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그림은 보티첼리의 대표작 중 하나, 봄(La Primavera)이다. 삼미신, 플로라, 비너스, 에로스, 제피로스, 메르쿠리우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다양한 신들이 봄을 찬미하는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반사적으로 음악 한 곡이 떠오른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 1악장. 누구나 알고 있는 멜로디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이 곡이 보티첼리의 그림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지라 비발디가 이 그림을 보고서 봄 1악장을 작곡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상상까지 해 보았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특정 이미지를 떠올릴 때가 많다. 멋진 풍경이든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이든 말이다. 하지만 미술을 보면서 음악을 떠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다시 정리해보면 청각을 시각적 경험으로 연결시키는 경우는 많지만 시각을 청각으로 연결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람은 오감 중에서도 시각에 가장 크게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청각이나 후각으로 자극받을 때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시각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각 지향성이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미술보다는 음악을 좀 더 일상적으로 접하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면서는 쉽게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 같다. 그에 반해 가끔씩 미술을 감상하는 와중에는 은연중에 경직된 태도를 취하는 것 은 아닐 지.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그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더욱 즐겁듯이 미술을 보며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떠올리면 역시 더욱 즐거워진다. 물론 모든 경우, 모든 작품에 미술과 음악이 잘 어우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술관의 모든 작품 앞에서 특정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갤러리 전체에 백화점 BGM처럼 음악이 흐르고 있는 장면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분명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가지고 있고 그 둘을 연결시켜 감상하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한다. 보티첼리의 봄과 비발디의 봄 1악장처럼 말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10대, 20대 시절에는 바로 집 앞 슈퍼를 갈 때도 워크맨 없이는 안 나갈 정도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이런저런 기회로 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던 중 직장 관계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3년 6개월을 지내게 되었고 시간 날 때마다 미술관을 방문했다. 몇몇 작품 앞에서 잊고 있었던 명곡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음악들이 미술관에서 되살아나는 듯한 감격은 잊을 수 없다. 이제 미술을 듣고 음악을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