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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재 Oct 30. 2020

스페인 미식 트랜드의 리더

마드리드 분자요리의 선두주자,  80 Grados

< 80 Grados 내부 전경 >

마드리드에서 한 끼만 식사할 기회가 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80 Grados를 추천할 것이다. 80 Grados는 마드리드 타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타파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개인적으로 식당을 고를 때 ‘창의성’을 강조하는 식당을 선호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음식은 맛있고 봐야 하는데 이런 류의 식당은 ‘맛’보다는 ‘창의성’에, ‘미각’보다는 ‘시각’에 치우진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80 grados는 맛과 창의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다른 곳에서 보지 못 한 음식인데 맛도 기가 막힌다.


80 Grados는 또 다른 부분에서도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니 바로 가성비이다. 가성비는 보통 ‘무난한 품질’에 '무난한 가격’이라는 조합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80 Graods에게 가성비란 ‘훌륭한 품질’에 ‘저렴한 가격’을 뜻한다. 80 Grados의 *메뉴 델 디아(Menu del dia)는 12유로에서 14유로 사이이다. 스페인의 평범한 식당과 비슷한 가격이긴 하다. 하지만 메인 요리는 물론이고 마지막 디저트까지 흠잡을 데 없는 식사를 하고 나면 분명히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 각 식당에서 저렴하게 제공하는 세트 메뉴. 보통 음료수,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로 구성.


80 Grados는 마드리드에 여러 지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말라세냐 지점을 추천한다. 말라세냐는 80 Grados 외에도 개성 있는 식당들이 많아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지역이다.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아 현지 분위기를 느끼기에도 좋다. 이 식당은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전화로는 불가능하고 인터넷으로만 예약이 가능하다. 만약 예약 없이 방문하면 대게 30분에서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80 Grados에서 식사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메뉴 델 디아를 이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한 가지는 단품으로 타파를 주문하는 것이다. 초밥집에 갔을 때 모둠초밥을 주문하느냐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개별적으로 주문하느냐는 선택과 비슷하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메뉴 델 디아를 추천한다. 저렴하고 구성도 좋다.


메뉴 델 디아는 음료수, 차가운 타파 한 접시, 따뜻한 타파 두 접시, 디저트로 구성된다. 먼저 음료수는 이 집의 대표 칵테일인 ‘디스띤또 데 베라노 꼰 에스푸모 데 리몬’(Distinto de Verano con Espumo de limon)을 강력 추천한다. 물이나 탄산음료가 아닌 주류를 주문하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 칵테일은 추가로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하다. 긴 이름의 이 음료수는 스페인 사람들이 여름에 즐겨 마시는 ‘띤또 데 베라노(Tinto de verano)’라는 칵테일을 변형한 것이다. 띤또 데 베라노를 한국어로 옮기면 ‘여름의 적포도주’이다. 적 포도주에 레몬즙을 섞은 것으로 여름에 상큼하고 시원하게 즐기는 칵테일이다. 80 Grados 버전의 띤또 데 베라노는 일반 띤또 데 베라노에 밀크 폼 같은 레몬 거품을 얹은 것이다. 글라스에 담겨 있는 모습이 예뻐 *마드릴레뇨들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비주얼만큼 향도 맛도 예쁘다. 가끔 남자들을 고민에 빠뜨리기도 하는 여자 친구님의 질문,“뭔가 상큼한 것 없어?”라는 물음에 대한 완벽한 대답이 여기에 있다.

* 마드리드 사람을 가리키는 말


< 빨간 맛,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 그 맛 >

다음으로 몇 가지 대표적인 타파를 보자. 일단 80 Grados의 요리는 ‘분자요리’ 스타일이다. 분자요리는 식재료나 조리방법 등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맛을 개발해 내는 방식을 가리킨다. 차가운 타파 중에는 고기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스테이크 타르타르(Stake Tartar)를, 해산물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새우 아보카도 샐러드(Shrimp and cold avocado salad)를 추천한다. 스테이크 타라타르는 육회 같이 잘게 다진 쇠고기 생고기에 계란과 소소를 추가한 후 바게트 빵에 얹은 것이다. 새우 아보카도 샐러드는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한 샐러드로 짭조름하기 때문에 빵이나 비스킷과 함께 먹으면 좋다.


< 좌측 새우 아보카도 샐러드, 우측 스테이크 타르타르 >

뜨거운 타파 중에서는 먼저 부드럽게 으깬 감자에 계란, 햄 등을 넣고 송로버섯 향을 더한 트러플 에그, 포테이토, 햄(Truffled egg, Potato, Ham)을 추천한다. 스페인은 요리에 버섯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특별히 버섯을 싫어하지 않는 분이라면 버섯 요리를 추천한다. 부드러운 감자와 계란에다 향긋한 송로버섯이 더해져 맛과 식감이 모두 고급스럽다. 다만 날계란을 넣은 것이기에 계란 비린 맛에 민감한 분에게는 주의가 필요하다.


또 다른 버섯 소스를 사용한 요리인 뇨끼(Creamy gnocchi's, wild mushroom sauce and parmasan cheese)도 추천할 만하다. 수제비 같은 식감의 뇨끼에 향기로운 버섯 소스와 파마산 치즈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고소함이 퍼져 나간다. 연어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연어 데리야키(Salmon teriyaki with sesame and ginger crust)를 추천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구운 연어에 달콤 짭짜름한 데리야키 소스가 더해져 단짠+고소함의 세 박자가 맞아떨어진다.

< < 좌측 버섯 뇨끼, 우측 트러플 에그, 포테이토, 햄 >


마지막 코스인 디저트를 보자. 메인 요리도 맛있지만 디저트도 훌륭하여 마지막까지 실망시키지 않는다. 디저트 중에 가장 추천할만한 것은 ‘우유와 쿠키(Milk and cookies)’이다. 메뉴 이름만 보면 우유와 쿠키를 가져다주는 것인가 싶어 궁금해지는 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많이 물어봐서 그런 지 메뉴 옆에는 ‘don't ask, just order'라고 쓰여 있다. 조금 무례해 보일 수 있는 이 설명을 보면 더욱 궁금해질 터. 본인의 필력으로는 우유 기운을 머금은 쿠키(?) 정도로 밖에 설명 못하는 것이 아쉽다. ’ 고소함‘ 에서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우유와 쿠키가 얽히고 설켜 입 안에서 한바탕 고소함의 향연이 펼쳐진다. 화이트 레몬도 강추한다. 하얀 레몬 거품 속에 화이트 초콜릿과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이 어우러져 달콤, 새콤이 용호상박처럼 치고받는다. 여자 친구님의 “뭐 좀 상큼한 것 없어 “라는 물음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바로 이 디저트다. 상큼한 요리에 주어지는 노벨상이 있다면 80 Grados는 가장 강력한 수상 후보자일 것이다.


< 좌측 화이트 레몬, 우측 우유와 쿠키 >

워낙 좋아하는 식당이다 보니 예상보다 글이 길어졌다. 조금 과장이 심했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시 돌이켜봐도 이 식당은 충분히 훌륭하다. 80 Grados는 영문 메뉴도 잘 갖춰져 있으니 여기서 설명한 메뉴 외에도 본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시도해 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 식당은 가급적 여행 초기에 방문하기 바란다. 한 번 방문하면 분명히 다시 오고 싶어질텐데 괜히 아껴둔다고 여행 후반부에 방문하면 왜 떠날 때가 다 되어서 여길 왔나,라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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