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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재 May 16. 2023

편안한 교토 카페 - Cafe Seberg

- 숨겨진 보석을 찾아

  

교토를 너무 좋아한다. 종종 검색 창에 ‘교토’란 단어를 입력한 후 하랄 없이 웹서핑을 하곤 한다.‘미야비’라는 단어로 축약되는 교토 특유의 우아함과 세련미.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일본 여행이 가능해지자 교토의 풍경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내와 아이들이 찬성해 주어 교토를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귀중한 여행인 만큼 아침식사 장소를 고르는데 신중을 기하였다. 교토의 유명한 카페들을 구글맵에 저장해 두고 출국길에 올랐다. 오사카에서 2박을 한 후 3일째 아침 일찍 교토에 도착했다. 첫 번째 방문지인 니조조 인근에 렌터카를 주차해 놓고 잠시 가족회의를 가졌다. 유명한 이노다 커피를 갈 것인가, 주차장 인근 카페를 갈 것인가. 배가 고팠던 우리 가족은 인근 카페로 결정했다. 20세기 초반 다이쇼 시대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이노다 커피가 당기기도 했지만 숨겨진 보석을 발굴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인근 카페를 검색해 보았다. ‘Cafe Seberg’가 눈에 띄었다.

  

카페는 조용한 주택가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맞이해 주셨다. 카페 안을 둘러보니 주인 할아버지께서 영화 마니아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실물 크기의 BB8 로봇이 – 스타워즈 시퀄 3부작에 등장한다. - 선반 위에 올라가 있었고 가게 내의 벽에는 영화 포스터들이 가득했다. 내부 인테리어는 영화 포스터를 제외하면 특별한 것이 없었다. 교토 카페라고 하면 기대하게 되는 앤티크 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 장소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 Cafe Seberg 내부 >

    

- 영화 마니아의 애정이 깃든 편안한 공간


카페가 우리를 매혹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커피 맛과 분위기. Cafe Seberg의 분위기는 편안하다. 아늑한 느낌의 층고와 따뜻한 조명, 차분한 하얀색 벽과 아날로그 질감의 마루 바닥. 나지막한 재즈 음악과 커피 향기.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믹스(MIX)에는 카페의 편안함을 묘사하는 멋진 대사가 나온다. 소란스러운 바깥세상과 차단되어 잠시 한 숨 돌릴 때의 편안함. 비행기 일등석의 편안함이 아니라 거실 소파의 편안함. 카페를 처음 방문하였는데도 단골손님처럼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주인 할아버지의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도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카페나 레스토랑은 의례 예술을 인테리어의 소재로 쓰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예술이 가게의 콘셉트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일즈 데이비스 같은 재즈 뮤지션들의 앨범 커버를 걸어두고 K-Pop을 트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뭔가 유럽적인 느낌을 주려고 영국인들의 초상화를 잔뜩 진열해 둔 커피 전문점있다. 영국은 커피보다 홍차가 더 유명한데 말이다. Cafe Seberg는 인테리어를 위해 무작정 영화를 끌어들인 장소가 아니다. 평생 영화를 사랑해 온 마니아의 애정이 묻어나는 곳이다.


Cafe Seberg의 포스터를 차근히 둘러보면 주인 할아버지가 장르 불문, 다양한 영화를 섭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영화와 해외 영화,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가 고루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전 영화뿐 아니라 최신 영화도 발 빠르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이 10대, 20대 때 즐겼던 음악, 영화만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카페 메뉴판에는 ‘주인장이 영화 추천해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최신 영화를 꾸준히 감상하는 주인 할아버지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 벽면을 장식한 영화 포스터 >


< 일본 영화 포스터, 감독님이 이 카페를 방문한 듯하다. >

     

- 할아버지 손 맛이 묻어나는 커피와 토스트 


아침 메뉴로 ‘듄’세트를 주문했다. 커피 한 잔과 프렌치토스트. 주인 할아버지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을 재미있게 보셨나 보다. 메뉴를 준비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혼자서 주방부터 홀 업무까지 모두 담당하시다 보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다림은 전혀 초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빨리 나왔다면 실망했으리라. 이 가게는 느려야 제 맛이다.


커피는 핸드드립 특유의 그윽함이 느껴졌다. 커피 좋아하는 아내가 첫 모금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프랜치 토스트는 겉바속촉에다가 고소함과 달콤함이 어우러져 커피와의 궁합이 일품이다. 프랜치 토스트를 젊은이들만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할아버지의 손 맛이 보통이 아니다. 보통 콘셉트가 강한 식당은 음식 맛이 별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Cafe Seberg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가게의 메뉴는 모두 할아버지가 직접 만드신다고 한다. 사장님은 영화뿐 아니라 커피와 토스트에도 진심이다.


    

< 커피와 프랜치 토스트, '듄' 세트 >

- 오키니


Cafe Seberg는 20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영화배우 ‘진 시버그’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배우일 것이라 짐작한다. 이 카페는 소위  '핫플'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알려진 곳이다. 사장님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을 보면 세계 각 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은 것 같다.


계산을 하고 가게문을 나서는데 할아버지께서 교토 방언이 적힌 종이를 건네주신다. 교토에서는 ‘감사합니다’를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가 아니라 ‘오키니’라고 말한다고 한다. 귀국 후 교토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을 보니 ‘오키니’라는 단어가 내내 쓰이고 있었다. 편안한 공간과 최고의 음식을 선물해주신 할아버지에게 씀 드리고 싶다. 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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