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름다운 여성을 그린 화가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자신의 배우자를 그린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램브란트나 루벤스 정도가 떠오른다. 엄밀히 말하면 배우자의 모습을 남긴 화가는 이 외에도 있지만 비너스나 성모 마리아 혹은 귀부인을 그린 화가에 비해 훨씬 적은 것이 사실이다. 바빠서? 애정이 부족해서? 혹은 시대적 한계 때문에? 어떤 이유이던지 간에 화가의 배우자로서는 서운했을 수도 있다. 여기 누구보다도 바쁘게 활동했지만 아내의 초상화를 수십 점 남긴 사람이 있다.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Joaquin Sorolla) 이다.
소로야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활동하였다. 그는 발렌시아 루미니즘의 대표화가로 꼽힌다. 루미니즘 화가들은 야외에서 빛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옮기고자 했고 이 때문에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와 비슷한 화풍을 가지고 있다. 소로야가 태어난 발렌시아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이은 스페인 제3의 도시이다. 태양이 빛나는 지중해 도시인 데다 근대적인 예술운동까지 더해져 자연히 빛에 집중하는 화가들이 많았다.
소로야가 활동했던 기간은 고흐, 마티스, 피카소 등 천재적인 화가들이 쏟아지던 시기이다. 그러다 보니 소로야는 이들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진 감이 있다. 하지만 소로야는 당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큰 명성을 얻은 화가이다. 현재 발렌시아 고속열차 역 이름이 바로 호아킨 소로야이다. 역이나 공항 이름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인물의 이름을 넣는 경우가 많다. 발렌시아가 소로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짐작 가능하다.
평소 인상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소로야 그림은 좋아할 수밖에 없고 만약 인상파를 특히 좋아하다면 그의 그림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지중해의 빛나는 바다, 서민이나 부르주아의 생활상, 스페인 각 지의 민속 풍경. 소로야 작품의 소재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아내를 그린 초상화에서는 변치 않는 애정이 묻어나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좌측 < 소로야 부부의 결혼 사진 > 우측 < 소로야 - 옆 모습의 클로틸데 >
소로야는 불과 두 살이 되기 전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된다. 남겨진 소로야와 여동생을 길러준 이들은 이모와 이모부였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다는 경험이 훗날 그가 가족을 각별히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된 듯하다. 소로야가 평생 사랑을 바칠 아내를 만난 것은 10대 때였다. 미술 학교에서 알게 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여동생 클로틸데(Clotilde)를 만나게 된 것이다. 둘은 서로 호감을 키워가게 된다. 마침 친구 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고 소로야는 그 사진관에서 일자리까지 얻게 된다. 친구 덕에 미래의 아내와 직업을 동시에 얻게 된 것이다. 이런 친구가 ‘귀인’이 아니라면 누가 귀인이겠는가.
- 지중해 햇살처럼 따뜻한 부부의 사랑
소로야가 25살, 클로틸데가 23살이 되던 해에 둘은 결혼한다. 결혼 후 2년이 지나 첫 째 딸 마리아를 출산한다. 갓 태어난 마리아는 병약했다. 소로야는 부득이 아내와 딸을 처갓집이 있는 발렌시아에 남겨두고 홀로 마드리드로 돌아온다. 이후에도 소로야는 작업 때문에 혹은 가족의 요양을 위해 자주 아내와 떨어져 지내게 된다. 카톡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이들 부부가 마음을 나누는 방법은 역시 편지였다. 두 사람이 평생 주고받았던 편지는 무려 2,000통이 넘었다.
< 소로야 - 클로틸데 가르시아 >
클로틸데는 천재화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에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는 편지 말미를 ‘Tu Fea(뚜 페아,‘당신의 못난이’라는 뜻)’라는 표현으로 마무리하며 시무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 녀는 소로야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애정이 담긴 자상한 답장 속에서 그리고 자신을 그리고 있는 남편의 따뜻한 눈빛 속에서 말이다.
< 소로야 - 어머니 >
1895년, 소로야 나이 32세에 막내딸 엘레나를 출산한다. 이때 그린 작품이 스페인어로 ‘Madre(마드레)’ 즉 ‘어머니’이다. 새하얀 솜털 이불을 덮고 있는 모녀의 모습. 갓 세상에 나와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아기와 그 아기를 부드럽게 바라보는 엄마. 새근새근 한 아기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 그림은 ‘출산의 기쁨’을 그린 것이 아니다. 화가가 반복해서 표현해 온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그림의 주제이다. 즉 소로야는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어머니로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가슴 벅찬 사랑을 그린 것이다. 이것이 이 그림이 ‘엘레나의 출산’이 아니고 ‘어머니’로 불리는 이유이다.
좌측 < 소로야 - 검은 옷을 입고 있는 클로틸데 > 우측 < 클로틸데를 그리고 있는 소로야의 사진 >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서 소로야는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소로야의 명성이 국제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1906년, 드디어 세계 예술의 중심,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회에서 클로틸데는 소로야의 매니저이자 전시회 운영자로 맹활약한다. 전시회에 내걸릴 500여 작품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여러 사무업무와 홍보까지. 부부의 기대와 염려 속에서 개최된 파리 개인전은 대성공을 거둔다. 클로틸데의 능력이 성공의 커다란 요인 중 하나였음은 말할 필요 없다. 각 국의 천재들이 활약하는 파리 예술계에서 소로야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된다.
파리에서 전시회가 열린 같은 해, 독일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일 전시회는 클로틸데가 도와주지 못했고 전시회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그녀의 건강이 악화된 탓이다. 아내가 없었던 때문인지 베를린, 뒤셀도르프, 쾰른에서 개최된 개인전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클로틸데의 심미안과 행정능력 그리고 남편에 대한 응원과 애정이 소로야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해 볼 수 있다.
< 소로야 - 해변가 산책 >
1909년 소로야는 미국 전시회를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온다. 미국에서의 소로야 인기는 대단했고 태프트(Taft) 대통령의 초상화까지 그리게 된다. 장기간 출장으로 지친 소로야는 휴식이 필요했다. 고향 발렌시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소로야는 수많은 아내의 초상화 중에서도 손꼽히게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다. ‘해변가 산책’이라는 그림이다.
두 여인이 발렌시아 해변가를 걷고 있다. 앞 서 걷고 있는 여인은 아내, 클로틸데이고 뒤쪽의 여인은 첫 째 딸, 마리아이다. 두 여인 모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가운데 아내는 모자를, 딸은 양산을 들고 있다. 햇빛을 피하는 액세서리를 내려든 것으로 보아 따가운 햇볕이 지기 시작하나 보다. 흩날리는 옷자락에서는 상쾌한 지중해 바람이 느껴진다. 잔잔한 파도와 고운 모래 사장, 천천히 산책 중인 모녀, 그리고 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화가의 따뜻한 시선. 소로야는 알았을까. 개인적인 애정으로 그린 이 작품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이렇게 진한 감동을 안겨줄 것이라는 것을.
- 당신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어요
< 소로야 - 정원에 있는 클로틸데 >
소로야는 미국 히스패닉 소사이어티와 계약한 ‘스페인 풍경’ 연작을 그리며 상당한 육체적 피로에 시달린다. 급기야 1920년에는 반신 마비 증상까지 겪게 된다. 쇠약해진 와중에도 소로야는 아내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정원에 있는 클로틸데’는 화가가 사망하기 3년 전 완성한 작품이다. 그 녀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멋진 모자가 눈에 띈다. 소로야가 그린 아내의 그림을 보면 대부분 의상이 두드러진다. 소로야는 유럽과 미국을 자주 여행하였고 그때마다 시간을 내어 아내의 옷과 액세서리를 구입했다고 한다. 성공한 예술가에게는 파티나 사교모임의 유혹이 많았을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아내의 옷부터 챙기는 남편이라니. 흐뭇하기만 하다.
< 말년의 소로야 부부 사진 >
소로야가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고 찍은 부부 사진이 있다. 한눈에 봐도 쇠약해진 소로야가 아내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고 아내는 남편의 팔짱을 낀 채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다. 서로에게 남편과 아내이면서 화가와 뮤즈였던 두 사람. ‘당신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 두 대의 현악기가 노래하는 사랑의 선율
소로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아한 멜로디 하나가 귓가를 맴돈다. 바이올린과 기타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하모니, 파가니니의 칸타빌레 D 장조가 그것이다. 종종 파가니니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하지만 이 곡은 천사의 가호를 받아 작곡한 것 같다.
아름답게 노래하는 바이올린과 잔잔하게 바이올린을 감싸안는 기타 반주의 조화는 서로를 밝게 비쳐줬던 소로야와 클로틸데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평생을 함께했던 부부는 세상을 떠났지만 따뜻한 그림과 사랑 이야기는 우리 곁에 남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고 사랑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