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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Aug 24. 2021

내 글을 보면 누가 떠오를까...

글쓰기



 나는 2021년 8월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취미를 꼽으면 단연코 글쓰기다.

 브런치에 올라가 있는 내 글을 읽은 사람에게 이런 말은 한다면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고 겨우 이 정도라고...?"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 실력이기에 더 많은 시간이 든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군.


따로 하는 글쓰기 공부도 도움이 된다.


 글쓰기 자체도 꽤나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지만, 준비기간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할애된다. 이는 보잘것없는 나의 재능에 기인한다. 나에있어서 글쓰기의 재능이 없다는 것은 좋은 문장을  쓴다는 의미보다는 좋은 문장이 나올 확률이 낮다에 가깝다. 한창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를 호령할  같은 팀에 에릭 캐로스라는 1루수가 있었다. 홈런은 적당히 치지만 타율도 낮고 출루율도 낮은, 거기에 삼진도 많은 선수였다.  전형적인 공갈포인 데다 무엇보다 박찬호가 나오는 경기에서 제대로 쳐주는 경우가 없었기에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 당시에는 얼굴도 약간 뺀질거리게 생겼다고 느꼈다.)  글들이 그렇다. 간혹 마음에 드는 좋은 문장이 나오지만  뒤로 괜찮게 이어지지 않다 보니 좋은 글로 연결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공갈포에  싱글 홈런. 팀의 주역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난 매일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한 가지 주제를 생각하면 며칠에 걸쳐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한 후에 비로소 쓰기 시작한다. 굳이 길게 쓰고 싶은 생각도 없기에 짧게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끝내야지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한다. 하지만 그 짧은 몇 문장 쓰기가 쉽지 않다. 몇 글자 끄적거리지도 않아서 손이 멈춰진다. 머릿속에 할 말은 있는데 단어가 안 떠오른다거나, 문장이 이상하거나 해서 글이 더 이상 써지지가 않을 때가 있다. 가장 힘든 경우는 이렇다. 내가 어렸을 때 인천 주안은 장마가 심해지면 도로에 물이 넘치고 지하상가도 물이 흘러들어 가곤 했다. 그러면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인데 도저히 건너갈 방법이 없었다. 맨홀 감전 사고도 종종 있는 곳이라 굉장히 조심스러워지곤 했다. 내 글쓰기가 딱 그렇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열됐는데 문장과 문장 사이가 장마에 끊겨버린 길 마냥 어떻게 해도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다른 곳으로는 지나갈 수 있을까 싶어 지금까지 써온 문장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문장을 고치고 순서를 바꾼다. 그래도 도저히 안 될 때는 흙탕물 속으로 들어가 거센 물살을 헤치고 건너편으로 가는 방법뿐이다. 그냥 거기서 멈추는 방법도 있겠지만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 펼쳐놓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냥 멈출 수는 없다. 멈추면 찝찝한 뒷맛이 너무 오래 남는다. 하루만 쓰고 멈출게 아니니까... 어쨌든. 그 거센 물살을 지나 다음 문장까지 이어지는 그 길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쯤 되면 머릿속으로 해볼 건 다 해봤으니까, 이제 밖으로 눈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으로 사전을 켜서 끼워 놓으면 좋은 말한 단어를 찾아본다. 유의어 동의어 등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그리고 예문들 중에 건질만한 게 없는지 천천히 찾는다. 이쯤 되면 쓸 수 있는 단어의 폭이 좁다는 사실에 살짝 자괴감이 든다. 그래도 한동안 이 작업을 계속한다.

 

 그래도 안 되면 그때는 책을 읽는다. 사전을 찾듯 책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애쓴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고는 비슷한 형식의 책을 일부러 찾아 읽었다. 닮고 싶은 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많이 읽는다. 처음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달리기를 때문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 책의 호흡이 너무 좋았다. 간결한 문장, 적재적소에 들어간 사건이나 인물,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 등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아쉽게도 그 책의 내용은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나에게 달리기는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고통스러운 행위라 이런 책이라도 읽으면 달기기가 좋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나에겐 여전히 고통스럽다. 어쨌든 글의 주제도 음미하면 좋겠지만 글 쓰는 도중에 보는 책은 약간 커닝 페이퍼 같은 느낌이라 어떻게든 쓸만한 표현을 찾는 게 먼저다. 그러다가 책에 푹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잠시 그렇게 정신이 팔리더라도 곧 본연의 문장 찾기에 돌입한다. 그러다 적당한 문장이나 단어를 찾으면 여기저기를 깎아내 꾸역꾸역 내 글 안에 욱여넣는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다음 메인 페이지에 글이 하나 걸렸다. 감사합니다. 자극적인 제목 덕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나 부끄럽군요...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끝나면 글이 하나 완성이 된다. 누더기 같은 글이지만 어떤 날은 비교적 괜찮은 조각들이 괜찮게 이어진다. 그러면 조금 딱딱하고 거칠지만 무리 없이 끝까지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간혹 꽤 흐뭇하게 하는 글들도 있지만 역시나 타율로 따지만 1할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내 브런치에는 14개의 글이 있는데 이 중에 나름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은 2개. 많이 봐주면 3개다. 쥐어짜 내듯 쓴 글은 결과물도 그다지 좋지 않다.  부끄러운 글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5~6개가 넘는다. 그런 글을 며칠이 지난 후에 다시 읽게되면 글을 지우거나 감춰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특히나 어떤 이유에서든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버린 상태라면 글을 내릴 수도 없고 그냥 놔두기도 민망한 상태가 이어진다. (잘 쓴 글들을 포털 메인에 걸어달라고요!!) 하지만 이런 글이라도 나중에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어떻게든 다시 한번 살려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한 번쯤 글을 업으로 하는 분에게 보여드리고 교정을 받거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볼 때마다 부끄러운 자국도 남아 있어야 다음에는 조금 더 조심하니까. 흉터 같은 거랄까.


번역이 된 책은 작가의 호흡과 번역가의 호흡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역시 번역가의 자신의 색깔도 궁금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찾아 읽고 있는 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


 몇 번의 큰 부끄러움을 겪은 후에는 거의 매일 같이 조금씩이라도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다. 똑같은 책을 3~4번 읽기도 하고 새로운 책도 읽는다. 몇몇 부분을 머리에 담았다 글을 쓸 때 살짝 풀어놓는다. 대부분은 풀어 놓는 과정에 흐트러져버리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그의 호흡이 내 곁에 남아 있는 채로 글쓰기에 돌입하는 게 고통이 적다. 이렇게 많이 읽고 많이 쓰다 어느 날 "혹시 어설프게 무라카미 하루키 흉내 내시는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이라도 생기면 미친 듯이 기쁠 것 같다. 자신 있게 "네 맞아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커피라도 한잔 사드려야지. 저 같은 생각하시는 분 많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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