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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Aug 13. 2021

취미라도 하기도 민망하군요...

세상엔 흥미로운 게 너무 많아.


그리 나쁜 것도 아닌데 오락실에 들어갈 때면 눈치 보다 후다닥 뛰어 들어가곤 했다.

 어렸을 때 자기소개를 하는 양식들을 보면 꼭 취미와 특기를 넣는 칸이 있었다.

 특기란은 겸손함이 미덕이었던 시대이기도 하고 실제로 뭔가 특별히 잘한다고 내세울 게 없어 쉽게 채울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취미는 비교적 쉽게 써낼 수 있었다.


 독서.

 남자애들은 축구, 농구 같은 운동이 아니면 거의 독서를 선택했던 것 같다. 굳이 책 읽기를 좋아해서라기 보다 약간의 면피용 선택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보는 건데 오락실 가기라고 쓸 수는 없으니까.(가끔 음악 감상이나 그림 그리기도 드물게 있긴 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선택할 수 있는 취미의 폭이 참 좁았다. 그런 시대에 다행히도 난 책 읽는 걸 참 좋아했고 많이 읽었기에 취미를 물으면 스스럼없어 독서라 대답할 수 있었다.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등 선물을 받을만한 날이면 책이나 전집류도 받았고, 중간중간 다른 이유로도 책을 많이 읽었으니 일 년에 100권씩은 읽어대지 않았을까...


 하지만 독서를 취미로 내세우는 것도 중학교 3학년 정도부터는 불가능해졌다. 그때부터는 그다지 일반적이고 성실한 학창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책에서 멀어졌다. 갑자기 내가 불량해져 책을 덮은 건 아니다. 그냥 학교와 집을 오가는 생활에서 조금 벗어나니 눈에 보이는 것들도 많았고, 그때쯤 유니텔에 빠져서 인터넷에 정신을 더 많이 쏟았다. 물론 그 시기에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만화방에 갔기에 책을 손에서 아예 놓은 건 아니었다.


 그렇게 정말 '질풍노도'의 학창 시절이 끝나고 다시 책을 잡은 건 공익근무 생활을 시작한 22살 무렵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유리문이 있는 나무 책장이 있었다. 누가 책을 구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책장 치고는 꽤나 좋은 책들이 많고 읽고 싶었던 책들도 많았다. 그래서 하나둘씩 꺼내서 읽다 보니 어느새 책 읽기에 다시 흥미가 생겨버렸다. 그리고는 일 년에 100권씩 읽어야지라는 목표를 세우고 공익근무 2년 동안 200권의 책을 읽었다.

  꽤나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시기에 나에게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어렸을 때와는 달리 조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딱 잘라서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재밌게 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23살의 나는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고 있었고, 재즈댄스도 배우고 있었고, 수영도 배웠다. 영화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봤던 것 같다. 정기적으로 즐기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이렇게 많은 걸 한다고 하면 '참 부지런하군요'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때쯤 난 내가 끈기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

 난 뭐가 됐든 짧으면 1달, 길면 1년 사이에 흥미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미 책을 좋아했던 어렸을 때도 그런 징조는 있었던 것 같다. '일 년에 100권 정도 읽어요'라고 말하면 은근히 꾸준히 많이 읽는 느낌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 년 중에도 책 읽기가 참 즐거운 기간은 따로 있다. 그때는 책의 난이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주일에 10권 넘게 읽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가벼운 에세이들은 하루에 2~3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렇게 한 번씩 몰아서 읽어 내다 보면 6개월 정도 책 한 장 펴보지 않아도 일 년에 책 100권 읽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만큼 독서는 쉽고, 한 권 한 권 마무리하는 단편들의 모음이기에 그다지 꾸준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구색을 유지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책을 안 읽었더라도 책을 몇 권 다시 잡는 순간 다시 취미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취미들도 많다. 나에게는 수영도 그런 것 중에 하나였다. 23살 때 난 처음 수영을 배웠다. 일주일에 5일씩 하루에 1시간씩 수영을 했는데 첫 주에는 발판을 잡아도 한 번에 레인의 반대편 끝까지 가기도 어려웠다. 한주가 지나고 나면 어찌어찌 레인 반대편 끝까지 가기는 하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장딴지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한주 한주 지날수록 눈에 띄게 물이 편해졌다. 12주 정도 지났을 때쯤인가 25미터 레인을 30번 정도 쉬지 않고 왕복할 수 있었다. 힘들다는 느낌은 전혀 없고 ‘이쯤 했으면 됐어. 좀 지루하군' 이런 느낌으로 멈춰 섰다. 겨우 12주인데... 그 이후에는 이런 식으로 체크를 해본 적은 없지만 20~30바퀴는 아무 생각 없이 돌곤 했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수영을 배우고 수능 준비를 하기 위해 수영을 멈췄다. 그리고는 몇 년 후 여행지의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일이 있었다. 예전 생각을 하고 호기롭게 물에 들어갔으나 짧은 수영장 한 바퀴 도는 것도 녹녹지 않았다.

 


골프처럼 며칠만 연습 안 해도 티 많이 나는 것도 없다. 대신 매일 연습해도 티가 안 나는 게 문제.


 이렇듯 꾸준히 관계를 유지해야지만 취미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보통 실력이 붙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렇다. 그런 것들은 몇 달만 손에서 놓고 있어도 그 전처럼 즐기기 어렵게 돼버린다. 손에 놓고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 그렇다. 물론 몸과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에 처음처럼 많은 시간은 투자하지 않아도 곧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지만, 어쨌든 내가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곧장 취미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즐기게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들은 계속 시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블로그와 유튜브의 영향이 꽤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배울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걸 배우는 법과 다양하게 즐기는 법들도 너무 많다. 초기 비용도 많이 줄어들었다. 어떤 것에 쉽게 지루해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천국이다. 어설프게 유행에 휩쓸려 이것저것 많이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 잘 가지고 놀다 뒷전으로 미뤄놓은 것들이 꽤 있다.


가방 속에 미놀타 x-700과 뜨개질 실을 늘 들고 다니던 때

 

 난 그런 걸 마음속의 취미 별장이라고 한다.

 독서, 흑인 음악 감상, 필름 카메라 사진 찍기, 농구, 축구, 수영, 탁구, 자전거 타기, 여행, 웨이트 트레이닝. 이 정도가 최소한 6개월 이상 빠져 있었던 것들이고, 더 짧게 '시도'만 것들을 생각하면 수도 없이 많다. 최근에 한 3년 안에  달리기, 골프, 영상편집, 글쓰기, 쇼핑몰 운영이 새로운 취미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취미들이 마음속에 간혹 찾아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재밌게 즐겼을 뿐 저것들을 잘하는지를 누군가 물었을 때 "그럭저럭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그래도 전혀 상관없다. 처음부터 잘할 것을 염두에 두면 난 무엇 하나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수준을 높이기 전에 흥미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걸 스스로 잘 안다. 그렇기에 그냥 뭔가를 배우고 시도하는 그 순간 자체만을 오롯이 즐긴다. 다행히도 즐기는 기간 자체는 짧을 뿐 강하게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은 있는 편이라 아예 뒷전으로 미뤄 놓은 이후에도 몸과 마음에 남는 것들이 적지 않다.


 취미지만 열과 성의를 다해 파고들면서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쌓을 정도로 시간과 애정을 쌓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 앞에서 나처럼 스쳐 지나가듯 즐기는 사람이 '이건 내 취미예요.'라고 말하기도 참 민망하다. 그래도 어찌 됐든 취미는 즐기는 거라고 사전에도 나와 있으니까. 난 나 나름의 방식으로 많은 것들을 즐기고 있다.  



새로 생긴 취미 중에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달리기. 대신 제일 재미없다.


 그러니까 헬린이 런린이 등 무슨 무슨 린이 같은 단어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조금 남겨주시면 안 될까요.

 3대 500, 드라이버 300야드씩 보내시는 분들이 헬린이, 골린이라고 하면 나 같은 사람들의 설자리가 너무 좁은데요.

 이제부터 그런 것들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보려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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