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째 낳았을 때
이 글은 2018년 9월 10일에 쓴 글이다. 첫째를 낳은 지 100일 조금 안 된 시점.
얼마 전 둘째를 낳고 나니 첫 해를 낳았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찾아봤다.
첫째와 둘째를 낳는 느낌은 비슷한 듯 많이 다르다.
지금은 출산 당일 이야기를 편하게 웃으면서 할 수 있지만 처음으로 겪는 일이다 보니 준비한다고 했으면서도 허둥지둥 그러다 떨어지는 공감 능력과 상황 판단으로 큰 사고를 칠 뻔합니다...
아빠가 본 출산 후기
- 평생 한 소리들을 뻔한 남편 이야기
저희는 산부인과가 집과 조금 거리가 있어서 출산 예정일 3일 정도를 남기고 아내 친정집에 가 있었어요.
그전 주에 의사 선생님께 조만간 나올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은 상태였고요. 때는 6월 12일 밤 와이프가 밤새 진통이 오는 것 같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병원을 가자고 합니다.
6월 13일 아침 8시 반경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병원에 갔는데.... 여러 출산 후기에서 자주 보았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자궁이 전혀 안 열렸어요”
“오늘은 안 나올 것 같으니 집에 갔다 다시 오세요”
진통이 5분 주기이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는데 진통 측정하는 기계로 쟀을 때 90 이상이 되는 진통만 체크해서 5분 주기라고...
아내는 이렇게 아픈데 부족한가 하는 느낌 과한 편으로는 약간 쑥스러워하는 내색을 띠며 다시 아내 친정집으로 왔어요. 병원에서 아직 멀었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편했는지 밤새 잠을 못 잔 저희 둘은 좀 쉬었어야 했는데 저는 아직 처가댁이 불편해서 그리고 아내는 몸이 힘들어서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많이 걸으면 아기가 빨리 내려온다는 말에 아내는 집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고 저는 옆에서 대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오후 3시경. 아직 오전하고 많이 다르지 않으니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어요. 집안에 너무 있으니 갑갑해 보이기도 해서요. 이때부터는 아내는 20~30 걸음 남짓 걷다 잠깐 쉬길 반복했어요. 그러면서도 출산하면 차가운 거 못 먹는다고... 나가서 빙수도 한 그릇 먹고 오고요.ㅎ
어찌 보면 이때 걸으면서 아내가 엄청 힘들어했는데 오전에 걱정하며 병원에 갔다가 들은 말들 때문인지 제 실수들이 시작되게 됩니다.
‘아직은, 오늘은 아닐 거야’
‘아직 진통이 덜 온 것 같은데....’
혹시나 출산 준비 중이신 예비 아빠들이 이 글을 보게 될까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아내가 힘들어하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병원에 가세요.
전 오전에 병원에 가서 아직 더 멀었는데 벌써 병원에 오셨냐는 듯한 말씀에 제가 괜히 민망함(?!) 비슷한 게 들어 다음에는 좀 더 버티다 가보자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제가 아닌 아내하고 의사 선생님이 판단할 문제인 것 같아요.
남편은 서포터 + 기사 + 수발드는 사람 등등..
그렇게 오후 5시가 넘어가면서 아내의 진통은 점점 심해졌어요. 진통 어플을 다운로드해 체크를 하는데 확실히 오전보다는 아파하지만 아직 불규칙한 진통 주기 그래도 때가 오는 듯한 느낌에 힘들어하는 아내 손 부여잡고 장모님이 해주신 밥을 국에 말아 몇 숟갈 입에 넣어주고....
그리고 다시 체크
이때도 계속되는 저의 실수. 주기가 왔다 갔다 해서 90 이상의 진통인지 확신이 안 들어 5분 미만 간격이라 병원에 가라는 문구가 나왔는데도 몇 번 더 체크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
그러다 저녁 8시경. 이렇게 아파하면 집보다는 병원에 있는 게 좋겠다 싶어 병원으로 출발. 병원에 도착하니
벌써 4cm 정도 열리셨어요. 조금 더 늦었으면 무통 주사 못 맞을 뻔하셨네요
전 이때를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게 아내는 무통을 꼭 맞겠다고 했거든요. 자연주의 출산 그런 것도 좋지만 우선은 산모가 편해야 한다는 생각이라 무통주사, 열상 주사 등 하고 싶은 건 다 추가하라고 했었는데 정작 주사를 못 맞을 뻔했다니... 거기다 미리 왔으면 조금 더 빨리 맞았을 텐데 아직 진 진통 아닐지도 모른다고 더 참으라고 한 게 많이 미안했어요.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마취 선생님이 10분 정도 후에 와 주셔서 무통주사를 맞고 나니 한결 편해진 아내.
그리고 혼나는 남편. 그리고 몸을 추스르고 힘을 내기 시작하는 아내
이때부터는 아내의 몫이라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옆에서 힘내라고 잘할 거라고 말해주는 것뿐이었어요.
그리고 첫 무통주사 효과가 떨어질 때쯤이 되니 아내 입에서는 다시 온갖 신음소리가 나오며 진짜 죽을 것 같다고, 어떻게든 그만 아프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다행히도, 자궁이 7cm 정도 열려서 무통 주사를 한 번 더 맞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는 진짜 출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간호사분들과 의사 선생님이 왔다 갔다 하시고 분만실로 기구들이 들어가고 전 TV 속 출산 장면처럼, 분만실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초조히 대기를 했어요.
6월 14일 00시 30분경.
분만실로 들어와서 산모를 도와달라고 말씀하시는 간호사의 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어요. 힘을 더 줘야 되니, 위에서 머리를 잡고 허리를 접도록 아래로 내려달라고 하시고 간호사 두 분이서는 다리를 위로 끌러 올리는데 아내는 온몸에 땀이 흐르며, 얼굴이 일그러지고, 남자인 저도 엄청 힘이 드는데 아기는 또 얼마나 힘들고, 아기 엄마는 얼마나 힘들지...
나중에 들었는데 아기도 골반에 머리가 끼어서 조금 힘들어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몇십 분이 지나 6월 14일 1시 2분
궁주 출생
한창 아내하고 같이 힘을 주고 있는데, 갑자기 의사 선생님이 산모 배 위에 뭔가를 턱!
보니까 꿈틀거리는 우리 아기
그리고 탯줄 자르라고 쥐어주시는데 감동보다는 세상에 정신이 하나도 없고 힘들어하던 아내 걱정이 조금 더 먼저 되면서 뭔가 안도도 되고, 정말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리고는 손가락 발가락 숫자 체크하고 눈, 코, 입, 똥꼬녕(ㅋ) 다 확인하고, 엄마 배 위에 살짝 올려놓으니 그때야 마음이 조금 풀렸어요. 아기 손톱 보고는 뾰족한 게 엄마 아빠한테 이쁨 받으려고 네일 받고 나왔냐고 농담도 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이가 조금 오래 끼어 있어서 쉬러 가는 게 좋겠다고 먼저 신생아 실로 들어갔는데 덕분에 아내하고 손 붙잡고, 안아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어요. 무통주사 덕분에 편한 게 낳은 것 같다는 아내가 말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어요. 운 좋게 아이가 2번째 무통 효과가 끝나기 한 5~10분 전쯤 나왔거든요.
서로 고생했다고 토닥 이기며 이야기하다가 아기 엄마는 쉬다가 후처치를 더 받고, 저는 분만실에 잠시 더 있다가 입원실로 내려왔어요.
샤워를 하고 잠시 쉬고 나서 아침이 됐어요.
저희가 갔던 산부인과는 캥거루 케어를 할 수 있는 곳인데, 아이가 나오자마자 신생아 실로 가서 캥거루 케어를 오래 못했거든요. 이른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주셔서 산모 하고 저하고 둘이 번갈아가면 캥거루 케어를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잊지 못할 시간이에요.
아내와 함께 출산한 그날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종종 하는 말이지만,
아기 낳는 건 여자의 고생! 출산 과정에서 남자의 고생은 거의 없으니, 괜히 군말 말고 마냥 잘해주는 게 좋다는 결론. 그러면서 우스갯소리인지 아내는 소위 "무통빨"이 잘 받아서, 솔직히 출산이 무슨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며, 이 정도 무통빨이면 둘째도 낳겠다고 하고 있어요
반대로 만일에 괜히 제가 더 참자고 하다가 무통주사 못 맞아서 아내가 고생했을 것과 전 평생을 석고대죄했을 걸 생각하며 지금도 가끔 등골이 오싹해져요. 그 이후에도 가끔 아내는 친구들과 출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내의 진통에 공감하지 못했던 저를 세상 못 된 남편으로 만들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