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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1

당신이 꿈꾸는 아빠의 모습은?

by 마용


"난 귀도처럼 아이를 키워야지!"


난 내가 희망하는 게 있을 때 머릿속에 한 장면을 그려놓고 그걸 계속 되새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그리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식이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내가 결혼을 어느 정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시점부터 머릿속에서 결혼식이란 것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신부의 드레스, 반지, 그리고 결혼식장, 신혼여행을 간 리조트의 풍경 등등... 그리고 그 이후는 어느 시점에 결혼이란 이미지를 다시 떠올리더라도 처음 머릿속에 떠올랐던 이미지가 꽤나 선명하게 떠올랐다. 신부 드레스에 달린 레이스 모양, 반지에 박힌 보석의 빛깔, 결혼식장의 좌석 배치나 조명의 은은함, 리조트에서 보이는 바닷가 풍경과 파도소리 등이 앞으로 겪을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일의 기억인 것처럼 말이다. (아마 내가 상상으로 그려낸 모습들은 아니고 그동안 본 영상이나 사진 중에 보기 좋았던 것들을 내 인생의 한 장면에 대입시킨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계속 그런 모습을 그리다 보면 상상과 100% 똑같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장면에 가깝게 내 결정을 이끌고 가는 것 경우가 자주 있었고, 나에겐 결혼과 아이를 만나는 과정이 그러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젊었을 때 미래의 내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면 늘 "인생이 아름다워"라는 영화 속 주인공인 귀도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인생은 아름다워"


나와 비슷한 나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영화 제목일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개봉한 명작이다. 한 남자가 가정을 꾸리고, 그 가정이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수용소 갇히게 되면서 생기는 일들을 이야기한 영화이다. 장르는 코미디지만 뭔가 웃음이 슬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영화다. 오래전 영화라 요즘에는 굳이 찾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지도 않을 영화지만, 너무나 유명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SNS 등에서 많이 돌아다니니 한 번쯤 찾아보면 좋겠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줄거리에 대해 더 길게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워낙 명작이라 안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으면 하는 마음과 내 짧은 필력으로는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이유에 나도 워낙 오래전에 봤기에 디테일한 장면들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는 핑계가 적당히 섞여있다.

다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감정은 꽤나 강렬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편인데, 한편으로는 그 순간의 느낌과 다짐을 종종 되새기면서 살아왔기 때문이지 싶다.


다운로드.jpeg 이 장면 짤이 유명하다



영화 속에서 아빠로서의 귀도는 잔혹한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게임이라고 속여 아이를 온전히 지켜내는 그런 사람이다. 위에 언급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도 독일군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찾아오는 순간을 숨바꼭질 놀이 중이라고 아이에게 말해 아이를 살리고 자신은 죽는 그런 장면이다. 그리고 귀도는 자신이 죽임을 당하러 끌려가는 순간에도 아이에게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남기는 그런 아빠이다.


수용소 속에서의 강인한 구도의 모습이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버려서일까. 내가 아빠가 됐을 때를 떠올리면 나도 그런 아빠가 돼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생겼던 것 같다. 내가 그린 상상 속에서 아빠가 된 나는 함께 많은 도전들을 재밌고 신나게 같이 해나가는 신나면서도 책임감이 물씬 묻어나는 표정과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영화 속에서처럼 슬픔이 묻어나지는 않았다. 최소한 목숨을 위협받는 세상을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고는 한동안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다. 치과에 간다던가 하는 왠지 공포스러운 일들이나, 어린이 집에 처음 등원하는 것처럼 낯섦이 스트레스를 주는 일들, 그리고 어떤 아이에게는 쉽지만 우리 아이는 어려워하는 잠을 자는 일이나 밥을 먹는 일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꼬시기보다는 놀이로 바꾸려고 노력해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논리보다는 놀이가 빠르고 그건 부모라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기에 내가 머릿속으로 귀도와 같은 아빠상을 꿈꿔왔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이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역시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은 내가 꿈꾸는 데로 되지는 않는다.

어느 영화든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육아 역시도...


내가 힘들어도 웃으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아이가 생각한 대로 웃어줄 거라는 건 영화 속 시나리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IMG_3584.jpg 거짓 울음...ㅋㅋ


영화 속에서 처럼 늘 아빠가 웃으면서 흥미를 유발하고 부드럽게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유도할 수 없다.

아침에 어린이 집 가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자기가 오늘 입고 싶은 핑크색 원피스가 없다고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하면 차분하게 방향 전환을 할 방법도 시간도 마땅치 않다. (분명 전날 저녁에 반바지에 초록색 티 입고 간다고 했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아이가 커가면서 인과를 가르치고 이유와 결과를 설명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

"딸기맛 약이 있는데, 분홍색은 하츄핑이 좋아하는 거니까 궁주도 한번 먹어봐~!! 분홍색 약도 먹고 콧물이 쏙 들어가면 몽실이가 좋아할걸~!!"

가 좋은 방법일 때도 있지만

"궁주는 지금 콧물이 나고 열이 많이 나. 몸이 많이 뜨거워지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 약을 먹자. 그리고 이렇게 감기에 걸리면 친구들한테 옮길 수도 있어서 어린이 집하고 놀이방에 갈 수 없어."

가 더 좋은 방법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재밌게 해 주려고 노력하고 늘 아이에게 통했던 방법이라도, 나도 모르게 어딘가 틀어진 아이의 기분을 다시 좋게 만드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무슨 이유로 기분이 나빠졌는지는 아마 떼를 쓰고 있는 아이 자신도 모를 거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갑자기 화제를 전환하면 아이의 기분도 갑자기 전환되는 경우가 있었다. 기억력이 좋아지고 집중력이 좋아진 아이에게는 그런 방법도 거의 통하지 않는다. (화 내고 울고 떼쓰는 것도 나름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이를 보면서 깨우치고 있다.)

아이가 행동과 언어가 발달하고 자기주장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이렇듯 내가 생각하는 아빠가 될 수 없는 순간이 점점 빈번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한동안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심호흡도 한 번씩 깊게 하며 귀도라면 아이를 어떤 식으로 이끌고 갔을까를 고민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슈퍼맨이 돼서 하늘을 날려고 하고 있지...?


Game-of-Thrones-Season-4-Making-Of-VFX.jpeg 영화 속에서는 용 키우기도 이리 쉽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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