책과 필기도구, 옷, 이불 등을 싣고, 노인과 아이들은 좌석에, 젊은이들은 버스 복도에 놓인 이불 짐 위에도 앉았다.
포장된 도로를 지나면 비포장도로가 길었다. 더운 여름 에어컨 없는 버스의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뿌연 먼지에, 모두 머리카락이 하얘지기도 했다.
버스 3대로 시작한 집회가 나중엔 100대가 넘었으니! 대단한 집회 행렬이었다.
아이들까지 모두 참석한 4박 5일의 여름 집회는 우리 가족에게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였다. 아이들은 예배 시간이 끝나면 아버지 손을 잡고 산과 강, 언덕과 논밭 사이를 뛰어다녔다. 풀벌레들, 작은 물고기와 소금쟁이들, 청개구리와 두꺼비, 벼 이삭들을 보며 살아있는 자연을 느끼고, 도시에선 상상할 수 없는 냇가에서의 목욕과 수영도 해보았다.
여자들은 준비한 식사시간이 끝나고, 설거지 등 뒤처리를 마치면, 여럿이 어울려 냇가로 갔다. 서로 담소를 나누며 빨래를 해 오거나, 구석진 곳에 가서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시원하게 씻고 오기도 했다. 매끈매끈한 피부가 기분 좋게 개운했다.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 아이들의 성장 >
그렇게 그 시절의 우리 식구들은 바쁘고 풍성하며 행복했다. 집집마다 아이들도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랐다.
우리 삼 남매는 사촌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주일학교에 다녔다.
내가 나눠 준 헌금도 정직하게 잘 드리고, 성경 요절도 매주 외워갔다.
학교에도 늘 개근하며 성실했고 공부도 잘했으며 리더십도 있어서 수년간 학급 임원으로 활동했다. 나도 덩달아 학부모 임원 활동을 수년간 열심히 즐겁게 했다.
※이 글은 어머니의 기억을 기반으로 기록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