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관 속의 남자에게 힘 없이 기대어 있다. 이 그림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모른다 해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테루엘의 연인들(Los amantes de Teruel)’이다. 19세기 후반 스페인 화가인 안토니오 무뇨스 데그라인(Antonio Muñoz Degrain)의 작품으로 1884년 발표 당시 크게 호평을 받았고 그 해 스페인 국선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테루엘(Teruel)은 스페인 아라곤 지역의 도시 이름이다. 이 그림은 13세기 테루엘에서 일어났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 속에서 남자에게 머리를 기대고 있는 여성의 이름은 이사벨 데 세구라(Isabel de Segura).그녀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다. 관 속 남성의 이름은 디에고 데 마르시야(Diego de Marcilla).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두 사람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으로도 슬픈 예감이 드는 것은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와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나무라도 쳐다보지도 못 할 이유는 없다. 애초에 모든 장애를 초월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숲에서 못 오를 나무 따위는 없을지도 모르고.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두 남녀는 사랑에 빠졌고 남자는 여자에게 청혼하지만 여자는 부모의 허락 없이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응답한다. 디에고는 허락을 받아내는데 실패했으나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5년. 딱 5년만 기다려준다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부를 축적해서 돌아올 테니 그때 결혼하자고 제안한다. 여자와 그녀의 부모는 이를 받아들이고 남자는 길을 떠난다.
그 시절, 부와 명예는 전쟁에서 거머쥘 수 있었다. 당시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디에고는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에 뛰어들어 여러 무훈을 세우며 부와 명예를 쌓아간다. 한편 디에고를 기다리던 이사벨은 부모의 결혼 강요를 참아내며 5년을 기다린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 디에고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사벨은 디에고가 자신을 잊은 것이라 생각하고 마침내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식이 열리는 그 날. 바로 그 날에 디에고가 테루엘에 나타난다. 남자는 부와 명성을 가지고 돌아오겠다는 금의환향의 약속은 지켰으나 5년 이내라는 기한은 지키지 못한 것이다.
< 오늘 날의 테루엘 시 >
디에고는 그날 밤, 신혼부부의 침실에 숨어 들어간다. 5년 동안 한 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그 녀의 얼굴과 그 녀 옆에 누워있는 다른 남자의 모습을 번갈아 보는심정이 어떠했을까. 디에고는 그녀를 살며시 흔들어 깨우고 부탁한다.“키스해 줘, 난 죽어가고 있어.(Besame, que me muero)”그녀는 남편에게 부정한 일을 할 수 없다며 거절한다. 디에고는 다시 한번 부탁한다. “제발 키스해 줘, 난 죽어가고 있어.”하지만 끝내 그 녀는 키스하지 않는다. 키스를 부탁하는 디에고와 그 부탁을 거절하는 이사벨 모두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을 것이다. 결국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던 디에고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고 만다.
너무 놀란 그녀는 옆 자리의 남편을 깨우고 그 간 벌어진 일을 얘기해준다. 남편은 왜 키스하지 않았냐고 안타까워하고 이사벨은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다음 날 디에고의 장례식이 거행된다. 그녀는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장례식이 열리는 산 베드로 교회로 향한다. 관 속에 누워있는 디에고의 곁으로 다가간 그 녀는 그의 입술에 키스한다. “디에고, 난 네게 키스하고 있어. 그리고 난 죽어가고 있어.” 키스를 끝낸 그녀는 디에고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숨을 거둔다.
- 사랑하는 이의 품 속에서 죽어가는 것, 그 달콤한 슬픔
안토니오 무뇨스는 시대를 초월하여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 스토리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을 훌륭히 재현하고 있다. 그림 속의 이사벨은 이제 막 디에고의 품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그림은 13세기 교회 실내 모습과 디에고가 잠들어 있는 관의 묘사가 너무나 정교하여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역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이사벨의 모습이다.
그 녀는 연인의 품속에 고요히 무너져 있다.살며시 감긴 두 눈은 두 사람 사이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듯하고 조금 열려있는 입술은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힘 없이 축 처진 오른손은 그 녀의 죽음을 상기시켜 줘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그 녀 옆에 쓰러져 있는 두 개의 양초는 불이 꺼진 채 연기만 피어오른다. 두 연인의 목숨이 다하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실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하얀색으로 묘사되어 있다. 덕분에 시각적으로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순수한 사랑을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 후안 가르시아 마르티네스 – 테루엘의 연인들 >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가로 5미터, 세로 3미터가 넘는 커다란 작품이다. 실제 이 작품 앞에 서서 이사벨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제로 그려진 그림으로 후안 가르시아 마르티네스(Juan Garcia Martinez)의 작품도 있다. 이 작품도 훌륭하지만 안토니오 무뇨스의 작품이 좀 더 감정을 자극하는 것 같다.
안토니오 무뇨스는 스페인의 지중해 도시,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풍경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발렌시아 루미니즘의 시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루미니즘은 빛의 표현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주로 야외에서 그린 그림이 많다. 무뇨스는 풍경화를 그릴 때는 루미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이지만 역사화를 그릴 때는 감정표현에 중점을 두는 낭만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 디에고와 이사벨의 무덤 >
< 닿을 듯 말 듯 닿지 못 한 두 사람의 손 >
테루엘의 연인들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얘기해보자. 테루엘에 가면 이 두 연인의 무덤이 있다. 디에고의 장례식이 치러진 산 베드로 교회에두 사람의 모습이 석관에 조각되어 나란히 누워있다. 얼핏 두 사람의 손이 맞닿아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살짝 떨어져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조각에서라도 두 사람의 손을 맞잡게 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하늘나라 혹은 다음 생에서는 함께 했을 것이라고 믿으며 위안을 삼아 본다.
-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5일’간의 사랑 이야기
< 프랭크 딕시 – 로미오와 줄리엣 >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사랑의 대명사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러브 스토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는 속하지 않지만 대중적으로는 4대 비극보다 더 유명하다.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미술작품은 많다. 그중에서도 프랭크 딕시(Frank Dicksee)의 작품을 보자.
두 연인이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난간 위에 걸터앉은 채로 키스를 시도하는 로미오의 모습이 조금 위태로워 보인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두 사람이 발코니에서 만나는 때는 밤이었으나 그림 속의 배경은 아직 해가 지기 전 늦은 오후쯤으로 보인다. 이 발코니 만남에서 명대사가 쏟아진다. 하늘에 있는 달님에게 사랑을 서약하려는 로미오에게 줄리엣이 말한다. “*오, 둥근 궤도 안에서 한 달 내내 변하는 지조 없는 달에게 맹세하지 마세요. 그대의 사랑도 그처럼 바뀌지 않도록.” 변치 않는 사랑을 꿈 꾼다면 달님에게 맹세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지어다.
한편 만남을 끝내고 돌아가는 로미오의 독백은 지금 우리에게도 절절한(?) 동감을 안겨준다.
“*님 향한 애인 걸음 책 덮은 학생 같고 님 떠난 애인 걸음 우울한 등굣길 같구나.”간단히 말하면 애인을 만나러 갈 때는 하굣길 같고 애인을 만나고 돌아갈 때는 등굣길 같다는 것이다. 시적인 대화를 이어가던 와중에 너무나 현실적인 비유가 나와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은 등교(혹은 출근?)에 필적한다는건데...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애기해주면 나에 대한 애정이 고작 등하교길 수준이냐고 화를 낼 지도 모른다.
*민음사 출판 ‘로미오와 줄리엣’ 인용
그림 속의 줄리엣은 흰 옷을 입고 해를 정면으로 보고 있어 밝게 보이는 반면 로미오는 해를 등지고 있는 데다가 진한 색의 옷을 입고 있어 어둡게 보인다. 이러한 명암 대비로 인해 그림 속의 로미오는 원수 집안의 심장부에 숨어든 그림자처럼 보인다. 화가는 줄리엣이 그림자와 키스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여 ‘몰래한 사랑’을 훌륭히 표현하고 있다. 프랭크 딕시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약한 화가로 여성들의 초상화를 특히 아름답게 그렸다. 혹자들은 세밀한 세부묘사에 정통한 그의 작품을 보고 그를 라파엘 전파 중 한 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어릴 적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던 선배나 선생님은 두 사람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강조하곤 했다. 로미오가 16세, 줄리엣이 14세라는 설정이 놀랍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리다고 사랑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나이의 사랑이 더욱 뜨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스피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일. 사랑이 정점에 이를 때까지 걸리는 합리적인 기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5일은 분명 놀랄만큼 짧다.
- 조용히 흐느끼는 사랑의 슬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이루어지지 않은 슬픈 사랑과 어울리는 음악으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이 있다. 이 음악은 60년대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에 삽입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그냥 이 음악을 아예 엘비라 마디간으로 부르기도 한다. 엘비라 마디간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19세기 후반, 귀족 출신의 탈영 장교와 곡예단 소속의 여주인공이 사랑의 도피를 하였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내용이다. 내용이 슬픈 데다 삽입곡까지 너무 슬퍼감상 후에 심각한 후유증을 앓을 수 있다.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들 중 감수성이 예민한 분은 주의(?) 하시기 바란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90년대에 크게 히트한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라는 노래에도 이 음악이 언급된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삭여주며...”
< 엘비라 마디간의 한 장면 >
이 음악은 안토니오 무뇨스의 그림과 잘 어울린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테마로 쓰인 엘비라 마디간 속 연인과 테루엘의 연인 모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무뇨스의 그림 속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들려오는 듯한 이유는 영화 덕분인 것만은 아니다. 음악의 분위기와 형식이 이 그림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뇨스의 그림은 더할 나위 없이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오열’보다는 ‘흐느낌’으로 다가온다.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고 1분 30초 정도가 지나면 한 음씩 천천히 피아노 연주가 시작된다.음표 하나하나가 볼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눈물방울 같다. 2분 20초 정도가 지나면 *트레몰로가 나온다. 이 부분은 눈물 방울이 두 줄기 눈물이 되어 주르륵 흘러내리는 듯하다. 음악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불길한 운명을 암시하듯 더욱 슬픈 멜로디가 전개되지만 마지막에는 조금은 희망적인 멜로디로 마무리된다. 지상에서 비극적으로 헤어진 두 연인이 천상에서 행복하게 재회한 것 마냥 말이다.
* 같은 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떨리듯 연주하는 주법
안토니오 무뇨스의 그림 속, 나지막히 속삭이는듯한 이사벨의 입술을 본다. 내 사랑, 곧 네 곁으로 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